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④

‘虛의 미학’을 가진 배우 신성일

“여자를 예뻐하지 않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虛의 미학’을 가진 배우 신성일

3/9
-당시 엄앵란씨는 대선배였죠? (엄앵란은 신성일보다 1년 연상이며, 당시 학사배우 1호로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럼요, 나는 감히 말도 못 붙였죠.”

-이후 배우 공개모집을 통해 신필름에 들어가셨더군요. 자료를 보니 신필름 시절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하셨던데요.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공식적인 데뷔작 ‘로맨스 빠빠’를 찍으셨고요.

“학원에서 이론은 배웠는데, 막상 신필름에 들어가니 이건 완전히 노동판이에요. 월급을 5만원씩 받았는데 사무실 청소부터 잔심부름까지 모두 내 몫이었죠.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한국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에서 살아야겠다’ 싶어 가회동에 하숙을 얻어 한 달에 2만5000원씩 주고 살았죠. 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배짱이 보통이 아니었죠.”

‘아낌없이 주련다’의 대성공



언론에 알려진 신성일의 데뷔작은 신상옥 감독의 1960년작 ‘로맨스 빠빠’다. 그러나 정작 신성일씨 본인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를 본격적인 데뷔작으로 꼽는다. 신필름을 이끌고 있던 신상옥-최은희 부부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어 신필름을 떠나 극동흥업으로 옮긴 다음에 찍은 작품이었다.

“트러블이라는 말은 안 맞아요. 그분들은 하늘 같은 분들이었고 나는 바닥에 있었으니까. 그분들 입장에서는 그저 찻잔 속의 태풍이었죠, 나한테는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아낌없이 주련다’는 공부를 많이 하고 찍은 영화예요. 호현찬씨가 ‘동아일보’ 기자로 계실 때 영화 기획이나 자문을 많이 하셨거든요. 친구인 한운사씨가 쓴 라디오 드라마가 굉장히 히트하니까 이걸 영화로 만들자고 생각하신 거죠. 연상의 여인과 젊은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였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호현찬씨는 ‘이 영화는 연하의 남자를 누가 맡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랬는데 내가 발탁된 거죠.

원래 유현목 감독은 감히 신인을 쓸 생각은 못하고 최무룡씨를 염두에 두고 있었대요. 그런데 호현찬씨가 펄펄 뛰더라는 거지. 연하의 남자와 연상의 여자가 사랑하는 스토리인데 최무룡과 이민자는 안 맞다 이거야. 그런데 신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호현찬씨가 신필름에서 전화 심부름 하고 있던 내 생각이 났나 봐요. 부르길래 달려나가 시나리오를 봤더니 ‘아이고, 이게 바로 내 작품이다’ 싶더라고요. 이 영화 한 편이면 내 앞길이 탁 트일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어요.

신필름에 가서 ‘나 나가겠소’ 했더니 담당간부가 대뜸 ‘임마, 전속이 가긴 어딜 가’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금고를 열어 계약서를 보니까 3년 계약이 이미 끝난 상황이었죠. 그때 남궁원씨는 재계약을 해주고 나는 별 볼일 없다고 재계약을 안 했었거든요. 이 간부가 화가 잔뜩 나서는 빰을 때리더라고요. 배신했다는 거죠. 얻어맞은 뺨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면서 신필름을 나왔죠.”

-그 무렵에는 앤터니 퍼킨스를 보면서 연기공부를 열심히 하셨다고요.

“‘아낌없이 주련다’와 비슷한 외국 영화가 있었어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영화였죠. 잉그릿 버그만하고 앤터니 퍼킨스가 공연했는데 이것도 연상의 여인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에요. 앤터니 퍼킨스가 섬세한 연기를 잘하잖아요. 저걸 보고 배워야겠다 싶어 눈빛 하나, 동작 하나를 다 메모했어요. 나 나름대로 콘티도 짰고요. 그걸 완벽하게 머릿속에 넣어가지고 처음 현장엘 가서 촬영을 했더니 유현목 감독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열심히 준비했으니 당연히 효과가 있었던 거죠.

그후 러시(rush·편집되기 전의 필름을 가리키는 영화용어) 시사회를 하는데 나는 떨려서 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에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제작자랑 감독이 아주 기분 좋은 얼굴로 들어오더라고요. 사장이 날 찾길래 들어갔더니 “기막히게 잘했다”며 보너스로 10만원을 주더군요. 용기 백배했죠.”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이 영화에서 이민자씨의 역할은 전쟁 미망인이었죠. 무대는 부산이었고요. 6·25가 끝난 직후였으니 전쟁 이후의 삶을 그린 영화들이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회고하신 걸 보니 이민자씨 때문에 가슴이 많이 설레었다고 하셨던데요.

“부산 다대포에서 영화를 찍는데 이민자씨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부리부리한 눈에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종아리도 예뻤고…. 우리 집사람이 이민자씨 동생으로 출연했는데 집사람은 종아리가 굵잖아요(웃음). 그때는 이민자씨가 김진규씨하고 이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혼자된 여인이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고나 할까. 흔히 나보고 ‘항상 여자를 그리워하는 얼굴’이라던데, 그때 이민자씨 눈이야말로 ‘남자를 그리워하는 눈’이었어요. 지금도 그 영화를 보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나요.

그때 나는 실제로 어느 연상의 여인과 연애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막 해도 되나? 결혼하기 전이니까 뭐. 어쨌든 그 여인이 나중에 큰 재벌의 부인이 됐어요. 내가 어느 잡지사에서 주는 연기상을 받으러 갔더니 글쎄 그 부인이 시상을 하러 걸어 나오는 거예요. 나에게 상을 주려고 일부러 자기가 나온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무대 위에서 ‘내가 아주 큰 집에 들어갔어요’ 그러더라고요. 아주 대단한 여인이었지….”

3/9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연재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

더보기
목록 닫기

‘虛의 미학’을 가진 배우 신성일

댓글 창 닫기

2022/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