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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사건 주역, 서상목 전 의원 단독 인터뷰

“97년 대선 때 홍석현이 나를 이회창에게 소개했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조영철 기자

세풍 사건 주역, 서상목 전 의원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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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 건의가 물 건너가자 강삼재 사무총장을 주축으로 DJ의 비자금 의혹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결국 이회창씨가 YS에게서 등을 돌린 계기였는데.

“DJ가 이 총재 아들의 병역의혹을 제기하면서 ‘병풍(兵風)’을 일으켰고, 그것이 지지율 하락의 중대한 원인이 됐어요. 이 총재측에서도 뭔가 대응전략이 필요했는데, 그게 DJ 비자금이었습니다. 계좌번호까지 다 파악해서, 누구에게 비자금을 줬다는 사실까지 확보해 강삼재 의원이 터뜨렸잖아요.

그런데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수사를 안 한다고 했어요. YS의 지시라고 봐야지. 그래서 이 총재가 화가 나서 며칠 있다가 YS에게 탈당하라고 요구한 거예요. 검찰이 수사하는 시늉만 했어도 DJ의 지지도는 떨어졌을 겁니다.

1992년 대선 때 정주영씨가 회사 돈으로 선거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상승세이던 지지도가 딱 멈췄거든. 정주영씨 표가 늘면 DJ의 지지도도 같이 상승하니까, 이런 기획을 했던 거죠. 그래서 맞아떨어졌고. 1997년에도 DJ 비자금을 수사했으면 지지도 떨어졌지. 수사를 안 한 건, YS와 김태정의 작품이라고 봐야죠.”

이상주의 연대 vs 지역주의 연대



-YS가 꼿꼿한 이 총재를 포용하지 않았군요.

“이회창이 그렇게 싫은 거라. YS가 너무했어요. 당신도 1992년 대선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대들어서 지지도가 올라갔거든. SK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려고 할 때, YS가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최종현 당시 SK 회장 사돈이 노태우 대통령이었으니까. 그래도 노태우 대통령은 YS를 견제하지 않았어요. YS 본인도 그렇게 해서 지지도를 높였으면서….

대선 직전 탈당한 이인제씨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분명히 아는 건, 이인제 진영에 홍재형 의원이 간 사실입니다. 홍재형씨는 내가 잘 아는데, 이인제에게 갈 사람이 아니에요. 청와대에서 가라고 하니까 간 거지. YS가 이인제에게도 탈당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 했을 겁니다. YS가 이인제의 정치 스승인데….”

-여당 후보의 프리미엄도 얻지 못하고, 병풍으로 지지도까지 떨어졌으니, 이 총재측으로선 뭔가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으려 했을 텐데요.

“그랬죠. 그런데 대선 직전, 김종필 자민련 총재측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이 들어왔어요. JP의 측근인 김종호 의원이 내게 “내각제 약속만 들어주면 DJP 연대를 깨고 이회창 후보와 연대할 수 있다”고 했어요. JP가 같은 조건이면 이회창 후보와 연대하고 싶었는데, 제안을 하지 않으니 DJ와 했다는 겁니다. 우리 당엔 JP와 친한 사람이 많고, 보수정당이고 또 당 대표도 했기 때문에 DJ보다는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이었겠죠. 반전의 카드를 마련하려고 고심하던 내게 좋은 제안이었어요.

그런데 이 총재 생각은 달랐어요. 자신이 내각제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JP와 연합하면 거짓말하는 셈이 된다는 이유로 거절했어요. 그때 연대했으면 이겼지. 1997년과 2002년 대선 모두 충청도 표가 승패를 갈랐잖아요. 1997년 대선은 이회창-조순의 이상주의 연대가 김대중-김종필의 지역연대와 싸워 패한 사건입니다.”

-얼마 전 공개된 ‘X파일’에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 서 전 의원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 전 의원이 이회창 총재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10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인데, 사실인가요?

“이인제 의원이 탈당하고, 청와대는 안 도와주고, 당은 극심한 분열 상태였어요. 그때 나는 기획본부장이었는데, 도저히 당내에서 작업을 할 수 없었어요. 대책회의를 하면 이 총재에게 보고도 하기 전에 다음날 신문에 나는 거라. 이 총재 음해세력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별도로 외부에 팀을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홍보조직도 외부에서 만들었는데, 그 회사가 홍 회장측과 접촉하면서 돈을 요구한 것 같습니다.”

이회창 사진작가도 세무조사 받아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을 관리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이 총재는 돈 관계로는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았어요. 유력한 대선후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이 돈을 전달해줄 사람을 찾은 겁니다. 1997년 대선에선 내가 찍힌 거고, 2002년 대선에선 서정우 변호사가 찍힌 거죠. 둘 다 이 총재 측근이라는 이유로. 적어도 ‘배달사고’는 내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1997년 대선에서 당이 나를 자금책으로 끌어들인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그때 나를 끌어들인 의원이 둘 있는데, 대선이 끝나자 한 의원은 국민회의로, 한 의원은 자민련으로 소속을 옮겼어요. 그러다 보니 1998년 세풍 사건에서 조사받을 사람이 나뿐인 거예요.”

-‘세풍’은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대선자금을 모금한 것 때문에 생긴 말인데요.

“병풍 사건으로 이회창 총재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기업이 도와주질 않았어요. 그때 친구 이석희를 만났고, 내가 어렵다고 하니까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과거엔 국세청이 여당 후보 도와주는 게 관례였다고 그럽디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만 해도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재무부 장관이 10대 그룹을 통해 100억원 이상씩 거뒀고, 국세청은 그 밑의 30대 그룹을 상대해 모금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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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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