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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①|지리산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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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산장에서 벽소령으로 가는 길은 지리산 빨치산들이 가장 처절하게 싸웠던 현장이다. 먼저 세석산장에서 대성골로 이어지는 계곡은 최후격전지로 유명하고, 벽소령에서 의신마을로 내려가는 빗점골은 지리산 유격대장이었던 이현상의 아지트로 알려져 있다. 대성골과 빗점골은 찾는 사람이 적어서 일단 산에 들어서면 능선에 오를 때까지 혼자서 산행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고독을 즐긴답시고 함부로 찾아갈 일은 아니다. 지리산국립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뱀도 많고 반달곰이 자주 출몰하는 코스라고 한다.

오후 2시. 벽소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음정골로 이어지는 옛 군사도로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음정골은 벌꿀로 유명한 곳인데, 몇 해 전 물난리가 나서 주민들이 큰 피해를 당했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음정골을 내려다보면 상하로 길게 늘어선 줄무늬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산사태의 흔적이다. 음정골로 가까이 갈수록 수마의 상처는 더욱 처절해 보였다. 아직까지도 다리는 끊겨 있고, 나무는 쓰러져 있다. 이 때문에 예전 같으면 마을에서 곧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요즘은 아스팔트길을 한참이나 더 걸어가야만 한다.

같은 길이지만 다른 길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피아골에서 임걸령으로이어진 산행길에서 잠시 포즈를 취한 필자와 아들.

10월 11일. 1주일 만에 다시 배낭을 챙겼다. 이번엔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 버스를 타고 중간 기착지인 마천에서 내렸다. 마천은 음정골로 가는 입구로, 지난주에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이 코스를 택한 것이다. 이곳에서 하차한 이유는 더 있다. 바로 마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원조 소문난 자장’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이 중국집의 사장 겸 주방장은 팔이 하나 없는 분인데, 한 손으로 정성껏 볶아낸 자장 맛이 일품이다. 값은 3000원. 그리 비싸지도 않다. 게다가 주방 앞에 서서 외팔이 아저씨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후 3시30분. 음정골로 들어가기에 앞서 막걸리와 손두부를 샀다. 어차피 산 중턱에서 해가 떨어질 거라면, 취기를 느끼며 걷는 것도 괜찮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음정골로 가는 들녘에서는 추수가 한창이고, 전망 좋은 터에서는 관광객들의 춤판이 뜨겁다. 가뜩이나 좁은 마을길은 관광버스 때문에 더욱 어지럽고, 그 사이사이로 경운기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똑같은 길도 내려갈 때와 올라갈 때가 다르다는 말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1주일 전 여유롭게 내려서던 그 길이 다시 올라서려니 적지 않은 피로를 안겨준다. 그래도 갈 수밖에 없다. 해는 떨어졌고 산중에는 몸 누일 곳도 마땅치 않다. 다행스럽게도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민박집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샛길로 들어섰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밤길에 단단히 고생할 뻔했다.

저녁 7시40분. 마침내 벽소령산장에 도착했다. 벽소령은 본래 달로 유명한 곳이지만 구름이 많아 달구경은 진작에 포기했다. 밤길에 힘을 너무 뺀 탓인지 저녁 생각도 없었다. 야외 나무식탁에 앉아 밤풍경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배낭 속에서 적당히 뒤섞인 김치와 손두부가 알싸한 냄새를 풍겼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미군부대에서 일한다는 중년의 아저씨가 막걸리 냄새가 좋다며 옆에 와 앉는다. 필자는 그분에게 막걸리를 따라주었고, 그분은 미군들이 먹는 시레이션을 안주로 내놓았다. 우리는 ‘미군’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서로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산에서는 그런 일도 다 넘어가게 마련이다. 다들 머리를 씻으러 산에 들어왔기에, 조금 복잡해진다 싶으면 자세를 낮추고 알아서 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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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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