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서로 내가 옳다며 싸움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엔 폭력이 뒤따른다. 폭력은 한국 스포츠팀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에 심심찮게 불거져나오는 고질병이다. 심지어 프로야구 감독이 선수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적도 있다. 고참 선수와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폭력은 한마디로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감독과 선수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을까. 왜 고참 선수와 신참 선수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을까. 왜 감독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죄인들처럼 서 있을까.
지난해 봄 한국과 일본 초등학교의 축구경기를 본 적이 있다. 0-0 상황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 한국 선수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뭔가 듣고 있었고, 코치는 쉴새없이 큰소리로 작전 지시를 했다. 그러나 일본팀 코치는 선수들을 벤치에 앉히고 자신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잘하고 있다. 일본에서 경기한다고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라. 즐겁고 신나게 공을 차라. 그까짓 실수 좀 하면 어떠냐.”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 코치에게 유난히 지적을 많이 당한 한 한국 선수에게 물었다. “코치 선생님이 하신 말씀 잘 들었니?” “예,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 어린 선수는 후반전 내내 코치가 있는 벤치쪽을 흘금흘금 보면서 경기를 했다.
문득 어느 축구팬의 얘기가 떠올랐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게 있다. 게임 중간에 경기장 밖을 자주 쳐다본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에 지고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경기에 열중하기보다는 경기가 끝난 후 받게 될 비난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지 못한 한구축구문화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감독이 선수들을 때리는 것과 어린 선수들에게 지옥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말한다. “15세 이하 학생들에게는 생리적으로 근력 강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든 아이들은 모두 공차기를 좋아한다.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즐겁게 많은 경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 알통을 키우기보다는 전술훈련을 통해 머리를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을 때릴 경우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한 가지에 집착하게 돼 균형감각을 잃게 되고 창의성이 없어진다.”
조윤환 전북현대 감독도 한국 스포츠 풍토에 불만이 많다. “난 감독 앞에서 무조건 기는 한국 선수들의 경직된 축구문화가 가장 싫다. 하기야 초등학교 때부터 몽둥이 들고 설치는 감독 밑에서 자란 선수들이니까 감독이 무섭긴 하겠지만. 이젠 감독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선수를 가둬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수들로 하여금 좀더 자유로운 훈련을 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22년 만에 모교 고려대 농구부 감독이 된 이충희씨는 “대학생은 이미 사회인이다. 때려서 가르칠 수 있는 건 때리지 않으면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 가르침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대학시절 무지하게 맞았다. 맞지 않은 날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하지만 난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어떨까. 한국 축구의 영원한 맏형 홍명보는 “선수 생활을 하며 구타나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특히 학창시절 운동선수들은 구타를 성공을 위한 혹독한 통과의례로 여기며 참는 게 대부분이다. 이러한 악습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구타나 폭행은 없어져야 한다. 반짝효과는 가져올 수 있겠지만 결국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길들여져 있다면 진정한 복종이 나올 수 없고 모든 것이 가식이 된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선수는 먼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지도자는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구타도 지도의 한 방법’이라는 마인드를 뜯어 고쳐야 할 때”라며 폭력 절대 불가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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