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비서의 세계

술집 접대부 비서 채용한 의원, 친구 부인 비서 삼은 대기업 회장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8-03-07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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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름을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 검찰 수사관도 놀란 회장 여비서의 강단
    •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내 모든 수목 학명 외운 비서
    • 김대중 대통령 여비서 “내 얼굴 자체가 국가기밀”
    • B의원과 여비서의 전설 같은 러브스토리
    비서의 세계
    “내이름을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차나 한잔 하고 가세요.”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1월12일 오전 10시.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을 때 비서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이름 밝히기를 몹시 꺼린 그는 “미안하지만 각하와 관련된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각하(전두환 전 대통령)를 편하게 모시는 게 나의 소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름 밝히는 게 껄끄럽다면 성(姓)이라도 말해달라”고 하자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자와 사전에 인터뷰를 약속한 비서는 급한 용무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무리 중요한 선약이라도 상사의 지시가 있으면 바꿔야 하는 게 비서다.

    자신의 기분보다 상사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비서 세계에 대한 취재는 녹록하지 않았다. 우선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만났다 해도 자신의 소속과 신분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고 기사에 실명이 게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직 비서들은 더 몸을 사렸다. 취재를 하면서 “비서는 입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입이 없는 사람’의 말문을 여는 일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 ‘비서처럼 하라’의 저자인 전 강원도 정무부지사 조관일씨는 비서의 덕목으로 ‘비밀유지와 충성심’을 꼽았다. 비서 업무를 통해 얻은 비밀에 대해서는 무덤에 갈 때까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



    노태우 전 대통령의 문모 비서(청와대 행정관 출신)는 “비서는 취재 대상이 아니다. 존재가 없는 사람이다. 모시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일 뿐 주체가 아니다. ‘내가 누구를 모시고 어떤 일을 한다’고 밝힌 사람은 비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서론을 폈다.

    “여비서 하나는 끝내주게 뒀다”

    비서를 일컫는 영어 secretary의 어원은 라틴어의 secretarius이다. ‘비밀’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양에서 처음 비서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후한(後漢) 무제(武帝) 때로 알려졌다. 당시 임금의 기밀문서나 비장(秘藏)의 서책을 관장하는 직책을 비서(秘書)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비서라는 명칭은 고려 초기 축문과 기록을 맡아보는 내서성을 성종 14년(서기 995년)에 비서성으로 개칭하면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의 수령 밑에서 인사비서 등의 사무를 맡은 이방아전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직종과 관계없이 윗사람이 선호하는 비서는 충직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비서는 상전이 죽으면 두말없이 따라 죽었다. 상전의 기밀을 그야말로 무덤까지 가져가기 위해서다.

    “○○○ 회장이 여비서 하나는 끝내주게 잘 뒀다.”

    비서의 세계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업무 보고를 하는 여비서 임모씨.

    1990년대 중반 모 대기업 비리 수사를 마무리한 검찰 수사관이 한 말이다. 수사가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 핵심 간부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급기야 최고 경영자인 회장이 구속됐다. 검찰은 비리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 비서실의 여비서까지 불러 밤샘 조사를 벌였다. 서릿발 같은 검찰 조사에서 남자 간부와 비서들이 슬금슬금 입을 열었다. 노련한 검찰 수사관의 집요한 설득과 압박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힘든 수사과정을 끝까지 버티며 입을 굳게 다문 사람은 뜻밖에도 수사관들이 가장 먼저 입을 열 것이라고 예측했던 여비서였다. 여비서는 회장과 관련된 그 어떤 정보도 얘기하지 않았다. 비리의 단서가 될 만한 말은 아예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여비서는 수사관의 집요한 질문에 “차 심부름이나 하는 일개 여비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느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완강히 버텼다.

    검찰 수사관들은, 조사할 때는 뺨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이 여비서가 얄미웠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를 다 끝낸 후엔 너나없이 입을 모아 여비서를 칭찬했다.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발설하지 않은 점과 총수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산 것이다.

    비서의 힘이 가장 센 곳을 꼽으라면 단연 청와대 비서실이다. 청와대에 근무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시 한번 쳐다보지만, 실제 근무자들은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실의 A씨(이니셜은 본명과 상관없음)는 부서 회식 등과 관련해 식당을 예약할 때 ‘청와대 ○○ 수석비서관실’이 아닌 ‘○○산업’이라고 말한다. 청와대라고 밝히면 상대방이 보이지 않게 신경을 쓰는 데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A씨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후 일선 구청에 근무하다 10여 년 전(취재원 보호를 위해 청와대 근무 기간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음) 청와대에 입성했다.

    “청와대 비서? 감옥이 따로 없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식당을 예약할 때 ‘청와대’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청와대에 근무한 그는 대통령과 수석비서관, 비서들이 교체되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봤다. 청와대 말단 비서가 바라본 직급 높은 비서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A씨는 “가장 눈살 찌푸리게 하는 비서군(群)은 국회나 정당 등 정치권에서 일하다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청와대에 ‘책상’이 생긴 직후엔 몸을 낮추다가 서서히 권력의 맛에 길들어 목이 뻣뻣해진다는 점이다. 특히 국장급에서 그런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고. 그는 “청와대 내 붙박이 비서(별정직이 아닌 행정공무원을 지칭함)들이 대체로 나와 비슷하게 느꼈다. 그들은 정부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에 비해 훨씬 권위적”이라고 했다. 그는 “‘궐’ 밖에서 사고를 가장 많이 치는 이들도 정치권 출신의 비서”라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말조심과 몸조심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내가 말이지, 어디에 근무하는 줄 알아?” 이 말 한 마디를 잘못 꺼냈다간 ‘밥줄’ 끊어지기 십상이다.

    몇 년 전 청와대 비서실의 한 행정관이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자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했다. 경찰이 그의 간청을 무시했다. 술에 취한 그는 “나, 청와대에 근무하는데…”라고 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곧바로 청와대에 보고했고 그는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비서의 세계

    국내 최고령 비서인 대성그룹 전성희 이사의 장수비결은 ‘자기 관리’다.

    근무지가 청와대라고 하면 대개는 뚜렷한 이유 없이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공무원들은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된 공무원을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다. 정권 초기 청와대에 발을 디디게 되면 승진 및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데다 청와대라는 이름이 주는 ‘권력의 무게’ 때문이다.

    “청와대 근무? 해보니 별것 아니더라고요.”

    몇 년 전(역시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정확한 근무기간을 밝히지 않는다) 대통령 관저에서 일하는 한 여비서가 친구 김모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감옥이 따로 없어. 외출이 자유롭기를 하나, 친구를 맘대로 만날 수 있나, 눈치 보여서 맘 편하게 전화로 수다를 떨 수 있나. 일주일 중 엿새는 청와대에서 자고 하루 외박하는데, 그것도 서울서 반경 50㎞를 벗어나 지방에 갈라치면 미리 윗 비서관에게 알려야 해. 연애? 그건 꿈도 안 꾼다. 남들은 내 속도 모르고 청와대에서 근무하니까 좋겠다고 하는데, 창살만 없지 이건 감옥에 갇혀 사는 것 같아. 대통령 모시는 비서면 뭐해? 자유가 없는데.”

    “저 나무 이름이 뭐지?”

    비서에게는 영웅이 없다. 어떤 영웅도 비서의 눈에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서가 가장 경계할 사항은 자신의 보스가 보통 사람으로 느껴져 충성심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실세 장관을 오랫동안 보좌한 황모씨는 “대통령에게 신임받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장관이지만 늦은 귀가 때문에 마누라에게 잔소리 듣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 이후 장관에 대한 경외심이 많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막강한 권력을 쥔 남자도 아내의 잔소리 앞에서 무기력하자 “당신(장관)이나 나나 똑같은 신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비서는 남녀 불문하고 상사의 중요한 업무를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상사의 뜬금없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 비서는 청와대 안에 있는 모든 수목의 학명까지 죄다 외웠다고 한다.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대통령이 “저 나무 이름이 뭐지?” 하고 ‘하찮은’ 질문을 할 때 정확히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S그룹 회장 비서 출신인 한 중소기업 사장은 비서 시절 회장의 방문 일정이 확정되면 목적지를 미리 답사했다. 그는 길가에 새로 짓는 건물이나 공사현장 내역을 상세히 파악했다. 건설 분야에 관심 많은 회장이 질문할 것에 대비한 것이다.

    비서는 최측근 인사다. 지근거리에서 상사를 보좌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사와 동급 수준의 고급 정보를 접한다. 자신을 감추고 상사가 돋보이게 하는 것 또한 비서의 임무다. 비서는 때에 따라 얼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여비서와 경호원의 얼굴도 국가기밀에 속할까.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여비서 임모씨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청와대 경호원과 결혼했다. 당시 임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청와대 비서실 담당자와 경호실에 문의해보니 우리 두 사람의 얼굴 자체가 국가기밀이라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얼굴이 알려질 경우 테러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의원회관에서 뜨거운 밀애

    여비서 하면 가장 먼저 ‘예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든 고정관념 중 하나다. 실제 비서실에 근무하는 여자들은 대체로 예쁜 편에 속한다. 한 생명보험사 대표이사 비서를 지낸 김모씨는 고졸 출신이다. 김씨는 “쟁쟁한 대졸사원들을 물리치고 입사 직후 비서실로 발령 난 데는 ‘미모’가 크게 작용했다”고 털어놨다.

    여비서가 많은 곳 중 하나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17대 국회의원은 299명. 국회의원마다 보좌관 2명을 포함해 6명의 비서를 둘 수 있다. 모든 국회의원이 그 숫자대로 비서를 둔다면 국회 의원회관의 비서는 약 1800명에 달한다.

    현재 국회에는 몇몇 여성이 보좌관(4급)과 비서관(5, 6, 7급)으로 일하고 있지만 별정직 9급에 해당하는 대다수 여비서는 내방객 안내와 전화응대, 그리고 차 심부름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판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 국회의사당이다. 국회의원과 여비서의 부적절한 관계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B의원 여비서 사건이다. 오래전 일인데도 B의원과 여비서의 러브스토리는 정치권과 국회 관계자, 기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회자된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인 B의원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채용한 여비서의 미모에 반했고 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데이트 장소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보안이 철저한 의원회관. 그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의원회관에서 사랑을 나눴다. 얼마 후 여비서가 임신하자 B의원은 “아내와 이혼하겠다”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자”고 했다고 한다.

    B씨는 현재 국회의원이 아니다. 취재 중 만난 몇몇 정치인이 필자에게 B 전 의원이 그 여비서와 살림을 차리고 사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B 전 의원에게 “여비서와 살고 있느냐”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그러다 B 전 의원의 아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단서를 포착했다.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캠프를 맴돈 B 전 의원이 개인 홈페이지에 아내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다. “아주 어렵게 결혼에 골인했다”는 ‘연애시절’ 사연과 함께. 그러나 B 전 의원의 옆에 선 여자는 여비서가 아닌 조강지처였다.

    15대 국회 초반. 한 국회의원이 자신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의 접대부를 9급 여비서로 채용했다고 한다. 최근 만난 의원 보좌관 김모씨의 증언이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 같지만 김씨에 따르면 사실이라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술집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아 여비서로 채용했다는 국회의원의 ‘순애보’는 금세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15대 때부터 현재까지 보좌관으로 활동하는 그는 “그 여비서를 직접 봤다”면서 “조신하게 보이기 위해 옷과 화장에 몹시 신경을 썼지만 ‘출신’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기억했다. 결국 그 여비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몇 달 근무하다 국회를 떠났다고 한다.

    “오늘 저녁 퇴근 후 OO호텔 커피숍으로 나와. (야당) 총재님 모시느라 고생이 많은데 밖에서 차 한잔 사줄게.”

    비서 덕 톡톡히 본 김홍신 의원

    당 총재 비서실에 근무하는 여비서 김모씨는 전국구 초선 국회의원의 제의를 받고 호텔로 향했다. 커피 잔이 비워질 무렵 국회의원이 김씨에게 “호텔 커피숍은 아는 사람이 많아서 불편해. 위(룸)에 올라가서 편히 마시는 게 어때?” 하고 제안했다. 단순히 차 마시는 자리가 아님을 눈치 챈 김씨는 “급한 일이 있다”며 호텔을 벗어났다.

    필자가 김 보좌관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자 “예나 지금이나 그 수법은 변함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국회의원이 여비서를 ‘꼬실’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다선 의원 중에 당내 여비서와 여성 당직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망신당한 사람도 있다. 상대 여성은 싫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음에도 의원이 계속 치근대자 이 사실을 폭로했다. 국회의원의 남다른 총애를 잘 받아줄 것이라고 여겼던 의원은 톡톡히 창피를 당했다.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15대까지만 해도 국회의원과 여비서 사이의 추문이 종종 들렸지만 16대 이후로는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차기 선거를 위해 의정활동에 게으를 수 없는 데다 여비서를 잘못 건드렸다가 만에 하나 성추문 문제가 불거지면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똑똑한 비서 덕을 톡톡히 본 사람도 있다.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신 전 의원이다.

    “여비서든 남자 비서든 따질 게 뭐 있어? 실력 있는 비서가 최고지.”

    15대 국회 때 김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자주 한 말이다. 김 의원 사무실의 분위기는 다른 곳과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여비서가 김 의원 앞에서 스스럼없이 맞담배를 피우며 정책을 토론하는가 하면 복장도 자유로웠다. 남녀를 떠나 의정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비서의 ‘존재 이유’로 여긴 김 의원의 파격적인 사고방식 덕분이었다.

    김 의원은 중앙일보의 국회 의정활동 평가에서 1996년과 1998년에 전체 1등을 차지했고, 동아일보와 경실련이 공동 주관한 16대 국회 의정활동 평가에서도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김 의원은 그 공을 비서들에게 돌렸다. 김 의원이 ‘일 잘하는 비서’들 덕분에 의정활동에 돌풍을 불러일으킨 후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지인이나 주변에서 추천한 사람이 아닌, 능력 있는 비서를 채용하는 바람이 불었다.

    “그럼, 내 마누라를 쓰지”

    필자는 비서들의 세계를 취재하면서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세 전직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인 최경환씨는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4명의 전직 대통령 비서들의 전화 받는 행태와 손님 응대가 각양각색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서는 전화 받는 것 자체가 화끈했다.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채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하자 “오는 것은 괜찮은데 연초라 손님이 많다”면서 “이틀 후 방문하라”고 했다.

    약속 당일. 정작 만나기로 한 비서가 급한 용무가 있었는지 자리를 비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비서와 대면해야 했다. 이 ‘무명씨’ 비서에게 비서가 갖출 덕목에 대해 묻자 “첫째도 충성, 둘째도 충성, 셋째도 충성”이라고 답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라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 사저에는 4명의 비서가 근무한다. 1984년 내무부 장관을 지내던 시절 비서로 인연 맺은 ‘미스 정’(51·‘미스 정’도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이 노 전 대통령의 가장 오래된 비서다. 조용한 성격의 ‘미스 정’에게 노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에 대해 묻자 “그만그만하시다”면서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오랫동안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해 가족 같은 느낌으로 일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마음 편하게 모시기는 하지만, 비서는 비서일 뿐 가족 같은 느낌으로 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김기수씨는 YS가 청와대에 입성한 다음날 아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매일 아침 조깅을 즐기는 YS에게 새 조깅화를 내놨다가 “당장 신던 것 가지고 오라”는 불호령에 혼쭐이 났다. 상도동에서 청와대까지 운동화를 공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이른 새벽이라 거리에 차가 많지 않았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교통신호를 조작해 총알처럼 빠르게 운동화를 공수했던 것이다.

    비서들은 한결같이 “쉬운 직업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오모(40)씨는 이른바 끗발 좋다는 회장 비서로 발령난다 해도 거절할 것이라고 말한다. 남 밑에서 간도 쓸개도 없는 인간처럼 굽실거리는 게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통역비서는 더더욱 맡기 싫다고 했다. 남(회장)들이 밥 먹는 시간에 밥 못 먹고 통역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비서의 생명력은 실력이다. 여비서 또한 마찬가지다. 대성그룹 회장 비서실에 전화하면 나이 든 여비서가 전화를 받는다.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여비서로 활동 중인 전성희(65) 이사다. 29년째 비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김영대 회장의 일과를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이화여대 약대 출신인 전 이사는 회사 내부 사정은 물론 찾아오는 손님의 커피 기호까지 꿰고 있을 만큼 김 회장 주변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전 이사가 비서로 입문한 것은 우연이다. 19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심재룡 전 서울대 교수, 2004년 작고)이 귀국해 대학친구인 김 회장(당시 상무)과 만나 나눈 대화가 인연이 됐다.

    “미혼 비서를 두니 모두 1년쯤 하다 그만두더라. 진득하게 오래 앉아서 근무할 아줌마 비서 없을까”라는 김 상무의 말에 전 이사의 남편 심씨가 “그래? 그럼 내 마누라를 쓰지?” 하고 추천했다.

    커피 접대의 철학

    친구 아내인 전 이사를 김 회장은 ‘미세스 심’이라고 부른다. 김 회장(현재 66세)은 전 이사에게 “내가 회장직을 70세까지 하려고 한다. 그 때까지 같이 일하자”고 말할 정도로 미세스 심을 신뢰한다. 전 이사는 여비서가 기피하는 업무인 ‘커피 심부름’ 애찬론자다. “비서가 커피 타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된다”며 “커피 접대는 회사를 찾은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 이사는 한번 찾아온 손님의 커피 취향을 꼼꼼히 메모한다. 이 손님이 다시 방문하면 알아서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서다. 전 이사는 “하찮은 업무도 마음먹기에 따라 소중한 일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가 비서로서 장수하는 비결은 성실함과 꾸준한 자기계발, 그리고 자신이 정한 비서의 철칙을 준수하는 데 있다. 그는 들어도 안 들은 척, 알아도 모른 척, 봐도 못 본 척할 뿐만 아니라 회사 내 인사 관련 이야기는 절대 회장에게 말하지 않는 불문율을 입사 초기부터 지켜오고 있다.

    비서의 기본 업무는 일정 조정, 회의와 업무 준비, 차 대접, 전화 응대, 내방객 안내 등이다. 비서는 상사가 자신의 업무에 100%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원군이다. 비서는 업무 전담비서, 수행비서, 법률비서, 교육비서, 행정비서 등으로 분류되지만 국내의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전담비서와 수행비서 외 다른 비서는 흔하지 않은 게 현실. 비서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윗사람이 만날 사람과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선별하는 것이다.

    ‘비서의 꽃’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재벌 총수의 비서를 첫손 꼽을 수 있다. 비서의 허락 없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재벌 총수를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에 출입하는 기자들도 재벌 총수에 대해서는 인터뷰하거나 취재하려 애쓰지 않는다. 노력으로 성사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측이 필요에 따라 가물에 콩 나듯 마련한 ‘회장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지난해 12월21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만났다.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은 채 재벌 총수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아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복폭행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고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활동 중인 김 회장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비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비서실을 통해 면담을 요청했다면 십중팔구 거절당했을 것이다.

    재벌 총수는 대통령 못지않게 인의 장막에 갇혀 있다. 김 회장이 구치소에 있을 때 필자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맞고 들어온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김 회장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 한두 명만 있었더라도 일이 이렇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조언을 담은 편지였다. 꽃동네에서 김 회장을 만났을 때 “편지를 받아봤냐”고 묻자 “받았다”고 대답했다.

    “이제 됐어, 그만하지”

    만약 김 회장이 자신 앞으로 배달된 편지를 직접 읽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편지는 아마도 비서들의 ‘검문검색’을 통해 걸러져 김 회장 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비서가 ‘모시는 사람’에게 바른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 신상에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당 태종(이세민)은 성격이 급했고 안하무인이었다. 태종은 황제 등극 이후 위징이라는 친구를 비서 겸 고문으로 채용해 고언을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잦았지만 태종은 직언을 구별해 올바른 의견은 적절히 수용하여 황제 자리를 잘 보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아랫사람의 바른말을 무시한 채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단행한 광해군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제대로 된 비서는 모시는 사람에게 직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비서다. 교과서 같은 가르침이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1997년 9월. 15대 대선 직전 김대중 대통령후보와 배기선 의원이 마주 앉았다. 김 후보는 “선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후보를 정확히 아는 것”이라면서 “배 동지가 나의 장단점을 평가한 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15분 후 김 후보가 “다 됐느냐”면서 배 의원을 불렀다. 잠시 후 배 의원이 입을 열었다.

    “장점이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라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어 단점을 정리했습니다. 첫째,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말을 가능하면 짧게 하고 다른 사람들 말을 많이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 표현이 너무 어렵습니다. 만나는 사람들 중엔 대학 나온 사람도 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만 나온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말씀을 좀 더 쉽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셋째, 사투리를 너무 많이 쓰지 마십시오. 넷째, 비서들이 준비해 드린 원고를 읽으십시오. 다섯째, 사람들과 악수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을 끝까지 쳐다보십시오. 여섯째, 여성들에게 부드럽게 웃으십시오. 일곱째, 본인 자랑을 너무 많이 하십니다. 여덟째….”

    배 의원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김 후보는 15가지의 단점 중 13번째 단점을 말했을 때 “이제 됐어. 그만하지” 하고 배 의원을 제지했다.

    10여 년 전 일을 회상한 배 의원은 “김 후보가 단점을 알려달라고 주문했지만 막상 단점을 지적당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내가 참 미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내 단점을 찾아내라”는 김 후보의 한 마디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듣기 싫은 이야기를 줄줄이 읊어댄 꼴이었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비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1990년대 이후 국내 기업의 경영 환경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막 전문비서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단계다. 세계화 및 글로벌 경영에 발맞춰 외국어 실력을 갖춘 전문비서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勿欺也 而犯之’

    비서실의 위상은 권력과 돈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재계의 청와대 비서실 격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은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본관 28층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그룹 홍보실 관계자에게 취재 의도를 설명한 후 “비서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비서진 및 관계자 인터뷰가 아닌, 말 그대로 비서실 ‘구경’을 요청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건 절대 안 된다. (비서실에 문의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 취재 협조가 힘들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삼성그룹 내 비서와 관련된 그 어떤 내용도 말할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재벌그룹 총수의 비서실장은 보이지 않는 실세다. 이들은 총수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의 비서실장들은 대부분 임원급(전무 또는 상무)이다.

    국내 대기업의 비서팀장 중 가장 오랜 경력의 소유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비서인 김준(50) 전무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생명에 입사한 뒤 1994년 비서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꼼꼼한 업무처리로 정평이 난 그는 2001년 비서팀장이 됐다. 이 회장의 눈에 든 그는 비서실 입성 4년여 만인 1999년 삼성전자 회장실 1팀 담당 이사보로 승진했다. 2002년 삼성 구조조정본부 상무(비서팀장)로, 2005년에는 전무 자리에 올랐다.

    김 전무는 사생활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 회장 곁에서 머문다. 연중 몇 달간 해외출장은 기본이다. 김 전무는 전략기획위원회 내에 있는 재무, 인사, 경영진단, 홍보 등 주요 팀의 업무를 취합해 이 회장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전략기획위원회 회의에 참가하는 사장단과 회장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창구 노릇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논어(論語)’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루는 자로(子路)가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군주(君主)를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 왈, ‘물기야 이범지(勿欺也 而犯之)’. “윗사람을 속이지 말고 면전에서 올바른 말을 하라”는 뜻이다. 비서뿐 아니라 조직에 몸담고 있는 현대인 모두가 곱씹어 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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