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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한국정치 대변화

탈주·거부·전복…한국사회 껍질 깬 영파워

대해부 중견 사회학자가 분석한 ‘2002년 세대’의 얼굴

  • 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탈주·거부·전복…한국사회 껍질 깬 영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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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로고와도 같은 이러한 문화의식과 가치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고 있으며, 향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주류 가치관을 대체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회학적 주제다. 젊은 세대의 감각과 의식은 대학 강의실에서, 옷차림과 동아리 모임에서, 가정과 거리에서, TV 드라마와 인터넷에서, 기업과 일터에서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의 본질은 아직 블랙박스로 남아 있는 듯하다.

간혹 사회학자와 문화비평가들이 그들의 경쾌한 몸놀림과 의식구조를 부분적으로 규명하기도 했지만, 한국사회의 전체적 맥락에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갖는 변동론적 함의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그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보여주고, 사회 각 영역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질서의 본질과 한계를 밝히고자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벨라(Bellah)는 미국사회의 가치관을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으로 표현하고, 1980년대 미국 중산층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토크빌(Tocqueville)이 170년 전에 관찰했던 것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바 있다. 벨라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등장은 해방 이후 50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마음의 습관’이 현격하게 바뀌었음을 의미하고, 한국인의 지배적 가치관이 새로운 것으로 교체됐음을 뜻한다. 한국사회의 중앙무대에 등장한 ‘2002년 세대’의 화려한 데뷔가 의식과 가치관의 패러다임적 변화(paradigmatic shift)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향후 몇 년 동안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할 기성세대는 변화를 몰고오는 이 힘이 불가항력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고, 사회의 제반 영역에 차분히 스며드는 이 힘을 변형 또는 수용하거나 궁극적으로는 자리를 내줘야 함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한 토크빌이 조국 프랑스의 지배계급에 내린 경고, 즉 지각을 흔들면서 다가오는 민주주의 물결을 대세로 인식하지 못하는 지배계급은 곧 몰락할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또 다른 의미에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세대가 계급·계층·종교 등과 마찬가지로 변동론적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헝가리 태생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이었다. 세대는 역사적·정치적 사건을 공유한 연령집단으로서 소통 가능한 언어와 담론체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토대로 느슨한 형태의 연대감을 갖는다. 비록 느슨한 형태의 연대감이라 할지라도 특정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형성된 세계관에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세대는 곧 변동의 동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68혁명세대’와 미국의 ‘반전운동세대’처럼 주로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세대의 이름이 붙여진 것도 공유한 경험의 치열성과 그것이 역사발전에 미친 중대한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와 물질적 풍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4·19세대, 6·3세대, 유신세대는 한국의 현대정치사에 전환의 획을 그은 정치적 사건을 주도한 연령집단을 각각 지칭한다. 어떤 연령집단에 특정 이름이 붙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역사발전의 특정시기에 대한 역사의식을 공유하고(역사적 공동체), 훗날에도 기억될 어떤 정치적·문화적 사건을 공모했다는 자부심과 강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경험의 공동체). 공동개입과 참여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훗날 그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행위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것이 세대의 특성이자 세계관(Weltanschauung)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앞서 내가 ‘2002년 세대’로 부르고자 했던 연령집단은 요즘 흔히 2030으로 불리는 20대와 30대를 주축으로 하는 젊은 층이다(그 외연을 조금 넓혀 40대 중반까지를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은 2545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이미 사회의 지배층이 된 50∼60대 기성세대의 눈치를 보면서, 밑으로는 청소년 세대의 양육과 교육을 담당하거나 경제적·사회적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집단이다. 교양과 사회적 비판의식을 나름대로 배양했고 경제적 부양능력도 키우고 있지만, 아직 사회의 주도세력이 되기에는 경험·경륜, 지도력이 부족한 연령층이다.

20대, 30대라는 폭넓은 연령층을 구태여 ‘2002년 세대’로 압축해 부르려는 것은 월드컵과 대선으로 상징되는 ‘전복의 계기’를 합작했다는 단순명료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만하임이 세대의 조건으로 지목한 변동의 자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의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기성세대가 추구했던 목적과는 다른 것을 더 중시한다. 이들의 성장배경에는 ‘민주주의’와 ‘물질적 풍요’라는 두 개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민주주의와 물질적 풍요는 기성세대가 그토록 열망했던, 그러나 후대를 위해 유보하기를 강요당했던 최고의 가치였다. 기성세대의 경험 속에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빈곤과 경제적 풍요간 단층이 존재하지만, 2030에게는 그런 단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와 경제적 풍요를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기성세대의 쓰라린 체험을 고맙게 생각하는 사려 깊은 마음을 간직하고는 있다.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민주화에의 공헌과 경제적 헌신을 무기로 그들의 기준을 자신들의 생활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2030이 20대로부터 40대 초반까지 20년에 걸쳐 있기에 그 내부에도 크고 작은 세대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젊은 층 내부에 그들끼리 중대하게 생각하는 사회적·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서로를 특화하려는 관습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차이는 젊은 세대 ‘내’ 차이보다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기성세대의 경험은 한국전쟁으로부터 출발해 4·19와 5·16, 유신, 박정희의 피살, 광주민주화투쟁, 전두환 통치에서 일단락되고, 1987년 6월 시민항쟁과 양김 시대의 개막, IMF 사태와 김대중의 집권으로 민주화에 대한 기억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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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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