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 오후 11시 반경 김의원의 S아파트를 다시 찾았다. 이틀 전인 3일 노후보가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후보에게 ‘후보단일화 협상’을 공식 제의했다. 하루 전인 4일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 11명이 탈당을 선언했고, 이해찬 선대위 기획본부장은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당시 한화갑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당내에서 “이게 정당이냐”는 말이 나오던 때였다.
김의원은 같은 전남 출신에 서울대 문리대 선배인 한대표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선배는 의원들 탈당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곧바로 사퇴했어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정치적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데….”
당시 선대위 간부 대부분은 노후보와 정몽준 후보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하는 듯한 한대표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김원기(金元基) 고문은 며칠 전 선대위 회의 때 “최근 한대표가 나에게 ‘형님 술 한잔 합시다’고 해서 만났더니, ‘형님, 제가 두 번이나 탈당하려다가 안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더라. 세상에 당 대표가 탈당 안한 것을 자랑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며 노여워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당시 상황은 당 대표조차 노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빴다.
김의원에게 “만일 정몽준 후보로 단일화되면, 노후보가 승복할까요”하고 물었다.
“노후보가 지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는 반드시 승복할 사람이다. ‘8·8 재·보선’ 참패 이후 노후보가 정후보와의 재경선을 주장했을 때 내가 노후보에게 ‘만일 간발의 차이로라도 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노후보는 ‘그러면 내가 정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뛰고, 집권하면 국무총리를 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것으로도 대만족이다’고 말하더라.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말 듣고 놀랐다. 노후보는 그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당시 김의원은 단일화 실패에 대비해 정후보의 신상 관련 각종 의혹 자료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정후보가 대학 시절 시험 도중 부정행위를 했던 전력을 상기시키며 “정후보는 노후보를 커닝해 대통령이 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제발 쓴 소리에 귀 열어라”
다시 해가 바뀌어 2003년 2월11일 밤 김의원 집을 찾았을 때 언론의 관심은 신 정부의 조각(組閣) 작업에 집중돼 있었다.
김의원을 포함해 ‘특 1등 공신’에 분류됐던 선대위 간부 출신 의원들은 ‘현역 지역구 의원 입각 배제’라는 노대통령의 조각 원칙에 막혀 ‘내각 참여’의 꿈을 접은 상태였다.
반면 노대통령은 자신의 ‘386 참모’들에 대해 “나한테만 충성한 사람들이 아니라, 역사에 충성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며 청와대 비서진으로 대거 포진시켰다.
김의원은 대화 말미에 최근 만난 재야의 저명 원로인사 K씨 얘기를 꺼냈다.
“K선생님은 ‘노무현 정부만큼은 꼭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더군.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고 하셨어. DJ가 ‘쓴 소리’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내치면서 눈과 귀가 가려졌고 그래서 국정 운영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는데, 노대통령도 그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하시더군. DJ와 노대통령처럼 역경 속에서 원칙과 소신을 지켜온 지도자들은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하셨어. 나도 그게 제일 걱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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