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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분석|‘인기폭발’ 강금실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사랑…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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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2003년 11월29일 강 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전국 일선 지검장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이날 회의가 끝나고 국무위원 식당에서 점심 먹는 자리에서 강 장관이 초청한 실내악단이 현악4중주를 연주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반응이 좋았어요. 오신 분들도 좋아하고. 회의하면서 문화행사 하는 건 보편적인 거라 보거든요. 그런데 법무부나 검찰에서 그런 예가 없었는지 국무위원 식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참 좋던데요.”

-검사장들이 머쓱해하지 않던가요.

“좋아하시던데요.”

-익숙지 않을 텐데요.



“좋아했어요. 모르죠, 속으론 어땠는지.(웃음)”

-장관님을 보면, 몸 속에 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예술적 끼.

“누구나 다 있잖아요.”

-정열적인 끼가 느껴집니다. 내림인가요.

“예술적 재능이 유전되긴 했어요. 아버지가 음악 선생이었거든요. 바이올린 하셨어요. 손재주가 뛰어났지요. 자식들이 음악적 소질은 있는 것 같아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습니까.

“북 두드리는 걸 좋아하는데, 하도 배우다 말고 배우다 말고 해서. 대학 2학년 때 탈춤반에서 활동했는데, 법대 왔으니까 이런 건 그만둬야 한다, 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두고. 그런 식으로 20년, 30년 가버린 거죠. 전 타악기를 좋아해요. 장고도 배우다 말았는데. 북은 나중에 다시 배워야죠.”

-춤은 인간문화재한테 배우셨죠?

“계속 배우지 못해 아쉽죠. 85년에 처음 배웠는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배우다 말고. 그 후에 또 한 차례 배우다 말고.”

-춤을 추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정신이 산만하면 춤을 못 춰요. 머리를 비워야 춤을 출 수 있어요. 너무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이 많고 잡념이 있으면 못 춰요. 손발은 움직이지만 몸이 무겁죠. 오래 추다 보면 호흡이 저절로 배 밑으로 가라앉거든요. 명상 호흡법과 원리가 같죠. 명상 수준에 이르러야 제대로 몰입해 출 수 있어요.”

판사 시절 춤을 배우다 만 게 못내 아쉬웠던 강 장관은 변호사 개업 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의욕에 경기도 도살풀이 인간문화재인 김숙자 선생의 딸한테 1년 가까이 춤을 배웠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잘 늘지 않았다.

“96년인가 97년에 배웠는데, 영 안 되더라구요. 정신이 산만하니까. 변호사 개업한 다음 계속 돈 문제, 사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명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거예요. 처음엔 그냥 배우고 싶어 배웠는데 추다 보니 명상 효과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춤 배운 게. 사람들한테 권하고 싶죠. 차분해지죠, 이런 공간처럼.”

-현대 댄스와는 많이 다르죠?

“요즘 유행하는 검도나 단전호흡, 요가와 원리가 같다고 봐요.”

“기형도 시 좋아해요”

-첫 직업이 판사인데, 판사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그 주변을 왔다갔다했겠죠. 무용평론을 했던지.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죠. 대학교 1, 2학년 때는 불교와 신학에 관심이 많아 그쪽 책을 많이 봤죠. 그 후 사느라고 바빠 불경도 안 보고 절도 안 가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30, 40대가 가장 세파에 시달리는 나이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50이 지나 늙으면 옛날로 돌아가 명상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저도 시집을 제대로 읽은 지 한 10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난 또 시집을 냈다고 그러는 줄 알았네.(웃음) 국문과 나오면 다들 시집 안 내나.”

-아닙니다. 국문과 나왔다고 다 시집 내나요. 법대 나왔다고 다 사시 되는 것 아니듯.

“어떤 시, 누구 시 좋아해요? 나는 기형도 시 좋아해요. 특별한 느낌이 있는 시예요.”

-저는 예전엔 김수영을 좋아했고….

“저도 좋아해요. 대단한 시인이지요.”

강 장관은 문학 얘기를 더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갈 길이 먼’ 기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내심 나중에 틈 봐 다시 얘기해야지 하고는. 하지만 문학 얘기를 더 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기자는 후회했다. 특검 얘기를 덜 하더라도 문학 얘기를 더 하며 강 장관의 정서를 더 깊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법대는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고등학교 때까지 잘 모르잖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 줄을. 10대는 자기 확인을 잘 못하는 나이 아닌가요. 인생에 대해 종교에 대해 관념적인 번민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직업 선택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 같아요. 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데생도 배우러 다니고, 사진도 찍고, 연애도 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인이 안 됐던 것 같아요. 미학 강의도 듣고, 종교학 강의도 듣고. 그때만 해도 서울대 법대에 여학생이 세 명 들어갈 때였으니까. 객관적으로 성적이 너무 좋았거든요. 집에서 기대가 너무 크고 법대 가라고 주문하니까. 판사 하라고.”

-성적이 좋은 게 문제였다?(웃음)

“공부를 너무 잘한 게 문제였죠.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하여튼 1등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법대에 들어간 거예요. 사실 갈등이 있었어요. 다른 것을 할까 말까. 10년쯤 지나니 갈등이 없어지더라구요. 예술도 현실 속에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고. 우리 삶이라는 게 직업을 통해 생계도 해결하고, 전문성도 갖추고, 신분도 보장받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그런 구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죠. 누구나 현실과 접점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법대 가서 법률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죠.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죠. 다른 직업을 딱히 잘했을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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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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