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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국사 해체론인가

단일민족 신화, 민족국가 열망에 대한 ‘도발’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왜 지금 국사 해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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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수에 따르면 19세기까지 한국인들에게 ‘민족’은 그 개념조차 없었다. 원래 ‘족(族)’이란 왕족·귀족·사족과 같이 지배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었지 피지배신분인 ‘민(民)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혈연공동체니 민족이니 하는 것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민족’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로, 조선왕조가 위기에 처하자 집단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일본으로부터 ‘민족’이라는 말을 수입해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본 제국주의의 대항물로서 탄생한 한국의 민족주의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국사라는 것이다.

이교수는 “국사의 신화적 속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왕조의 문민정치를 서유럽 근대 민주주의와 거의 같은 수준의 문명으로 평가하려는 최근 국사학계의 시도를 꼽을 수 있다”며 “조선왕조는 어디까지나 재분배에 기초한 도덕경제요 도덕사회이지 근대의 경제사회는 아니었다”고 못박는다.

또 민족주의 사학이 과거를 미화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 나라(일본)를 주저없이 ‘강포한 도둑’이나 ‘악의 화신’이라 부를 만큼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반면, 반문명의 극치라 할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을 봉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대 박지향 교수(서양사)는 이영훈 교수가 지적한 민족주의 사학의 폐해에 공감하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동아시아를 방문하고 관찰한 영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기록한 데서 민족주의는 자연 발생적인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즉 한 민족이 한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19세기식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정체성 형성의 범주로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면서 국민국가 체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국가는 이제 시민들에게 한 가지 정체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족주의의 태생적 한계



또 박교수는 국민국가에서 민족주의는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념이었으며, 그 민족주의는 ‘나와 남’의 테두리를 규정하고 구별짓는 이데올로기였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의 ‘예정된 숙명’에 대한 믿음과 ‘영광과 구원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민족의 신화를 짓밟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태생적으로 파괴를 함유하며, 비이성적이고, 편협하고 증오심을 유발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교수는 ‘국사 해체’라는 주장이 학술적 범위를 벗어나 이미 정치적 장(場)으로 진입했다는 현실론에 입각해 반론을 제기했다. 첫째, 세계가 여전히 국민국가 체제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의 약화는 민족의 약화일 뿐이다. 둘째 특히 현재 한국이 처해 있는 국제정치적 조건-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 여건과 분단국가-때문에라도 민족주의를 강력히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족통일이라는 대명분 때문에 민족주의는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 호소력을 갖는다. 이에 대한 국사 해체론자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또 다른 토론자인 인하대 이영호 교수(한국근대사)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역사포럼이 해체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국사’란 과연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영호 교수는 이 토론회가 타깃으로 삼은 것이 ‘국가주의적 역사이해의 해체’로 보인다며, 그러나 해체의 대상으로 점 찍힌 국사가 과연 한반도에서 어떻게 시작됐으며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현실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호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국사는 식민주의사학에 의해 구축됐고 그나마 식민지 하에서 한국의 역사는 역사체계 속에서 사라졌음을 강조했다. 1911년 1차 조선교육령에서 역사과목이 없어졌고, 1922년 2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일본역사를 가르쳤으며 1927년 일본사가 ‘국사’로 바뀌었다. 1938년 3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민족적인 것의 말살, 내선일체의 강조, 대동아 공영권의 역사적 사명이 강조되는 국사편찬이 이루어졌다. 이는 독자적인 국민국가와 민족의 형성에 실패한 집단이 세계사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 보여준다.

이영호 교수는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인데 그것을 동등하게 평가해 ‘주변부의 저항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거울반사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양자는 적대적 공범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국권회복을 목표로 무력을 선택한 의병과 국운의 융성을 위해 무력으로 진압한 일본군을, 무력을 동원하고 민중의 희생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적대적 공범관계로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국사 해체론 대신 애국주의에 기초한 미국의 세계패권전략, 일본의 군사대국화, 중국의 티베트 탄압과 러시아의 체첸 탄압 등 현존하는 적대적 공범관계의 청산을 촉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국사 해체’라는 과격한 표현을 걷어내고 나면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한 비판은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1994년 임지현 교수는 ‘역사비평’ 가을호에 ‘한국사학계의 민족 이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금기나 다름없던 민족주의 역사학의 영역에 도전했다. 사실 그 무렵 한국사학계는 1980년대를 풍미한 민족 해방론과 민중 민주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역사연구를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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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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