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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큰형들의 이야기 “장남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장남이 죄입니까

  • 정리·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울고 싶은 큰형들의 이야기 “장남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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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큰형들의 이야기 “장남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윤영무 MBC보도국 부장 “어머니는 제게 새 옷을 입히면서 ‘동생에게도 물려줘야 하니 깨끗이 입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시고, 동생에게 물려줄 때는 ‘형이 곱게 입어 새 옷이나 진배없다’고 하시죠. 그럼 동생들은 형이 옷을 주는 것으로 착각해요.”

환 : 아버지와 겸상할 수 있는 게 장남의 특혜 아닙니까. 우리집은 반찬이 좀 다른 정도가 아니라 밥 속에 달걀이 들어 있는 사람은 장남밖에 없었어요. 달걀이 모자라면 아버지 밥에만 넣게 되는데 그날 아버지가 밖에서 식사하신다 하면 바로 장남 차지가 되죠. 동생들의 시기질투도 있었죠. 그러나 큰애가 예뻐서 그러시는 게 아니거든요. 부모님이 이렇게 인정하는 형의 말을 동생들이 안 들을 수 있겠느냐, 집안의 위계질서를 가르치시는 거죠.

“못난 놈, 울기는 왜 우냐. 장남이 눈물 찔찔 짜고 다니면 동생들 볼 면목이 서겠느냐? 장남은 특히 매사 일처리에 공평해야 한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형제간의 우애가 깨지는 것은 분배가 화근이 되니까. 그런 것 때문에 틈이 갈라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네. 아버지.”

장남은 태어남과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이런 훈계를 듣는다.

“네가 잘돼야 동생들도 잘된다”



진 : 할아버지는 집안대소사에 반드시 어린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많았지만 그때 장손의 도리며 해야 할 것, 해서는 안 될 일을 귀가 따갑게 들었죠.

무 : 그때마다 맏이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진 : ‘장남은 집안 행사에 반드시 정장차림을 해라’ ‘제삿상 차림은 반드시 장손이 해야 한다’ ‘장남은 무조건 참아야 한다’ ‘입은 하나고 귀는 두 개인 이유를 모르느냐. 장남은 말을 적게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등등 ‘장남은’이란 말을 수도 없이 듣죠. 특히 종손은 친인척들의 관혼상제로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더욱이 제가 객지 생활을 해서 시간 내기가 어려울 때 어쩌다 동생에게 부탁하기라도 하면 당장 “형은 안 왔냐?” “장남에 장손이 이런 날 얼굴도 안 보이면 되겠느냐”라는 질책이 쏟아집니다. 장남은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제가 있는 10월을 앞두고 한 달 전부터 몸가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가(喪家)에 갈 수도 없고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보신탕도 못 먹어요. 상서롭지 못한 곳에 가거나 그런 음식을 먹으면 영전에 절을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 제 생활이 있겠습니까. 친구들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죠. ‘영양가 없는 짓 어지간히 해라’고 핀잔을 줘요.

호 : 불가피하게 제사에 못 갈 수도 있는데….

진 : 그럼 큰일나죠.

호 :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이 다 모여도 장남이 없으면 아무도 안 온 것 같다고 하세요.

“이 아가 뉘집 장남이여”

무 : 장남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네가 잘 돼야 동생들도 잘 된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또 저는 동생들에게 옷을 물려주면서 책임감을 배웠어요. 어머니는 제게 새 옷을 입히면서 “동생에게도 물려줘야 하니 깨끗이 입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시고, 동생에게 물려줄 때는 “형이 곱게 입어 새 옷이나 진배없다”고 하시죠. 그럼 동생들은 형이 옷을 주는 것으로 착각해요. 저는 아들만 둘인데 얼마 전 둘째에게 옷을 사줬더니 큰녀석이 항의를 해요. ‘아차’ 싶더라구요. 형에게 먼저 사줬어야 하는데. 요즘은 형, 아우 따지지 않고 따로따로 사주잖아요.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환 :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이 “저 아가 뉘집 장남이여” 하시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은 분인데 제 손을 잡고 논으로 나가시면서 전라도말로 ‘씨잘 데기 없이 미운 놈 되지 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나이가 먹을수록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아요. 정말 장남은 달라야 하고, 장남은 뭐든지 잘해야 하고, 장남은 멋있어야 하고, 장남은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런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거죠.

제 얘기를 좀더 하면 전 바둑이 1급이에요, 당구는 500이고요, 골프는 시작한 지 5개월20일 만에 78타를 쳤어요. 이게 장남정신이에요. 장남은 무조건 동생보다 나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솔직히 동생들이 저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형, 제가 낼게요” 해보세요, 집안 분위기 이상해집니다. 그게 장남의 운명이에요.

무 : 아버지가 고향에서 교사로 계실 때 우리집은 비교적 풍족한 편이었는데 자식교육 시킨다고 서울로 올라와 사업에 실패하고 마지막에 트럭을 모셨습니다. 저희 5형제 학비는 고사하고 생활비도 없어서 쩔쩔맸죠. 그런데 제가 그만 덜컥 대학입시에 떨어진 겁니다. 아버지는 제게 “어떡해서든 대학에 가라.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마라”고 하셨지만 재수생활은 가시방석이었죠. 그래서 아버지께 제안을 했어요. “장남만 대학에 들어가란 법 있습니까. 될 놈만 집중적으로 밀어줍시다”라고. 집안형편상 다 대학에 가기는 어려우니까 성적을 봐서 두 명만 진학시키고 나머지는 공장 같은 데 취직시키자는 건데 ‘공장’이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는 제 뺨을 후려갈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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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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