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첫눈 내리던 날

  • 입력2004-11-24 14: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첫눈 내리던 날
    ‘겨울’ 하고 눈을 감으면 내 가슴엔 하얀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펄펄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 가슴속 창, 그 첨부파일 속에 ‘첫사랑’이란 타이틀로 저장돼 있는 첫눈 내리던 날의 풍경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떠오른다.

    지금부터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4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 아주 참한 여학생이었다. 가슴 속엔 하루에도 2만5679번 정서불안증세가 오락가락하는 격렬·과격한 사춘기였지만 겉으로 보기엔 아주 얌전하고 말없는 소녀였다.

    음악실에 가서 음악을 듣는답시고 앉아 있었다. 그 시절엔 그것이 또 살짝 폼을 잡는 문학소녀들의 모양새였다. 웨이터가 나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엔 ‘만나고 싶은데’라는 딱한마디 글이 적혀 있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나에게 웨이터는 뒤에서 빙긋 웃고 서 있는 남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돌아보니 거기에는 소설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귀공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 남자를 본 순간 ‘어머나! 인간이 어쩜 저렇게 빛날 수가 있는 거지? 우와… 멋진 걸’하고 생각하며 얌전한 포즈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우아하게 일어났다.

    그 남자는 내가 키가 커서 대학교 1학년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에계계. 그러나 나는 겨우 중학교 3학년일 뿐. “좋아, 나는 여동생이 없으니 나랑 오빠, 동생 하자”는 그 남자의 말에, 나도 “딱 하나뿐인 오빠가 독재자처럼 굴어서 무지 맘에 안 들던 참이라 좋다”며 기술제휴, 아니 ‘마음제휴’를 했다.



    그 뒤로 우리는 방학이 되어야 듬성듬성 만나는 오빠와 동생 사이로 지냈다. 그런데 내가 입학한 대학이 그의 학교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오빠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위였지만 군대 갔다 온 복학생이라 내가 1학년일 때 3학년이었다. 우리는 영화도 보고 빵집에 가서 곰보빵, 단팥빵도 많이 먹었다.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첫눈 내리는 날 베토벤공원에서 만나자. 늦게 오는 사람이 일찍 온 사람에게 맛있는 거 사주기!”

    1965년 11월26일 첫눈이 내렸다. 대개 첫눈은 흔적도 없이 살짝 뿌리고 가는데 그 해는 살이 통통 찐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나는 초스피드로 달려 나갔다. 베토벤공원은 그가 다니던 학교 백양로를 쭉 따라 올라가면 있었다.

    나는 내가 분명히 더 빠를 거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나갔는데 맙소사! 그는 더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북이 친구, 이제야 나타나시는군!”

    공원 숲 언덕에 앉아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빠가 소리쳤다.

    “윤아, 조오기 별 좀 봐. 너무 예쁘다!”

    나는 오빠가 가리키는 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 바로 그 찰나, 오빠는 내 볼에 기습뽀뽀를 해버렸다. 그 시대는 호랑이가 피자 먹던 시절이다. 남자 여자가 만나서 손잡는 데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뽀뽀하는 데는 거의 1년에서 2년쯤 걸려야 했다. 그 시절엔 탐색기간이 그만큼 길었던 것이다.

    우리는 탐색기간의 평균치를 훨씬 밑도는 ‘순진 커플’이어서 뽀뽀하는 데 무려 3년이 더 걸린 셈이다. 그것도 본격적인 뽀뽀가 아니라 살짝 볼에 하는 뽀뽀! 나는 천둥번개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어머낫!”

    비명을 내지르고 냅다 뛰어 달려가버렸다. “윤아, 윤아!” 뒤에서 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두 뺨은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나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를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웃기는 일이다. 가소롭기도 하고 가관이기도 하고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그 뒤로 다시는 안 봤냐고? 천만에! 집에 와서 곰곰 필름을 리와인드 해보니 좀 전까지 부끄럽고 얼얼하기만 하던 천둥번개가 서서히 달콤한 초콜릿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오빠가 보고 싶었다. 그 다음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침 뚝 떼고 우리는 또 만났다.

    그 후로도 오빠 친구들하고 무등산엘 갔는데 그날도 눈이 펑펑 쏟아졌다.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눈이 겹겹이 쌓인 바위에 기대 잠깐 쉬고 있는데 오빠가 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윤아, 저 눈꽃 좀 봐. 너무 예쁘지?”

    나는 또 그의 말에 속아 눈꽃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오빠는 나에게 기습뽀뽀 제 2탄을 날리고 말았다. 그날 함께 산에 간 그의 친구들이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며 소개해달라고 조른다면서 오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윤아, 그 녀석들한테 너보다 훨씬 더 예쁜 애를 소개시켜줘도 싫단다. 한사코 너만 사귀고 싶다는데 나는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니가 그렇게 빼어난 미인도 아닌데 말야!”

    “오빠,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말해도 되는 거야. 내가 미인이 아니라고 누가 그래? 어디서 확인한 사실이야. 국가에서 검증서라도 받아왔어?”

    그렇게 토라지긴 했지만 나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오빠와 나를 놀리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모한 판단력으로 안목이 잠시 흐려졌거나. 그랬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만나던 우리 사이에 서서히 결혼 말이 오고갔다. 오빠가 나이가 많으니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고향 광주에서 소문난 병원집 아들, 나는 가세가 기울어가는 가난한 집 딸. 그 격차를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지금처럼 ‘뻔순이(뻔뻔지수가 높은 사람)’ ‘철순이(얼굴에 철판 깔고 사는 사람)’였다면 아마 나는 그가 하자는 대로 결혼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왜 그리 양심적이었는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저렇게 빵빵한 집안에 내가 어떻게 덥석 들어간담? 난 안 돼. 우리는 격에 안 맞아. 얌체 없는 짓이야!’

    그래서 나는 헤어지자고 했다. 그가 내 말을 들어줄 리 없었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약효가 없었다. 완전 100% 무공해 순수한 영혼으로부터 품어져 나오는 격렬한 사랑에는 대항할 수 없었다. 그의 막무가내 추진력은 가히 덤프트럭을 능가하는 ‘인공위성급’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가장 야비한 방법을 택했다. 그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 다니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거처하는 자취방을 가르쳐주지 않고 이사를 가버렸다. 그러나 그는 몇날 며칠을 걸려서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았다. 세상에. 그 많은 집, 그 넓은 신촌 일대를 다 뒤져서 한 집, 한 집 다 노크해 물었다고 한다. 나는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또 몇 달간 더 만났다.

    그런데 마침내 결정적인 최후가 찾아왔다. 그가 우리 집에 찾아오는 치명적 실수를 해버린 것이었다. 기품 있고 멋진 그의 집, 쇠락해가는 우리 집. 나는 도저히 창피해서 참을 수 없었다. 온몸의 세포가 튕겨져 나올 듯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왜 네 맘대로 찾아오고 난리냐? 너희 집이 잘사니까 보이는 게 없냐?”

    이성을 잃고 그에게 쏘아붙였다. 내 안에 쌓여 있던 ‘열등감의 대바겐세일’이었다. 그리고 그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통보했다.

    “물론 그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있다!”

    얼마나 야비한가. 그러나 극약처방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오빠의 추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자 깔끔한 성격의 오빠는 단숨에 나를 떠났다. 그 후로 나는 얼마나 슬펐는지…. 그리고 일 년쯤 지나 오빠는 나에게 결혼소식을 알려왔다.

    “윤아, 니가 떠나버리고 나는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너를 잊기 위해서라도 빨리 결혼하기로 결심했어. 그래도 난 네가 밉지 않아. 너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너와의 추억만으로도 행복해. 그러나 아내가 될 사람에게는 정말 잘해주고 싶어. 왜냐하면 지금도 내 가슴속에는 너밖에 없으니까. 그러면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미안한 만큼 더 잘해줘야지.”

    그는 그렇게 멋진 남자였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물음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과연 내가 선택을 잘한 것일까. 과연 나의 가난이 그렇게 사랑을 배반할 만큼 힘이 센 것이었을까. 선택하기 힘든 비상사태에 부딪히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되겠어?” “왜 안 돼?”

    똑같이 세 마디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의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왜 안 돼?” 쪽이다.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의 챔피언! 그러나 그 시절엔 “되겠어?” 쪽이었다. 매사에 지극히 소극적이고 겁쟁이였다.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앞서 불안하고 떨리고 걱정만 가득했다. 아, 바보. 최윤희!

    이제까지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첫사랑, 한번도 밖으로 외출시켜본 적이 없는 첫사랑을 이렇게 용감무쌍하게 고백하는 이유는? 그의 아내나 나의 남편이나 이제는 적당히 무력화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질투 같은 것도 이제는 “그게 뭐여. 그런 말도 있능겨”라고 지나칠 수 있는 나이. 도인처럼 뭐든지 다 이해해줄 나이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 세월의 위대한 힘이여!



    나는 지금도 겨울이 오면, 그리고 첫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그 오빠가 생각난다. 어디서 무얼 하고 살아갈까. 나를 가끔은 생각해줄까. 김치냉장고가 싱싱하게 김치를 보관해주듯이 나의 ‘첫사랑 냉장고’ 속엔 추억이 싱싱하게 간직돼 있다. 그리고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그리움을 향해 초스피드로 달려간다. 단숨에 열아홉 살 꽃분홍 가슴이 되는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