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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논어는 진보다’

다시 쓰는 논어 이야기

  •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한국철학 kphil@korea.ac.kr

‘논어는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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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진보다’

‘논어는 진보다’: 박민영 지음, 포럼, 472쪽, 1만9500원

‘논어는 진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보는 순간 떠오른 것은 1999년 출간돼 화제가 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김경일 지음, 바다출판사)였다. 공자와 유교를 “오해했다” “폄하했다”는 등 출간 당시에는 논란도 많았지만, ‘공자’로 상징되는 유교문화의 폐해를 비판한 그 책은 그 시기 한국 사회가 요구한 책이었다.

당시는 한국정치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로 이른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남짓 지났을 때였고, 외환위기의 급박한 고비를 넘기며 한국 사회의 구조와 국가발전 전략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던 시기였다. 정부는 ‘박정희 시대’ 이래 약 40년에 걸쳐 구축된 정치·경제구조를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며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에 기반한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이끌던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모델이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를 답습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세계화에 장애가 된다고 비판했다. 이는 1980년대 일군의 지식인들이 후발 자본주의국가의 성공사례로 주목받던 일본과 네 마리 용(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발전모델을 ‘유교적 자본주의’ ‘유교적 민주주의’라고 추어주며 지식인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했다.

그 무렵 등장한 ‘공자가 죽어야…’의 노골적인 유교 비판은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때 겪고 있던 외환위기의 잔인한 현실이 그 증거물이었고, 그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정경유착의 부패구조와 비효율적인 가부장적 조직문화는 바로 그 지식인들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유교적 자본주의와 유교적 민주주의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런 폐해가 공자사상 혹은 유교의 일면적 부작용일 뿐이라는 반론의 목소리는 무기력하게 허공에 흩어졌다.

‘공자가 죽어야…’, 그 후 9년



그 후 9년, 이번에 나온 책은 공자의 ‘논어’를 ‘진보’라고 단언한다. 이미 박정희 시대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며 박정희를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는 평가도 낯설지 않게 됐으니, 그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제나 국가주도형 경제발전모델을 뒷받침했다는 유교문화에 대한 평가도 다시 할 때가 된 모양이다. 다만, ‘공자가 죽어야…’류의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서인지, 이번에는 공자에게 ‘진보’의 이름을 부여했다. 서문 첫머리에서 “종이를 둘둘 말아 10년을 두었다가 평평하게 펼쳐놓으려면 다시 뒤집어 말았다가 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저자도 이 책을 쓰면서 그 화제의 책을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공자를 보수로 몰며 근 10년을 보냈으니, 이제 평평하게 펼쳐놓기 위해 다시 진보의 방향으로 뒤집어 말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직설적인 어법으로 펼쳐진다. 공자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고리타분한 보수주의자, 국수주의자, 형식주의자로 각인”(5쪽)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공자는 옛것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오랑캐를 차별하는 민족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국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여자와 민중을 천시한 것이 아니다’ 등의 주장을 통해 저자는 공자를 “개혁주의, 만민평등주의, 박애주의의 선각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논어’의 관련 구절들을 하나하나 재해석하고 그 배경까지 상세하게 곁들여 설명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점이 적지 않다. 공자에게는 확실히 그러한 ‘진보’의 면이 있다.

그런데 공자는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주나라 중심의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중원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주나라가 번성하던 시절에 사회질서를 유지하도록 했던 것이 근본적으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안정된 사회의 구축 방안을 찾았던 사람이다.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변함없는 바람이겠지만, 그 내용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2500년의 시간차는 엄연하게 드러난다. 사실상 공자를 보수 혹은 진보로 평가하는 소재가 되는 오랑캐, 국가, 여자, 민중 등의 문제는 공자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공자가 사회 안정을 위해 근본적인 철학 또는 삶의 태도로 제시한 ‘인(仁)’의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소재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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