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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①|지리산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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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雲海, 심산계곡  ‘달력속의 풍경’

주능선에서 바라본 운해.

12일 아침 6시40분. 컵라면과 이동식 전복죽을 먹고 연하천을 향해 출발했다. 아내가 일러준 일기예보대로라면 비가 내려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가 올 조짐은 없다. 봉우리 하나 넘을 때마다 하늘 빛이 바뀌었지만 비구름은 보이지 않는다.

오전 10시. 삼도봉에서 긴 휴식을 취했다. 평소 같으면 뱀사골에서 원기를 회복하고 출발했겠지만, 그곳엔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냥 달리다 보니 삼도봉까지 왔다. 삼도봉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나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반야봉인데, 지리산 종주에 나선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봉우리를 슬쩍 빼버리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야봉은 한번쯤 거쳐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지리산 주능선을 멀리서 바라보면 크게 천왕봉과 반야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양새를 띤다. 또한 예로부터 반야봉 아래쪽에는 수도승들의 거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산은 사람을 기른다’라는 백두대간 순례기를 쓴 윤제학 선생은 반야봉을 지리산의 ‘심장’이자 ‘나이테’라고까지 평한 바 있다. 반야봉이 간직한 또 하나의 놓칠 수 없는 볼거리가 바로 낙조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가장 운치 있고 장엄하다.

12시05분. 노고단(해발 1507m)에 도착했다. 노고단의 멋은 운해와 아고산식물군이다. 운해는 여름철 아침에 특히 아름답고 아고산식물군은 자연탐방시간에 둘러보는 게 좋다. 지리산국립공원은 생태계 복원을 위해 곳곳에 출입통제구역을 만들었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변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인가 보다.

성삼재에서 구례로 내려가는 길은 단풍 관광차량으로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운전자들은 길이 막힌다 싶으면 곳곳에서 경적을 울려대며 통행을 재촉했다. 2차선 도로 위에 불법으로 주차시킨 차량들 때문에 체증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필자는 그제서야 어정쩡한 시간대에 산에서 내려온 것을 후회했다. 단풍철에는 아주 일찍 도망가거나 아주 늦게 빠져나와야, 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는 충고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단풍을 봐야 ‘거시기’를 하고

가을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마당에 지리산의 단풍을 빼놓고 ‘거시기할(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고심 끝에 어머니와 네 살 된 아들 녀석을 데리고 단풍구경을 가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네 살짜리가 어떻게 지리산에 오르느냐고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아이들은 몸이 가벼워 어른보다 더 쉽게 산에 오르는 것 같다. 다만 무리할 경우 연골 등을 다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쉬면서 올라가야 한다.

10월27일 새벽 0시25분. 수원역에서 기차를 탔다. 지리산으로 가는 고전적 교통편인 전라선 마지막 열차다. 10월 말은 단풍도 단풍이지만 천왕봉의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서 그런지, 기차의 좌석은 대부분 등산객들로 채워져 있었다.

새벽 5시10분. 구례구역은 서울보다 쌀쌀했다. 구례터미널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피아골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참나무가 많아 다소 밋밋한 것이 지리산 단풍의 특징이라지만, 피아골과 거림 계곡만큼은 설악산 못지않게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예상대로 직전마을을 지나 삼홍소에 이르자 사방이 붉게 타는 장관이 연출됐다.

이곳에서부터 피아골산장으로 오르는 길이 바로 그 유명한 피아골이다. 이 지역 사람들에 따르면 원래는 피가 많이 자라서 피밭골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피아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피아골이라는 지명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데는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영향도 컸다. ‘태백산맥’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하대치’가 빨치산 씨름대회에 출전해서 아깝게 2위를 차지하고, 소를 잡아 축제를 벌이는 이른바 ‘피아골 대합창’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오전 11시. 피아골산장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임걸령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코스는 계단이 많아서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길이다. 아니나다를까, 어머니가 통증을 호소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오르는데, 아들 녀석은 저만치 앞서가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확실히 이 녀석은 타고난 산꾼인가 보다. 네 살에 지리산을 세 번이나 올랐으니, 산꾼이라 불러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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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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