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목소리를 한 옥타브쯤 높여 “어서 오너라” 하고 한껏 반기지만, 정작 부부간에는 그런 활기 있는 대화가 없다. 부부끼리 대화할 때는 음정도 낮아질 뿐더러 손님이 찾아와도 반기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짜증스런 표정을 짓기 일쑤다. 그만큼 정서가 메말라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신(甲信)이라는 지역의 ‘미소짓기 모임’은 몇 년 전부터 노부부들, 또는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가까운 사이에 인사 나누기 운동을 전개해 그 지방의 생활문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칼럼의 내용이다.
“인사 나누기 훈련의 다음 단계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사람들에게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는 꽤 시일이 걸릴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부끄러워도 일단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고 나면 두 사람 사이가 의외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친구끼리의 대화를 연습하게 되는데, 겉으로 드러난 상대방의 아름다움이라든가 내면에서 풍기는 인간미를 멋들어진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상대의 젊음이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좀더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면 인간관계가 한결 매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이 모임에서는 늘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건네고 감사의 미소를 짓도록 훈련합니다. 우리들이 마침내 이승을 떠나는 순간 ‘신세 많이 졌어. 정말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자연스레 미소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소띤 고인’의 모습이 스며들고, 사별의 슬픔에서도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담담한 필치로 생활 주변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히노하라씨가 쓰는, 이런 내용의 주말 에세이를 기다리는 독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이보다 더 인기 있는 그의 에세이를 한 월간지에서 읽을 수 있다. 히노하라씨는 4년 전부터 ‘이키이키’(‘생생하다’는 뜻)라는 월간지에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 분량의 수필을 연재하고 있다. 생로병사와 같은 일상사를 주제로 나이 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뜻을 쉬운 문체로 풀어낸 글이다. ‘이키이키’는 일반 서점에서 사볼 수 있는 대중지가 아니라 우편주문으로 구독하는 중·노년층 대상의 특수 월간지지만 월 판매부수가 무려 33만부나 된다.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2000년 5월호부터 2002년 2월호분까지를 ‘이키가타 죠오즈’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묶어 펴냈는데, 1년 만에 120만부가 팔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대개 젊은 남녀나 주부를 겨냥한 애정소설 따위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노년층이 선호하는 수필집이 밀리언셀러가 된 것은 일본사회에서 대단히 신선한 뉴스였다.
‘이키가타’는 ‘사는 방법’, ‘죠오즈’는 ‘능하다’는 뜻인데, ‘How to live well’이라는 영문 부제가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구수하고 공감이 가는, 그리고 읽고 나면 뭔가 여운이 남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지만, 히노하라라는 한 인간에게 쏠리는 일본사람들의 외경심 또한 이 책을 밀리언셀러로 만든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나이다. 히노하라씨는 오는 10월4일이면 만 93세가 된다. 100세를 목전에 둔 노인이 천의무봉으로 엮어가는 평이한 문장과 친근한 내용이 수백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히노하라교(敎) 교조(敎祖)’
이쯤 되면 독자들은 그의 본업을 작가 또는 수필가쯤으로 추측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지난 30여년간 쓰고 펴낸 책이 무려 235권이라니까. 그중에는 베스트셀러가 수두룩하고 밀리언셀러도 적지 않다.
세토우치 자쿠조라는 여승이 있다. 젊은 시절엔 유명한 작가였고 나이 50이 넘어 출가한 후 30여년간 수도생활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히노하라씨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생의 에세이는 어느 것도 판매순위가 1, 2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같은 ‘히노하라 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삶의 지침을 희구하면서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갈피를 못 잡는 일본의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라 평이한 말로 몸과 마음을 제대로 진단해주는 히노하라 선생의 가르침인 것이다. 마치 ‘히노하라교(敎)’가 생긴 느낌이다. 그 교조(敎祖)의 가르침에 신도들이 넋을 잃고 따라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