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기업 S투자평가원 정모 사장(41)은 2002년 12월18일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최근 정 사장은 측근을 통해 대통령 직속 국가청렴위원회(위원장·정성진, 장관급)에 부정행위를 신고했다.
“모 월간지 우종창 기자를 통해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에게 자금을 제공했으며 한나라당 현역 Q의원에게 도 청탁자금을 줬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신고서엔 “신흥 조직폭력단체인 ‘전주월드컵파’가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기업사냥에 나서 사회적인 폐해가 크다”는 제보도 있었다. 정 사장은 “조직폭력단체 사이에 기업사냥은 새로운 유형의 이권(利權)사업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으며 여야 정치권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들의 기업사냥 과정에 자신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다는 게 그의 항변이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전주월드컵파와 관련된 신고 내용은 서울중앙지검에 넘겼고, 현재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 관련 신고 내용에 대해서는 내사 중인데 조만간 검찰 이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가청렴위원회 담당자는 “신고서가 접수된 뒤 정 사장을 조사했다. 그로부터 ‘한나라당 전현직 중진의원들에게 거액을 줬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가청렴위에 “거액 제공” 진술
정 사장측은 국가청렴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기자에게 제보했다. 정 사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서신의 사본도 제공됐다. 그때까지 정 사장은 ‘신동아’와는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다. 정 사장은 서신에서 “옥중에서 ‘신동아’를 몇 차례 읽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사장측의 제보가 구체적인 데다 매우 공적인 사안이라 사실 확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9월6일 기자는 정 사장을 면회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2002년 4월13일 시작)을 앞둔 시점에 모 월간지 우종창 기자의 제의로 최병렬 당시 후보에게 거액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총선 출마에 대비한 공천 헌금 명목으로 최 의원에게 돈을 줬다. 돈이 전달된 뒤 최 의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2002년 전국 12개 지역에서 치러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4월13일 인천 경선에서 시작되어 5월9일 서울 경선으로 종료됐으며, 이회창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전국 누적 득표에서 1만7481표(득표율 68%)를 확보했고, 최병렬 후보는 4694표(18.3%)로 2위에 올랐다. 이부영 후보와 이상희 후보는 각각 2926표(11.4%), 608표(2.4%)를 얻었다.
“정치권에 이용당했다”
다음은 정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국가청렴위에서 ‘우종창 기자를 통해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거액을 줬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종창 기자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모 박사의 소개로 2000년 말쯤 처음 만났습니다. 한 박사는 북한문제 전문가여서 우 기자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후 식사자리를 몇 차례 가지면서 우 기자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저는 벤처투자사를 설립해 업계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돼 한때 개인 재산이 100억원쯤 됐습니다.”
-최병렬 전 대표에게 경선자금을 제공한 경위는.
“우종창 기자와 대화하던 중 내가 ‘정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우 기자는 ‘최병렬 의원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려고 하는데, 만약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면 지금 최 의원을 도와주는 게 낫다. 최 의원은 한나라당 실세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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