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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올라갈 땐 인기를 얻지만 내려올 땐 깊이를 찾지요”

록, 발라드, 국악 넘나든 ‘음악작가’ 김수철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올라갈 땐 인기를 얻지만 내려올 땐 깊이를 찾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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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요로 돌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난해 초반 뉴스를 장식했던 이혼도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월드컵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한달 동안 붉은악마의 열렬한 응원에 감동을 받았고, 특히 그들이 고맙게도 내 노래 ‘젊은 그대’와 ‘나도야 간다’를 불러줘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앨범은 록의 열정을 팬들과 나누고 싶어서 내놓은 거예요. 앨범을 낼 때부터 된다 안 된다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상업적인 이유는 전혀 없었고, 이혼문제와는 더더욱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홍보하고 공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데 월드컵 때 시청 앞 응원단에 참여한 젊은 세대가 김수철이란 존재를 알던가요?

“월드컵 축하무대에 섰을 때 일입니다. 응원단이 처음에는 제가 누군지 모르다가 ‘젊은 그대’를 연주하고 ‘치키치키차카차카’를 노래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저 사람이 김수철이구나!’ 하더군요. ‘치키치키차카차카’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에 TV로 방영된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이어서 신세대들도 잘 알고 있는 곡이었어요.”

-12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와 보니 소감이 어떻던가요? 혹 격세지감은 없었습니까? 그간 워낙 환경이 달라져 생경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후배들과 작업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특별한 차이는 없었어요. 다만 그동안 영화 행사 TV드라마 음악을 맡아 곡만 쓰다가 직접 노래를 부르려니 대중가수로서의 호흡을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앨범을 내면서 두 곡이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과거에 비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더라고요. 전에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않았잖아요. 사실 음악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돈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기는 해야 되고.

그래서 금년에는 밴드를 결성해 라이브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뮤직비디오에 쓸 돈을 차라리 여기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후배들은 생각보다 협조적이고 열심이었어요. 전혀 작업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선천적 방랑자 기질?

김수철에 대해 떠오르는 첫 번째 의문은, ‘못다 핀 꽃 한송이’나 ‘내일’을 히트시키며 전성기의 명성을 누리던 중에 왜 가요에 집중하지 않고 국악 영화음악 행사음악 등 대중적으로 승산(?)이 없는 방향으로 달려갔느냐는 점이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히트가요를 써낼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았던 음악인으로서는 의아한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수철은 1984년 한해동안 KBS 최고가수상, MBC 10대가수상 등 언론이 주는 상만 16개를 받았다. 당대 최강이었던 조용필이나 1990년대의 서태지가 부럽지 않은 슈퍼스타였던 셈이다. 아이러니컬하게 그가 잘해도 본전이라는 국악에 몸을 던진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던 이 ‘인기가수’는 밤이면 밤마다 남몰래 여러 국악연주자를 찾아가 열성적으로 사사했다.

-돌이켜보면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런 음악적 선회를 결심한 겁니까? 당시 일각에선 가요계 메커니즘에 동화하지 못하는 ‘선천적 방랑기질’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활동을 열심히 할 때 저에 대해서 많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정착하는 기질이 못 되어 음반 기획사를 이곳저곳 옮겨다닌다느니, 결국에는 회사가 공중 분해됐다느니, 김수철이 잠적했다느니 하는 연예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저와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쓴 기사는 없었어요. 대부분 매니저나 회사의 얘기만을 듣고 제 이야기인 것처럼 포장했을 뿐이죠. 그 기사들 때문에 제가 가요계에 동화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전 오로지 음악만 생각했습니다.

특히 기획사와 관계된 일들은 참 답답했어요. 저는 그들에게 항상 ‘나를 길게 지켜봐달라. 절대로 배반하거나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지요. 하지만 당시 기획사는 음악가의 사고와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전 지금 그때를 ‘사회 레슨’을 받았던 기간으로 여깁니다. 그때는 뜻대로 되지 않아 더러 화도 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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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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