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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북한 핵심 관료가 육필로 쓴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숙청 2만5000명, 무자비한 고문과 처형으로 얼룩진 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의 진상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전 북한 핵심 관료가 육필로 쓴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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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김정일에게 김일성은 권력의 은인인 동시에 권력불안의 원인이기도 했다. ‘온 사회의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확립’을 위한 지도적 명목을 내세워 당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당조직비서 유일지도체제를 굳힌 김정일이지만, 권력을 절대화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요소가 중요 직위 요소요소에 박혀 있는 김일성 측근들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김정일은 그들과의 연계를 끊기 위해 김일성에게 “국가 일은 잘되니 안심하고 말년에 휴식과 독서, 그리고 친지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시라”며 사실상 모든 정보를 차단했다.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인 혁명1세대 인물들을 따로 관리하며 주석부와 연결시키는 담당부서를 만들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중앙당 통일전선부에 해외조직을 관리하는 조직을 만들고 김일성과 연고가 있는 해외 동포들을 찾는 연고자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그렇게 외형상으로는 아버지에게 충성하는 듯했지만 두꺼운 제도적 장벽을 친 뒤 뒤에서 권력남용과 온갖 전횡을 일삼았던 것이다.

김정일은 아랫사람들을 부리는 것에서도 김일성과 큰 차이가 있었다. 김일성은 아무리 하찮은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줄 줄 아는 아량이 있었던 반면, 김정일은 애당초 입도 열지 못하게 할 만큼 성급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 특히 김일성 측근 인사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어떻게든 줄을 대어 김일성에게 국가 정사와 관련해 잘못된 현황을 몰래 보고했다. 그것이 축적되어 한번은 김일성이 국가원로들과 당고위급 간부들을 불러놓고, “이제부터 당 조직부를 걸치지 말고 모든 중요 현안들을 나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정식으로 통보하기도 했다. 부자간의 갈등이 절정에 달하다 못해 폭발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중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북한과 대만의 군사과학자 상호교환 문제를 토의하는 협의회에서 강성산 당시 정무원 총리가 “이런 중요 문제는 수령님께 보고해서 비준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며 이의를 제기하자, 김정일은 “그러지 않아도 과년한 몸으로 피로해하시는 수령님께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담을 끼쳐서야 되겠느냐”며 그 자리에서 일축했다. 그리고 자기를 무시한 듯한 강성산의 발언을 잊지 않고 협의회가 끝난 즉시 당 조직부 4과에 자료를 모으라고 지시했다.

‘일대 사상전쟁’의 시작



당 조직부 4과는 당 조직부 검열과 중 하나다. 김정일이 특별 관리하는 이 부서는 중앙당과 정무원 고위 간부들의 비행을 색출해 처벌한다는 일명 ‘암행어사’ 부서였다. 하지만 대부분 김정일 지령으로 움직이는 이 부서의 권한이 편향적이고 그 방법과 음모가 너무도 다양하고 엄청나서, 간부들뿐 아니라 당 총비서이자 국가주석인 김일성도 가장 싫어하는 부서였다. 자기가 신임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4과가 만든 자료에 의해 숙청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정일은 강성산의 사소한 가정문제를 가정혁명화로 크게 부각시켜 (북한의 당 간부원칙에는 본인뿐 아니라 가정도 문제가 제기되면 그 연루죄로 처벌 받거나 심지어 해임당하기까지 한다) 해임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김일성은 대로해 “당 총비서로서 당 조직비서에게 당적 경고를 준다”고 버럭 소리쳤다. 그러고도 분을 삭이지 못한 김일성은 “어쩌면 제 친인척도 가리지 않는가” 하고 노발대발했다. 이렇듯 독재권력을 위해서는 제 친인척도 안중에 없는 김정일이었기에 김일성 사후 가장 먼저 착수한 사업이 바로 권력지반 강화, 즉 김일성 측근 제거였다.

그러나 중앙과 각 시·도에 널려 있는 친김일성 인사들을 단번에 제거하기에는 당 조직부 4과의 힘만으로는 시간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김일성이 사망하고 식량난까지 겹쳐 정국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예측할 수 없는 돌발사태가 조성될 수도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굶어죽는 사람의 숫자가 수백만을 넘어서고 황해제철소 노동자들의 농성투쟁과 같은 거대 반란이 속출하자, 김정일은 위와 아래를 다같이 장악할 수 있는 원자폭탄과도 같은 사건, 즉 일대 사상(思想)전쟁을 결심했다. 먼저 당 중앙 선전선동부에 지시하여 ‘국부(國父)가 없는 틈을 노려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들이 침략전쟁의 기회를 노린다’며 전쟁 분위기를 고취하는 한편, ‘혁명의 수뇌부를 암살하려고 테러분자까지 침투시킨다’는 내용으로 강연회를 비롯한 대대적인 정치공세에 나섬으로써 온 나라 주민에게 혁명적 경각성과 함께 강력한 조직적 통제를 강요했다.

이를 두고 처음에는 북한사람들 누구나 김일성 사망과 동시에 전국에 내려진 군 동원명령의 연속으로만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몇 주일 후 당 선전선동부의 그러한 주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바로 서관히 간첩사건이다. 온 나라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일성 밑에서 오랫동안 당 중앙위 농업담당비서로 일해온 사람이 남한 안기부 간첩이었다는 얘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사건이 터지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관히는 비료 30t을 친인척들에게 장사 목적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사회안전성 산하 보통강구역 안전부에 수감돼 있었다. 그때로 말하면 인구 17만의 김책시에서만 하루에 200여 명의 노동자가 굶어죽어 나가던 때였으므로, 김정일 대신 누군가가 식량난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민심이 당장 폭발할 상황이었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 당시 당 조직부 행정담당 제1부부장을 지내고 있던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은 극비리에 사회안전성을 시켜 간부들의 뒷조사를 하던 중 마침 서관히의 비료유출 자료를 손에 쥐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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