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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기자 주성하의 ‘비교체험, 남과 북’

낡은 자전거로 먼지 나는 시골길 달리는 행복을 아십니까?

  •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탈북 기자 주성하의 ‘비교체험, 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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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세 나라는 단지 빈부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나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북한은 교육과 사회복지 혜택에서는 사회주의 노선을 적용한다. 그러나 ‘선군사상’이니 ‘자폭정신’과 같은 구호에서 드러나듯 군국주의 사회와 흡사한 면도 많다. 여기에 성분을 따지는 간부선발 원칙과 수령을 아버지로 섬겨야 한다는 주체사상의 종착점, 남성 우월주의 생활환경 등의 봉건적·유교적 관습도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북한은 이처럼 사회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봉건주의가 공존하는, 설명하기 힘든 나라였다.

그런 내가 잠시 들른 중국은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적 경제 마인드가 복합된 나라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TV를 켜면 뉴스 첫머리에 “장쩌민 동지의 3개 대표론에 따라” 하며 떠드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하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북한 TV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뉴스 도중에 불쑥 튀어나오는 광고를 보면 사회주의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진다. 광고 얘기가 나왔기에 한 마디 더 하자. 지금 중국 광고를 떠올리면 길바닥에서 목청껏 소리치다 못해 꽹과리까지 두드리며 다니는 행상이 떠오른다. 한국의 광고가 소비자의 섬세한 감성을 자극한다면 중국 광고는 “사세요, 사세요∼”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댄다. 요란한 사회주의적 정치선동에 익숙해진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광고주의 탁월한 전략이 아닌가 싶다.

강제노동수용소 시절

그런데 중국을 거쳐 도착한 남한은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에 걸맞게 정치체제와 사고방식,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자본주의 국가였다. 과연 이곳이 같은 동족의 땅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북한과 달랐다. 사회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복합, 자본주의. 이렇게 지구상에 현존하는 세 유형의 정치형태를 두루 경험하며 겪은 가치관의 혼돈은 참으로 컸다.



사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나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엔 종이에 글을 쓰고 지웠다 하는 방식이 편했지만 이제는 이게 편하다. 언젠가는 북한 사람 모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남한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있는 사람보다 적어도 몇십년은 앞선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의 몇십년 훗날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도 탈북자의 집에 찾아가 먹는 북한 음식이 더 맛있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아가씨의 너덜너덜한 청바지나 가수의 열창에 “꺅” 하고 소리 지르는 10대 청소년은 아직도 보기 거북하다. 그러니 나는 아직도 남한의 옛 사람인지 북한의 미래인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껏 살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도 지어보고, 어부도 해봤으며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군 생활을 마치고는 예비역 지휘관 증서도 받았다. 짐꾼, 홈쇼핑 배달원, 카드사 홍보사원, 중소기업 무역담당 대리, 주간지 기자였던 적도 있다. 폭풍에 배가 뒤집혀 육지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다에서 3시간이나 파도와 사투를 벌인 적도 있고, 짐승 우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리는 깊은 산속에서 한겨울 눈구덩이를 파고 신문지를 덮은 채 며칠 밤을 새운 적도 있다.

서울의 경찰서를 돌면서 용의자를 심문하듯 캐묻는 출입기자가 과거 중국과 북한의 7개 감옥에서 죄수로 지냈던 사람이라곤 어느 경찰관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북한에서 ‘노동단련대’라는 강제노동수용소에도 있었고, 보위부와 보안서 감옥에도 있었다. 심지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 시절에 별의별 것을 다 먹어봤다. 어쩌다 밖에 강제노동이라도 나가면 간수의 눈을 피해 캐낸 감자를 대충 손으로 닦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삼킨 적도 많은데, 날것으로 가장 먹기 힘든 것이 감자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쩌다 날 옥수수를 몇 줌 얻으면 주머니에 넣고 한 알씩 입에서 이리저리 굴려가며 씹어 먹었다. 그 맛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불 덮고 자는 것은 죄다

음울한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틈틈이 시를 써 공책 한 권을 다 채우던 문학소년이었다. 북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마쳤고 남에서 연세대를 다니기도 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 나간 적도 있다. 북에서 주석궁을 발 밑에 내려다보며 6년을 지냈고, 지금은 청와대를 내려다보며 2년째 일하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내가 꽤 나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30세 젊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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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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