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4/8
그제서야 바로 젖혀놓았더니 할머니께서 만족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내밀어주세요. 붙잡고 올라오라고. 다시 걸어가면서 할머니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득중아, 내가 왜 짚신을 젖히라고 했는지 아느냐? 니가 지나간 다음에도 짚신이 그대로 있으면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니가 그랬다고 할 겨. 니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할 겨. 앞으로도 지나가는 길에 잘못된 게 눈에 띄면 오늘처럼 바로잡아놓고 가야 하는 겨. 내 말 꼭 명심해 득중아.”

이 ‘짚신의 교훈’을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할 때면 빠뜨리지 않고 들려준다. 어느 집에 갔을 때 가훈으로 써 붙여놓은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는 2남 3녀를 뒀다. 마흔일곱에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짚신을 일으킬 생의(生意)를 낼 때 막내가 중학생이었다.

“내 자식들은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대주는 게 원칙이에요. 다섯 놈이 다 대학은 제가 벌어서 등록금 내고 다녔지요. 막내를 고등학교까지는 교육시킬 수 있겠다 싶어 생업을 중단했어요. 뭔 일을 할지는 그때부터 찾아보는 거지요. 남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은 내가 또 할 필요가 없겠고, 쓸데없어서 안 하는 일은 해봤자 소용없겠고, 꼭 필요한 일이긴 한데 아무도 손대지 않고 있는 일, 그게 뭔지를 찾기 시작했어요.”

10여 년 전 눈여겨본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폴 한스 잘만이라는 독일인이 한국을 다녀가면서 쓴 ‘나는 한국에 와서 한국을 보지 못했다’는 인상기였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에서 예의의 실종밖에 본 게 없다는 내용이었다. 동방예의지국과 예절의 실종, 인간윤리와 사회도덕의 망실! 더구나 자신은 400년 전 ‘가례집람(家禮輯覽)’을 펴낸 조선 예학의 우두머리였던 김장생의 직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왜 예절이 없어졌을까 고민했어요. 예란 시대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 하는데, 1844년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 이후 150년간 예절책이라고는 씌어진 적이 없거든요. 단절된 거지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예절을 연구하고 회복하는 운동을 하자! 일본은 기껏 2~3대를 이어가는 직업도 가업이라고 야단을 떠는데 우리 집안은 예를 연구하는 것이 400년 가업이다. 사라진 예절을 부활시킬 적임자는 바로 나다!”

마침내 그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할 일을 찾았다. 일이 있으면 진력하는 것은 광산김씨 집안의 내림이었다. 어릴 적 백부는 제삿날 큰집에 모여 장난치는 종형제들을 모아놓고 꾸중하곤 했다. “다른 집안이 다 예가 허물어져도 우리 집안만은 그럴 수가 없는 겨! 우리집은 예절의 종갓집이여!”

‘예절 전문가’ 시대 열다

그게 뭔 소린가 했다. 열다섯 살에 광복을 맞았다. 장터에 가서 멍석 위에 놓고 파는 책을 기웃거렸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장지연의 ‘조선유학 연원’같은 책에서 사계 김장생이 조선 예학의 종장(宗長)이란 얘기를 읽었다.

“흔히 조선 18현(賢)이라고 하지만 그중에서 더욱 뚜렷한 어른은 다섯 분으로 압축돼요. 정암 조광조. 그는 왕도정치를 주창한,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학자였어요. 퇴계 이황. 이분은 성리학자, 즉 철학자셨고, 율곡 이이는 학문을 정치에 적용하려 애쓴 행정학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암 송시열은 교육학자셨고 사계 김장생은 실천을 중시하는 예학자셨어요.”

은근한 조상 자랑이지만 생업을 그만두고 사재를 털어 ‘한국전례연구원’이라는 단체를 외롭게 설립하는 배경이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니 납득할 만하다.

창립일은 3월1일로 잡았다. “나는 3월1일을 좋아해요. 무너진 정신문화인 예절을 일으키는 운동을 이왕이면 무너진 국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 일어났던 날 시작하고 싶었던 겁니다.”

일단 ‘실천예절’이라는 월간지를 창간한다. 옛 예절 책을 뒤져 공부하고 전국의 유림들을 찾아다니면서 이 시대에 맞는 예와 규범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분주하고 치열했지만 다들 외면했다. 정신 나간 사람, 시대착오라는 손가락질도 다반사로 받는다. 월간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집을 팔아 전세로 가야 했다. 그러나 회의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다들 외면하는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만 투철했고 몇 해 뒤 전셋집은 다시 월셋집이 되고 만다.

4/8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