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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변호사·소장파 학자·10년차 386이 핵심

‘新권력’ 참여연대의 속살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2세대 변호사·소장파 학자·10년차 386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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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참여연대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에서 나온 몇 가지 장치를 확인할 수 있다. 세 그룹의 편차를 고려하면서도 어느 한 그룹이 완전히 의사결정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측면을 고려했던 것. 제1기 참여연대 집행부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언론인 그룹에서 유일하게 참여한 김중배 전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았고 사회과학자 그룹의 리더였던 조희연 교수가 비상근 사무처장을, 박원순 변호사가 집행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기획부장이 된 김기식씨를 비롯해 참사연 주도 멤버들은 상근자로 자리를 잡았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학자 그룹은 주로 정책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변호사 그룹은 사법감시센터와 공익소송센터에서, 상근자들은 사무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상근자들은 사무처에서의 직책 이외에 각 위원회 및 센터의 간사도 함께 맡았다. 이를 통해 이들은 ‘사무’에 매몰되는 대신 일주일에 1~2일 출근하는 비상근 임원과 똑같은 권한을 갖고 각 센터별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했다. 당시 의정감시센터 간사를 맡고 있던 박원석씨(현재 휴직 중)는 초창기 참여연대 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서울시 의회 의정평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업 자체를 결정한 것 역시 상근자와 임원의 토론에 따른 것이었고 이후 사업방향이나 방식 또한 철저히 회의를 거쳐 결정했습니다. 당시 참여연대에는 누군가 혼자 결정을 내리거나 먼저 치고 나가는 것에 대해 경계의 분위기가 강했거든요. 임원이든 상근자든 그런 조짐이 보이면 다른 구성원들의 지적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 장윤선 편집장은 “이는 참여연대 내부에 ‘기존 시민운동 조직에서 흔히 나타나곤 했던 임원들의 독선과 상근자의 소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묵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의사결정방식에 있어 이렇듯 ‘엄격한 평등’을 추구한 것은 참여연대라는 조직 자체가 한두 명 명망가의 아이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세 그룹의 ‘연대’로 만들어진 까닭이라는 것이다. 당시 만들어진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까지 참여연대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설명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초창기 참여연대의 슬로건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우선 보수·중산층적 시민운동에 대립하는 진보적 시민운동, 대안이 있는 정책적 시민운동, 법적 절차를 이용한 시민운동, 정권의 성격에 상관없는 종합적 권력감시운동, 인권운동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사법감시와 공익소송, 입법청원 등 법률과 관계된 분야였다. ‘집회와 항의 대신 법적으로 보장된 절차를 활용한다’는 운동방식은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미 경실련이 선보인 기법이었지만 참여연대의 방식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여기에는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접고 1995년부터 상근 사무처장을 맡은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한 인권변호사 그룹의 역할이 컸다. 이들의 활동으로 법률을 활용한 여러 가지 운동방식이 다양하게 선보였고 상당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5년 8월 논란이 거세던 5·18 관련 전직 대통령 처벌문제에 대해 단순한 항의시위나 집회에 그치지 않고 ‘5·18 관련 특별검사제 도입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 그 한 예다.

이후 참여연대라는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남긴 계기가 된 소액주주운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여연대 연구팀의 홍일표 팀장은 “재벌개혁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소액주주의 권리에 주목한 이는 없었다. 주식투자자의 법적권리를 이용하면 재벌의 문제점을 상당부분 개혁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법률적 지식과 경영학 지식, 여기에 젊은 간사들의 실행력이 결합한 시너지 효과였다는 분석이다.

소액주주운동을 이끈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경영·경제학자 그룹은 1995년 6월 무렵부터 참여연대에 합류했다. 1997년 가을 열린 ‘삼성그룹 주식 변칙증여에 관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찾아온 기자들이 거의 없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던 장교수(당시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는 불과 수개월 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같은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하면서 ‘주총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여러 그룹의 결합이 항상 긍정적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경제민주화위원회의 주축을 이룬 장하성, 김상조 등 경영·경제학자 그룹과 비판적 사회과학자 그룹 사이의 논란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몇몇 사회과학자들은 “결국 ‘건전한 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인 소액주주운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할 참여연대 운동과 맞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경영·경제학자 그룹은 “IMF 경제위기를 야기한 한국 경제의 문제는 건전한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를 개혁하자는 운동이 어떻게 개량이냐”고 맞받았다. 논란은 참여연대를 벗어나 외부 사회과학 계간지와 학계에까지 번져나갔고, 결국 정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김대환 인하대 교수 등이 참여연대를 떠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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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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