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기와 아미노산이라는 생명의 양대 기본 물질은 일정한 대응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컴퓨터가 0과 1을 조합해 정보를 표현하듯. 생명체 형성 규칙인 유전암호는 본질적으로 디지털 정보다. 유전학과 디지털의 만남은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 세계의 창조를 가능케 할까.
생김새가 DNA와 꼭 닮아 ‘인공 유전자’라고도 불리는 PNA.
이 연구소의 연구자 17명이 공동으로 발표한 이 논문을 보면 유전체는 마치 장난감 블록 조립하듯이 만들 수 있는 것인 양 느껴진다. 생체분자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했다는 의미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체가 지닌 신비감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도 된다.
인공 유전체 합성 소식은 인간의 무분별한 생명체 창조가 어떤 위험을 가져올 것인지, 인간이 과연 새로운 생명체를 빚어낼 자격을 갖추었는지 등 여러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 그에 따른 미래상을 놓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여기서는 크레이그 벤터와 ‘이기적 유전자’의 대변인인 리처드 도킨스가 나눈 대담을 중심으로 인공 유전체 합성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연구진의 실험을 간단히 요약했다.
인간, 2만2000개의 유전자 조합
미코플라스마 게니탈리움은 사람의 생식기와 호흡기에 사는 기생 세균으로서, 세균 중에서도 가장 작은 유전체를 지닌 축에 속한다. 유전체의 염기 개수는 약 58만에 달하며 유전자는 약 480개다. 30억의 염기 개수에 2만2000개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인간 유전체에 비하면 매우 작다.
그렇다고 합성하기가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전까지 합성에 성공한 DNA 가닥 중 가장 긴 것이라고 해봐야 염기 개수가 수만에 불과했으니, 수십만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DNA 가닥을 합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진은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을 쓰기로 했다. 유전체를 염기 5000~7000개 단위로 끊어서 각각을 합성한 뒤 조립하는 식이었다. 거기에 포유류의 세포를 감염시키지 못하도록 별도의 염기를 삽입하여 핵심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키도록 했다.
연구진은 각 단위의 합성을 각기 다른 회사들에 맡겼다. 합성된 염기 서열에 오류가 있는지 검사한 뒤 효모 세포에 넣어서 조립했다. 그런 다음 회수하여 다시 오류가 있는지 검사하는 과정을 거쳐 세균의 유전체를 인공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유전체를 세포에 넣어 스스로 활동하고 증식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가야 인공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연구진이 그 방향으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은 분명하다.
벤터는 한 세균에 있던 유전체를 제거한 뒤 다른 세균의 유전체를 그 안에 넣는 이식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배아줄기세포 실험 때 핵을 이식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핵이 아니라 유전체만 넣는 것이니 그보다 더 정밀한 방식이다. 비록 세균의 염색체가 훨씬 더 작긴 하지만.
‘인공 생명체’ 합성 실험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신체는 ‘디지털화’되어 특정 지점에서 해체됐다가 다른 지점에서 원형으로 조립된다.
인간 유전체 계획 연구자들이 전체 설계도를 보면서 이쪽 부품을 뜯어내 분해했다가 다시 끼우고 다음에는 저쪽 부품을 뜯어내는 식으로 접근할 때, 그는 전체 설계도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태도로 접근했다. 전체가 염기라는 똑같은 단위로 이루어져 있으니 대강 일정한 크기로 잘라서 분석한 뒤 나중에 끼워 맞추면 된다는 식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컴퓨터의 능력을 믿은 셈이다. 수천, 수만 개의 조각으로 된 퍼즐이라도 컴퓨터는 가장자리를 비교하여 얼마든지 제대로 끼워 맞출 수 있다고 봤다. 다른 연구자들은 조합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져서 힘들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그런 과감한 생각으로 그는 인간 유전체 계획에 뒤늦게 뛰어들었으면서도 그 계획을 앞당기는 데 큰 몫을 해냈다. 벤처 사업가다웠다고나 할까.
어찌 보면 분석했으니 다시 종합하고, 해체했으니 다시 조립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듯도 하다. 벤터는 생명체를 낱낱이 해체해보았으니 이제 합성하고 조립하여 새로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로 조립할 수 있다면 굳이 원래 있던 대로 복원할 필요는 없다. 원하는 대로 맞춤 조립을 해도 무방하다. DNA를 복제하고 RNA를 만들고 세포의 기초 대사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등을 포함한 최소한의 유전자에다 원하는 유전자를 추가하여 맞춤 유전체를 합성할 수도 있다. 그 유전체를 세포에 넣으면 원하는 생명체가 만들어진다. 벤터가 화석 연료의 대체물을 생산하는 생명체를 만들어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유전체를 원하는 대로 합성하여 조립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그 개념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생명체를 보는 또 하나의 주된 관점의 산물이다. 바로 생명의 본질을 정보라고 보는 시각이다.
신체가 무형의 ‘정보’로 바뀐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한 직후 과학자들은 DNA가 아미노산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단백질을 조립하는 과정을 알아내고자 애썼다. DNA의 염기는 4종류인 반면, 아미노산의 종류는 20가지였다. 따라서 단순히 생각하면 그 문제는 4종류를 조합하여 20가지를 만들어내라는 간단한 수학 문제나 다름없었다.
염기와 아미노산이 1대 1로 대응한다면, 염기 4종류로 만들 수 있는 아미노산의 종류는 4가지밖에 안 된다. 염기와 아미노산이 2대 1로 대응한다면, 16가지 아미노산을 만들 수 있다. 3대 1로 대응한다면? 64가지를 만들 수 있으므로 여유분까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염기와 아미노산은 3대 1로 대응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염기와 아미노산이라는 생명의 양대 기본 물질이 일정한 대응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면, 생체분자라는 매체에서 떼어내 추상적인 규칙만 살펴볼 수도 있다. 게다가 컴퓨터가 0과 1을 조합하여 정보를 표현하듯이, 네 종류의 염기를 조합하여 유전 정보를 표현하니 디지털 형식에 딱 맞았다. 염기와 아미노산의 대응 규칙인 유전암호는 본질적으로 디지털 정보였다.
그러면 그것을 컴퓨터로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생명체가 지닌 정보를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기면,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서 번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은 끝없이 펼쳐지면서 수많은 과학소설과 ‘매트릭스’를 비롯한 온갖 블록버스터 영화를 낳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실현 가능한 일일까?
전자현미경으로 본 가장 작은 생명체 ‘나노브(NANOBE)’.
그에 비하면 유전체의 정보를 컴퓨터로 옮기는 것 자체는 쉽다. 컴퓨터 기술과 정보 저장 능력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 연구자들은 이미 인간의 염기 서열 30억개를 비롯하여 여러 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해둔 상태다. 지금은 인류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과 유전병을 연구하기 위해 1000명분의 유전체 정보를 저장하려는 새로운 계획이 진행 중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할 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도 얼마든지 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벤터는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이 생명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전체 서열 분석을 통해 생물학이 아날로그세계에서 디지털세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그 정보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미래를 생각한다. DNA 정보와 활용 능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함으로써 다윈 진화가 아닌 인류가 이끄는 진화가 이루어지는 미래를 내다본다.
인간이 빛이 되어 날아간다?
생명체를 정보로 보는 관점을 전파한 또 한 사람은 리처드 도킨스였다. 1976년 그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 중심적 견해를 주창했다. 그 책에서 그가 유전자의 장점으로 꼽은 것이 바로 복제의 정확도, 장수, 다산성이었다. 그것은 컴퓨터의 저장 장치에 담기는 디지털 정보의 속성이기도 하다. 얼마든지 오래 저장할 수 있고, 필요하면 여기저기 복사할 수 있으며, 거의 오류가 없는 정확한 사본을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자주 복사하다 보면 한두 비트씩 조금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유전자에 이따금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세포 내 유전자의 복제 오류를 막는 수선 장치가 있는 것처럼, 컴퓨터에도 복제나 전송시 오류를 검출해 수정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그래도 오류는 이따금 생긴다. 오류는 때로 심각한 장애를 일으켜 생명 활동과 컴퓨터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든다.
하지만 어쩌다가 ‘바람직한 괴물’이라고 하는 유익한 오류를 지닌 변이체가 생성될 수도 있다. 그 변이체는 환경에 원형보다 더 잘 적응하여 번식할 수 있다. 도킨스는 그렇게 변이를 거치면서 진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며, 실제로 컴퓨터 바이러스 중에 그런 양상을 보이는 것들이 등장했다.
이렇게 유전학과 정보과학은 점점 더 같은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 도킨스는 유전학이 정보기술의 한 분야가 되고 있으며 유전 정보를 인쇄하거나 기타 매체로 옮길 수 있는 순수한 정보로 파악하는 것은 역사에 큰 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유전 정보를 순수한 정보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면, 이기적 유전자는 신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다. 그 정보는 종이든, 디스크든, 광선이든 어떤 매체에도 담을 수 있으며 기술이 허용하는 만큼 시간과 거리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우주선에 실어 먼 행성까지 보낼 수도 있고, 아예 빛이나 전파를 이용하여 우주로 쏘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면 이기적 유전자는 지구라는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그러니 이기적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지능을 그렇게 활용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몸을 수단으로 삼기를 잘한 셈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과학 지식은 심화하고 일반 대중이 잘 모르는 전문 분야는 늘어간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첨단 상품이라는 형식으로 그 첨단 과학기술의 집약체를 접한다. 휴대전화와 얇은 화면을 비롯한 첨단 전자 장치들, 병원에서 쓰이는 알 듯 모를 듯한 진단 장비들, 약봉지에 적혀 있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온갖 처방약이 그들이다.
다윈 진화론의 종식
거기에 생명과학 기술도 포함될 날이 온다면? 초등학생이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에 수시로 등장하는 DNA 장치들을 갖고 실험할 수 있다면? 노란 국화를 키우는 주부가 빨간 국화나 파란 국화를 보고 싶어서 간단한 장치로 집에서 국화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웹사이트 www. edge.org). 그는 더 나아가 부모에게서 후손으로 전달되는 유전자에 자연선택이 가해지는 다윈 진화의 시대가 끝나고 인류가 유전자를 수평으로 전달하는 양상이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투의 대담한 논리를 펼친다. 누구나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옮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리눅스 진영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서 누구나 고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를 공개하듯이, 공개되어 돌아다니는 유전자 부호를 활용하여 누구나 자신의 특성을 자유롭게 고치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 말이다.
인류는 지금처럼 알게 모르게 찔끔찔끔 진화에 개입하는 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럴 경우 허버트 웰스가 ‘모로 박사의 섬’에서 창조한 온갖 잡종이 등장할 법도 하다. 토마토, 인간, 송이버섯 등 수십 종의 유전자를 한몸에 지닌 돼지를 과연 돼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날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합성 생물이 등장하는 상황이라면 핵심 유전자를 기준으로 삼는 새로운 분류 체계가 개발되어야 할 법도 하다.
실제로 일부 학자는 “식물과 동물의 차이는 미생물들 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식의 과학기술의 보급이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인간은 한계가 설정되어 있으면 그것을 넘고 싶은 욕구가 끓어 넘치는 존재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고려해야 할 대안이 더 많아진다고 했다. 숨죽인 채 나무 열매를 따먹던 인류가 지금의 장엄한 문명을 건설하기까지 걸어온 과거를 돌이켜보며 우리는 자긍심을 느끼고 경탄한다. 전쟁과 파괴를 일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이뤘다. 인류는 어느 종(種)도 따라오지 못할 문명과 문화와 윤리와 언어를 빚어냈다. 그것은 인류가 커진 뇌를 선택한 결과였다.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그러나 과학이 지금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미래의 여러 대안을 접하면 우리는 왠지 움찔한다.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고, 그냥 과거에 하던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데닛의 말처럼 그것은 우리가 실수를 저지를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대한 새 모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즉,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대안이라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 도킨스는 네안데르탈인처럼 지능이나 능력 면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맞먹는 또 다른 인류 종이 발견된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인류 비슷한 존재가 왠지 음험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 다가올 때, 우리가 환영하는 표정을 지을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은 인공 심장을 달고 피부 밑에 실리콘을 주입하고 이빨에 금을 덧씌우고 턱에 금속을 박아 넣는 등 서서히 사이보그가 되어가고 있다. 뇌파와 의지력으로 컴퓨터와 로봇을 작동시키는 등 기계 장치와의 더 완벽한 융합도 도모하는 중이다. 그런 한편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망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을 고스란히 그 안으로 옮겨놓겠다는 포부를 안고서 말이다.
최근 인류학자 그레고리 코크의 연구진은 유전체 자료를 조사하여, 문화가 인류의 진화에 속도를 더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농경과 가축으로 식단이 변하고, 인구 밀집으로 전염병이 강해지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고 인류는 그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빠르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은 그 변화를 더 가속시키고 있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도록 말이다. 그것이 유전자가 부과한 명령이든 아니든, 생명의 디지털화가 인간의 유력한 미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