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철저 추적

KAL 858기 사건의 진실게임

의혹은 있다. 그러나 조작은…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KAL 858기 사건의 진실게임

2/9
KAL 858기 사건의 진실게임

뮌헨올림픽 때 유혈사태를 일으킨 PLO 소속 검은 9월단.

155mm포탄에 실려 발사되는 살포지뢰가 도입된 것도 이때였다. 당시 살포지뢰는 미국에서 개발한 최신무기였는데, 한국군은 이를 수입해 휴전선에서 서울을 잇는 최단 노선인 문산-파주 축선 부대에 집중 배치하였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일명 ‘삐삐’가 크게 유행했다. 그런데 사전 약속을 하면 삐삐로 들어오는 숫자를 암호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삐삐에 19039라는 숫자가 찍히면 ‘A요인을 암살하라’는 암호가 되고, 33097이면 ‘B시설을 파괴하라’는 지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87년 한국 정보기관들은 북한 해주에서 한국이 삐삐 전파의 교신을 위해 허가해준 주파수대와 같은 전파가 발사되는 사실을 포착했다. 해주발 삐삐 전파는 서울을 지나 수원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의 공작조직이 삐삐를 이용해 지령을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은 파주에 해주발 삐삐 전파를 차단하는 방해전파 발신 시설을 설치했다.

북한 고정간첩은 무전기로 교신하는데, 이들은 무선 교신을 통해 북한에 공격 포인트를 알려줄 수도 있다. 따라서 수상한 전파의 발신지를 추적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 일을 위해 한국은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 산하 중앙전파관리소로 하여금 무선 전파 발신지를 추적하는 ‘방향탐지기’를 도입해 서울 등 대도시 주변에 설치하도록 했다.

이렇게 88올림픽을 앞둔 1987년 남북한은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안기부 관계자는 “그런 시점에 KAL 858기 사건이 터져 실종 소식을 듣는 순간 북한 소행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집에서 쉬다가 TV 자막으로 KAL 858기 실종 사건을 알게 된 안기부 대공수사관 K씨도 “같은 이유로 북한의 소행일 것으로 짐작했다”고 말했다. K씨는 회사 당직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출근을 서둘렀다. K씨의 집은 서울 반포 부근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남산 1호 터널 부근에 있던 안기부 2청사까지는 자동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간부들에게만 비상이 걸린 듯 하급 직원들은 나오지 않았다.



안기부 간부들, ‘북한 소행’ 직감

삼삼오오 모여든 간부들은 그러나 TV를 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기자들 역시 실종된 KAL 858기는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 외에는 이렇다할 정보를 내놓지 못했다. 밤 11시쯤 별다른 소식이 없자 “일단 귀가했다가 내일 아침 일찍 나오라”는 지시가 떨어져 K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인 11월30일 언론은 1983년 9월1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격추된 KAL 007편처럼 KAL 858편도 공중폭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안기부에서도 북한이 KAL 858기를 폭파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북한 관련 사건인 만큼 이에 대한 조사는 대공수사단 수사공작과에 배정됐다.

이날 정부는 KAL 858기가 추락했거나 불시착했을 가능성이 있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역 등을 조사하기 위해 홍순영(洪淳瑛) 외무부 2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정부합동조사단 25명을 현지로 급파했다.

KAL 858편은 11월28일 밤 11시30분(현지시각) 이라크의 바그다드공항을 이륙해 UAE(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공항에 기착했다가 다시 이륙해 다음 기착지인 태국의 방콕공항으로 가다가 미얀마 부근 안다만해 상공에서 사라졌다. 이 비행기가 폭발물에 의해 공중폭발되었다면, 폭약을 설치한 범인은 아부다비공항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부다비공항에서는 KAL 858기에서 15명의 외국인이 내린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 명단은 즉각 입수되었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아부다비공항 입국신고서에 ‘신이치’와 ‘마유미’라고만 쓴 일본인 남녀였다. 통상 일본인들은 출입국 신고서에 성(姓)을 적는데, 두 사람은 이름을 써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공항을 출입할 때는 성명이 기재된 여권을 제시하므로, 두 사람은 ‘하치야 신이치(蜂谷眞一)’와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로 확인되었다. 사용한 항공권을 조사하자 이들은 11월19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항공사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유고의 베오그라드→이라크의 바그다드→UAE의 아부다비→바레인까지 가는 항공권을 구입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 항공권을 구입할 때도 이들은 이름만 사용하였다.

두 사람은 이 여정에서 바그다드→아부다비 구간을 KAL 858편을 이용했다. 두 일본인 남녀가 수상하다는 소식은 즉각 일본으로 통보돼, 일본 외무성은 두 사람의 여권 조사에 착수했다. 여기서 하치야 신이치는 실존하는 일본인 남자로 확인되었으나, 하치야 마유미는 없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하치야 마유미의 여권번호(MG5021208)는 남자용이라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2/9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목록 닫기

KAL 858기 사건의 진실게임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