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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100년 전 일본이 강탈한 북관대첩비, 왜 못 오나

반환추진위 VS 외교부 책임 공방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100년 전 일본이 강탈한 북관대첩비, 왜 못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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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본이 강탈한 북관대첩비, 왜 못 오나

가키누마 스님

2000년 4월 어느 날, 초산 스님은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일본의 가키누마라는 스님이 한국에 와서 꼭 한 번 뵙고자 하니 00호텔 로비로 나와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었다. 초산 스님은 연유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가키누마 스님이 귀무덤, 코무덤의 환국을 주도했고 사재를 털어가며 수년째 북관대첩비 반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고마움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끄러미 초산스님을 바라보던 가키누마 스님은 종이에 쓱쓱 ‘줄탁동기(啄同機)’ 넉 자를 써서 내밀었다. 줄은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탁은 밖에서 어미닭이 쪼는 것을 가리킨다. 즉 새끼가 두꺼운 껍질 안에서 연약한 부리로 신호를 보내면 어미닭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쪼아 껍질이 깨지면서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의미다. ‘벽암록’에 나오는 그 네 글자를 보는 순간 초산스님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때를 놓치지 말고 나와 함께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하자’는 숨은 뜻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가키누마 스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세 번 머리를 숙여 미소에 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노승의 인연은 북관대첩비 반환추진위원회(이하 반환추진위) 공동의장직을 맡는 것으로 발전한다.

“일본의 한 스님이 과거사를 참회하는 것으로 수행목표를 삼고 이렇게 10년 넘게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면 이것은 진짜다, 누군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 일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한일불교복지협회도 만들고 반환추진위원회도 발족한 겁니다. 벌써 4년이 넘었는데 하도 힘들어서 둘이 손을 부여잡고 운 것이 수차례요.”(초산)

[장면 ④] 2004년 7월13일 서울, 기자회견

“만일 이번에도 한국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나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7월1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키누마 스님은 선언했다. 이는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해 15년 쌓아온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키누마 스님은 “대첩비는 일본에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요청만 있으면 반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한국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일본이 북관대첩비를 소유해서 득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일본 내 한국문화재 반환의 선례와 남북관계의 문제점을 들어 반환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키누마 스님이 부랴부랴 서울까지 날아와서 기자회견을 한 것은 일주일 후 한국에서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회담에서 ‘북관대첩비’ 문제가 한마디라도 거론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문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임기 동안에는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굴욕외교’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 북관대첩비를 포기하는 일만 남았는가.

7월13일 가키누마 스님의 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된 후 외교통상부는 즉각 반박자료를 냈다. 요지는 “일부 언론에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북관대첩비가 반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외교부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79년 이래 우리 정부는 한일 외교채널 등을 통해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계속 요청해 왔으나, 일본 정부는 동 대첩비의 원소재지가 북한이라는 점과 민간 종교법인의 보유물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곤란하다는 점 등으로 한국 반환이 용이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측은 한국과 북한의 합의가 도출된 후 일 정부의 공식요청이 있어야 반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해 오고 있다.

둘째, 북관대첩비 반환과 관련 일본 승려(가키누마 센신)는 야스쿠니 신사 측으로부터 남과 북이 합의할 경우 반환할 수 있다는 서약을 받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야스쿠니 신사측은 동 승려가 활동하기 전부터 우리 정부에 남과 북의 합의가 반환의 전제조건이라고 밝혀 왔고, 또한 어떠한 민간단체나 개인에게도 반환을 약속한 바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한국정부가 일본측에 ‘요청’만 하면 반환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외교부의 반박 “할 만큼 했다”

셋째, 동 승려는 야스쿠니 신사측이 한국정부에 외교적 동의를 요구했으나 이뤄지지 않아 반환이 무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정부는 1979년부터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계속 주장하고 있으며 야스쿠니 신사측이 한국정부에 외교적 동의를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

‘북관대첩비 관련 보도에 대한 우리부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위와 같은 내용의 외교부 반박문이 나오자 초산 스님과 반환추진위는 즉각 외교부 앞으로 재질의서를 보냈다. 다소 흥분한 어투로 민간차원의 반환 노력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외교부를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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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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