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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⑦

홀태 빗살에서 떨어지는 벼이삭은 돈이 되고 몸이 되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홀태 빗살에서 떨어지는 벼이삭은 돈이 되고 몸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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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태 빗살에서 떨어지는 벼이삭은 돈이 되고 몸이 되고

단돈 1만원으로 지은 뒷간인데 올 가을에 지붕을 바꿨다. 억새 지붕을 걷어내고 컬러 강판으로 바꾸니 지붕 자재 값만 14만원이 들었다.

돈을 안 들이고 짓는 게 가능해 보였지만 또 하나의 걸림돌은 못이었다. 쇠못을 쓰지 않고 짓자면 목재를 일일이 짜맞추어야 한다. 아니면 나무못을 만들든가 해야 했다. 그러자니 부지하세월이다. 돈을 한푼도 안 들이고 짓는다는 목표가 어느덧 스트레스가 되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할 수 있다고 위로하며 못을 샀다.

그렇게 1만원을 들이고 지은 뒷간. 내 눈에는 수백만원을 들인 어느 화장실보다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뒷간은 내게 돈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었다.

몸에서 우러나온 자신감. 그 자신감은 신기하게도 자신을 치유하고자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다. 자신에게 남아 있던 돈에 대한 억압을 뿌리째 뽑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농산물 판매에 대해 근본부터 다시 고민했다. 첫 해 농산물은 친구나 친지들이 고맙게 사주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주먹구구식이라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음해는 생활협동조합과 직거래를 했다. 하지만 계약 재배를 하자니 마음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품질이 ‘공인’돼야 함은 물론이요, 불특정 소비자의 입맛에도 맞아야 한다. 그래도 이 일은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는 않았다. 흙을 살리면서 정성으로 키우면 농산물 맛이 좋다.

가장 어려운 건 아무래도 하늘이다. 계약 물량을 제때 맞추는 건 사람 힘만으로는 안 된다. 태풍이나 가뭄, 또는 예기치 못한 병이라도 돌면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가을걷이 전까지 늘 마음 졸이는 게 계약 재배다. 그렇게 해봐야 도시 월급쟁이 두어 달 월급 수준이다. 그나마 대부분의 소득이 가을에 몰리는 것이 농촌 경제.



두 해쯤 계약 재배를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논밭 있겠다, 집도 새로 지었겠다, 아내 덕에 빚도 없겠다, 부자가 부럽지 않았다. 꼭 들어가야 할 돈이 많지 않으니, 뒷간을 손수 짓던 자신감으로 돈 안 쓰고 사는 길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려고 했다. 아예 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기계 안 쓰고 농사 짓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농사에 대한 관심이 바뀌기 시작했다. ‘농사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나’에서 돈을 안 쓰고 농사가 가능한가, 돈을 안 들였는데도 돈이 된다면 돈은 덤이 되지 않겠나로. 돈이 덤이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고, 조건 없는 사랑도 가능하지 않을까.

돈벌이 농사는 대부분 전문화, 기계화됐다. 돈이 되려면 한두 작목에 특화된 노력이 필요하다. 씨앗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사람과 농사짓는 사람이 확연히 나뉜다. 돈벌이로 선택한 곡식 씨앗은 대부분 돈을 주고 사게 된다. 게다가 기계는 돈 단위가 큰 데다 석유에 의존한다.

경운기나 관리기(밭을 갈거나 관리하는 기계)는 몇백만 원으로 그나마 싼 편이다. 성능이 좋은 트랙터나 콤바인은 몇천만원이다. 여기에다가 기름값, 수리비…. 농기계를 제대로 장만하고 관리하자면 돈이 끝도 없이 든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기계를 안 쓰고 하기에는 농사를 너무 모르는 데다가 일이 서툴렀다. 그러다가 기계를 안 쓰는 계기가 생겼다. 밭을 한 필지 샀는데 거기에 20평 남짓 뙈기밭이 딸려 있었다. 작은 관리기도 들어갈 수 없는 가파른 밭.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몸으로 해야 했다. 막상 해보니 할 만했다. 점차 기계를 안 쓰고 농사짓는 땅을 늘려갔다.

곡식을 거두는 일도 되도록 기계를 쓰지 않았다. 낫으로 벤 나락을 홀태로 거두어보았다. 홀태는 머리빗처럼 생겼다. 벼이삭을 홀태 빗살 사이에 끼우고, 손으로 당겨서 낟알을 훑는 것이다. 처음에는 언제 다 하나 싶어 맛보기로 조금 해보았다. 점차 요령이 생기자 하루에 100평쯤 거두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논에서 홀태질하는 광경은 말 그대로 그림이 된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등에 와 닿는다. 이따금 윗도리를 벗어 한두 시간 일광욕을 한다. 땀이 날 때 불어오는 바람은 얼마나 선선한지. 손으로는 이삭을 당기면서 고개 들어 산을 보면 단풍이 산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을 하루하루 다른 느낌으로 본다. 까치들은 더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무리지어 날고…. 내 자신이 자연 그 자체가 된 느낌이다.

손으로 하는 타작은 우리 아이들도 곧잘 한다. 콤바인으로 타작할 때는 위험하니까 아이들은 멀리서 구경만 했다. 낫으로 베고 홀태로 훑는 일은 아이들도 자기 힘만큼 할 수 있다. 참 신선한 체험이었다. 아이들은 나락을 낫으로 한 움큼 벤 다음 홀태로 달려온다. 자신이 벤 것을 훑어보고 싶어한다. 조금 하다가 지겨우면 메뚜기를 잡는다. 다 벤 논에서는 공을 차기도 한다. 배고프면 집으로 달려가 참을 챙겨 온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 죽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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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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