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감독은 왜 선수를 때리는가

말이 안 통하면 주먹이 앞서는 법…농구공 축구공은 말(言語)이다

  • 글: 김화성 mars@donga.com

    입력2003-03-25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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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구선수에게 공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므로 말과 같은 존재다. 위대한 팀이라면 누군가 공을 잘못 받아서 공이 아웃되더라도 다시 그 선수에게 공을 패스한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그를 신뢰하고 있음을 전달하여 그가 자신감을 갖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구축된 신뢰야말로 위대한 팀을 만들어낸다.”
    감독은 왜 선수를 때리는가
    ‘서로 ‘코드’가 맞아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그렇다. 코드가 안 맞으면 우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분명 똑같은 한국말인데도 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말이 안통하는 경우는 많다. 그것은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말을 할 때의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는 당사자의 기분에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말은 불완전하다.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뜻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당연히 사람 사이의 의사전달은 부정확하게 마련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가령 남자와 여자는 의사 전달 방법이 너무나도 다르다. 생각하고 느끼고 사용하는 언어도 완전히 다르다. 똑같은 말이라도 여자가 이해한 것과 남자가 이해한 것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부부싸움의 90% 이상은 이러한 ‘말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동굴 속의 남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우선 이 방면의 전문가 존 그레이의 말을 들어보자.

    “남자들은 기분이 언짢을 때 무엇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조용히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 문제에 골몰한 나머지 그 외의 것들은 일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의 남자들은 태도가 냉랭하고, 남의 일을 곧잘 잊어버리고, 부주의하고, 반응이 없고, 상대방을 건성으로 대한다.

    가령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 95%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고 나머지 5%만 가지고 대화에 임한다. 해결책을 찾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져 동굴 밖으로 나온다.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 남자들은 그 문제를 잊기 위해 신문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등 뭔가 다른 일을 한다. 그 문제가 너무나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과도할 때는 자동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거나 운동경기에 출전하거나 등산을 하는 등 한층 도전적인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낮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다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자기가 믿는 사람을 찾아가 자기 문제를 속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여자들은 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한결 기분이 풀린다. 여자들에게 자기 문제를 다른 이와 나눈다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의 표시다. 여자들에게 있어 힘겨운 사정이 생겼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유능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깊은 애정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것에 여자들은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여자들은 자신의 어려운 문제와 우울한 기분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연인이 있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 여자들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지친 마음을 서로 허물없이 주고받는다.

    남편이 자기 동굴에 틀어박혀 있을 때 아내가 그를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만약 남편이 집에 돌아와 자신의 어려운 일을 상의해온다면 아내는 얼마든지 남편에게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있고 결국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무시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마침내 남편이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억측을 하게 된다. 남자들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이 무심한 남자와 싸움이라도 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는 듯 명령조로 그의 관심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중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서로 내가 옳다며 싸움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엔 폭력이 뒤따른다. 폭력은 한국 스포츠팀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에 심심찮게 불거져나오는 고질병이다. 심지어 프로야구 감독이 선수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적도 있다. 고참 선수와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폭력은 한마디로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감독과 선수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을까. 왜 고참 선수와 신참 선수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을까. 왜 감독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죄인들처럼 서 있을까.

    지난해 봄 한국과 일본 초등학교의 축구경기를 본 적이 있다. 0-0 상황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 한국 선수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뭔가 듣고 있었고, 코치는 쉴새없이 큰소리로 작전 지시를 했다. 그러나 일본팀 코치는 선수들을 벤치에 앉히고 자신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잘하고 있다. 일본에서 경기한다고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라. 즐겁고 신나게 공을 차라. 그까짓 실수 좀 하면 어떠냐.”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 코치에게 유난히 지적을 많이 당한 한 한국 선수에게 물었다. “코치 선생님이 하신 말씀 잘 들었니?” “예,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 어린 선수는 후반전 내내 코치가 있는 벤치쪽을 흘금흘금 보면서 경기를 했다.

    문득 어느 축구팬의 얘기가 떠올랐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게 있다. 게임 중간에 경기장 밖을 자주 쳐다본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에 지고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경기에 열중하기보다는 경기가 끝난 후 받게 될 비난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지 못한 한구축구문화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감독이 선수들을 때리는 것과 어린 선수들에게 지옥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말한다. “15세 이하 학생들에게는 생리적으로 근력 강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든 아이들은 모두 공차기를 좋아한다.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즐겁게 많은 경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 알통을 키우기보다는 전술훈련을 통해 머리를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을 때릴 경우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한 가지에 집착하게 돼 균형감각을 잃게 되고 창의성이 없어진다.”

    조윤환 전북현대 감독도 한국 스포츠 풍토에 불만이 많다. “난 감독 앞에서 무조건 기는 한국 선수들의 경직된 축구문화가 가장 싫다. 하기야 초등학교 때부터 몽둥이 들고 설치는 감독 밑에서 자란 선수들이니까 감독이 무섭긴 하겠지만. 이젠 감독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선수를 가둬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수들로 하여금 좀더 자유로운 훈련을 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22년 만에 모교 고려대 농구부 감독이 된 이충희씨는 “대학생은 이미 사회인이다. 때려서 가르칠 수 있는 건 때리지 않으면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 가르침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대학시절 무지하게 맞았다. 맞지 않은 날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하지만 난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어떨까. 한국 축구의 영원한 맏형 홍명보는 “선수 생활을 하며 구타나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특히 학창시절 운동선수들은 구타를 성공을 위한 혹독한 통과의례로 여기며 참는 게 대부분이다. 이러한 악습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구타나 폭행은 없어져야 한다. 반짝효과는 가져올 수 있겠지만 결국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길들여져 있다면 진정한 복종이 나올 수 없고 모든 것이 가식이 된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선수는 먼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지도자는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구타도 지도의 한 방법’이라는 마인드를 뜯어 고쳐야 할 때”라며 폭력 절대 불가를 외쳤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리더십의 성패는 자신의 뜻을 얼마나 상대방에게 감동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끝낸 뒤 상대방과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하기보다 듣기가 몇천 배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은 일단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물론 의사전달 수단도 중요하다. 여기엔 ‘몸짓 언어’와 ‘느낌 언어’도 있다. 구기운동의 경우 볼이 언어다. 축구경기에선 축구공으로 동료선수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농구경기에선 농구볼로 대화를 나눈다. NBA의 명장 필 잭슨은 말한다. “위대한 농구팀에는 신뢰감이 형성돼 있다. NBA의 많은 팀들을 보면서 선수들이 공을 못 받을 것이라고 여겨지거나 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선수에게는 어느 누구도 패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위대한 팀은 누구에게나 패스를 한다. 농구선수에게 공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므로 말과 같은 존재다. 위대한 팀이라면 누군가 공을 잘못 받아서 공이 아웃되더라도 다시 그 선수에게 공을 패스한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그를 신뢰하고 있음을 전달하여 그가 자신감을 갖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구축된 신뢰야말로 위대한 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본여자마라톤의 고이데 요시오 감독(64)은 세계적인 명장이다. 그는 바르셀로나올림픽 은메달과 애틀랜타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아리모리 유우코를 키웠다. 또한 2000시드니올림픽 우승과 2001베를린마라톤에서 당시 세계최고기록(2시간19분56초)을 세우며 우승한 다카하시 나오코(31)를 길러냈다.

    그는 선수들을 인정하는 데 천재다. 그는 항상 선수들을 ‘찬양’하고 ‘고무’한다. 그가 쓴 책 ‘너라면 할 수 있어’에서 그는 “난 항상 내가 먼저 선수에게 인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카하시에게도 “Q씨(다카하시 애칭), 고마워. Q씨는 굉장해. Q씨라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고이데 감독은 지난해 12월31일자로 세키스이화학(赤手化學) 마라톤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이 2001년 6월에 설립한 사쿠라 애슬리트클럽(SAC) 주식회사의 대표가 됐다. SAC는 지바·사쿠라시를 거점으로 일본여자마라톤의 세계정복을 위해 만든 러닝클럽.

    고이데 감독이 물러난다는 소식을 들은 다카하시는 곧바로 “감독님, 앞으로도 계속 저를 지도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고이데 감독은 “네가 아테네올림픽을 노린다면 전력으로 너를 도울게”라고 대답했다. 그후 2월28일 다카하시는 세키스이화학을 퇴사하고 SAC로 이적했다. 다카하시는 리쿠르트 시절부터 8년 동안 고이데 감독의 지도를 받아왔다.

    SAC에는 올 1월 오사카국제여자마라톤에서 2시간21분45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키 150㎝의 지바 마사코도 있다. 지바 마사코는 한때 하프마라톤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유망주. 고이데 감독의 꿈은 야심만만하다.

    그가 SAC를 설립한 것은 일본기업에 소속된 마라톤 선수들이 훈련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아침 6시부터 한두 시간 아침훈련을 한 뒤 9시부터는 일반 사원들과 똑같이 근무해야 한다. 그리고 오후 3시30분 이후에야 연습을 한다. 고이데 감독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일반 사원들과 같이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 완전히 (일본은) 이상한 나라야. 이런 일 때문에 육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고 한탄해왔다.

    고이데 감독은 “아테네올림픽까지는 다카하시에 전력투구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SAC로 여자마라톤 1위에서 6위까지 휩쓸어버리고 싶다. SAC를 통해 온세상의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감독은 왜 선수를 때리는가

    국내 체육계에서는 아직도 감독의 구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젠 바뀌어야 한다. 사진은 2002월드컵 한국·포르투갈 대전 장면

    일반적으로 여자 스포츠팀 감독은 남자팀 감독보다 몇배는 더 어렵다. 특히 남자가 여자팀 감독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남자의 언어와 여자가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늘 고이데 감독을 따른다. 그가 회사를 옮기면 선수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같은 회사로 옮긴다. 그 비결은 뭘까. 다름아닌 커뮤니케이션의 힘이다. 고이데의 말과 몸짓 하나하나는 완벽하게 선수들에게 전달되고, 선수들의 언어, 느낌, 기분은 완벽하게 고이데에게 전달된다.

    ‘현대경영학 도사’ 피터 드러커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목청을 높인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소리’와 ‘기대’다. 그러나 누군가 듣는 사람이 없으면 소리는 없는 것과 같다. 커뮤니케이션도 그렇다. 발신자가 아무리 발신을 해도 수신자가 듣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은 없는 것과 같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며 듣고자 하는 것만을 듣는다. 수신자가 바라지 않았던 것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오직 무시당하거나 잘못 이해되기도 한다(중략).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가 수신자의 언어 혹은 수신자가 사용하는 용어로 말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수신자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아야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수신자의 기대를 깨뜨려 ‘각성’을 하게 할 필요가 있을 때의 커뮤니케이션과 수신자를 설득하려 할 때의 커뮤니케이션은 분명 접근 방법부터 다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의하달식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상의하달식 커뮤니케이션은 수신자가 아닌 말하는 사람(발신자)이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킨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요구’다.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수신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무엇을 하기를, 또는 무엇을 믿기를 요구한다. 늘 수신자에게 동기부여를 하고자 한다. 만일 커뮤니케이션이 수신자의 야망이나 가치관 또는 목적에 부합된다면 그것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것이 수신자의 야망이나 가치관 또는 동기와 어긋난다면 그것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저항을 받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와 전혀 다르다. 커뮤니케이션이 ‘지각’인 반면 ‘정보’는 논리다. 정보는 정서, 가치관, 기대, 지각 같은 인간적인 속성이 없을수록 그 신뢰성이 높아진다. 이에 비해 가장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한 논리도 필요없는 ‘순수한 경험의 공유(Shared Experience)’다.” (‘넥스트 소사이어티’ 중에서)

    정서의 공유, 경험의 공유

    그렇다. 커뮤니케이션은 ‘논리’가 아니다. 정서, 가치관, 기대, 지각 같은 인간적인 속성에서 코드가 맞을수록 커뮤니케이션은 잘 이뤄진다.

    이탈리아 축구선수들은 개성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그들은 훈련 스케줄부터 트레이닝 방법, 실전에서의 전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감독과 의견을 나누며 정서를 공유한다. 그래서 조반니 트라파토니 전 이탈리아대표팀 감독은 “감독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로봇 같은 선수는 발전이 없다. 난 훈련 시간에 선수들에게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에메 자케 전 프랑스감독 같은 이는 “감독과 선수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외국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 나라 말을 못하면서 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히딩크가 한국대표팀 감독 시절 “큰 소리로 말하라. 고함쳐라.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물어보라. 왜 한국선수들은 질문이 없나. 왜 내 말에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가. 실전에서는 감독이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게 축구다. 평소 훈련할 때 느낀 점을 서로 토론해야 실전에서 효과가 크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정서의 공유, 경험의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서로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 오늘날 모든 조직에서 조직원은 더 이상 명령과 복종의 관계에 있지 않다. 조직원은 파트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는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만 한다. 피터 드러커는 조직원들을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처럼 취급하고 관리하라’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이 시종 평행선을 그은 것도 서로 ‘정서의 공유, 경험의 공유’가 없어서이다. 서로 논리로만 얘기하려 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대통령이 이해하는 뜻과 검사들이 이해하는 뜻은 다르다. 더구나 그 토론회는 형식이야 어떻든 대통령과 평검사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이뤄졌다. 대통령이 평검사의 말을 자르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느 검사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리더는 조직원이 말하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말과 말 사이의 ‘틈’을 잘 헤아려야 한다.

    ‘침묵의 소리’들어야 진짜 리더

    선(禪)에 심취한 필 잭슨 감독은 이런 면에서 도사다. 그는 “감독은 우선 선수들의 이야기를 비판 없이 들어야 한다. 상황이나 이해 관계에 상관없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팀원들의 몸짓언어를 잘 살펴보고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주목해야 한다.”

    소설가 신경숙씨도 필 잭슨 못지않다. 그녀는 말한다. “틈은 얼핏 사람 사이의 단절같이 보이지만 오히려 소통을 돕는다. 개인의 고유한 점, 어떤 상처, 틈이나 거리를 인정해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틈까지 짜맞추는 완전한 결합은 인간 세상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헤아리면 커뮤니케이션은 물 흐르듯이 흐르게 돼 있다. 틈과 간격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끔찍하다. ‘TV 생중계’나 ‘공개 토론회’는 이런 틈새를 용인하지 않는다. 활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인간관계를 강파르게 만든다. ‘노대통령과 평검사의 만남’은 로맨틱하게 보이지만 실제 그것이 생중계되고 활자로 기록되면 ‘더운 피’가 흐르지 않는다.

    오늘날 모든 스포츠팀의 감독과 선수는 본질적으로 대등하다. 더 이상 명령과 복종의 관계에 있지 않다. 그들은 공으로 대화를 나눈다. 공을 주고받으면서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불립문자(不立文字). 말이나 문자는 그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감독들은 선수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말이 끝난 자리, 말과 말 사이의 틈새가 말하는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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