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대 대통령선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몇 차례 만났다. 늘 공천 문제가 이슈였다. 회동 뒤에는 원만히 타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양측은 이내 틀어졌다. 패자의 두려움, ‘대학살의 두려움’ 때문이다. 생존의 기로에 선 박근혜系의 공천 생존 투쟁기를 추적했다.
중국특사 단장으로 중국 방문을 마친 박근혜 전 대표(앞쪽 손 흔드는 이)가 1월1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마중 나온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갈등의 씨앗은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줄서기가 시작된 1년여 전에 뿌려졌다. 지난해 8·20 경선 이후 12·19 대선까지 4개월은 공천 갈등의 잠복기였다. 공천 다툼이 이-박 사이의 마지막 승부처로 여겨졌지만 대선운동 과정에서 누구도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던 갈등은 대선 직후 마침내 폭발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양측은 사사건건 벼랑 끝에서 대치했고, 그럴 때마다 공멸을 막기 위해 서둘러 봉합했으나 이내 실밥이 터지곤 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의 공천 갈등은 대선 승리 이틀 만인 12월21일 대권·당권 분리 문제를 놓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 공동 선대위원장을 지낸 박희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의 당권·대권 분리는 아마추어적 발상이다. 국정혼란과 여권의 풍비박산을 불렀지 않으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과 당이 따로 놀아선 안 된다. 당과 대통령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협력과 국정수행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헌·당규에 규정된 당정(黨政) 분리 원칙을 ‘당정 일체화’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총선 등의 공천권과도 연결된다. 현행 당헌 7, 8조에 명시된 당정 분리 규정은 대통령이 당직 임명과 총선 공천 등 당의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것이 골자다.
“신문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자 당권을 쥐고 있는 강재섭 대표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강 대표는 “당헌·당규에 규정된 당정 분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이 당선인 주변에서 자꾸 이상한 말을 흘려 쟁점으로 삼으려는 것은 당을 시끄럽게 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공천권을 둘러싼 기 싸움이 촉발된 셈이다. 이 때까지 ‘친박(親朴)’ 쪽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당정 분리 문제는 12월24일 이 당선자와 강 대표의 대선 이후 첫 회동에서 일단락됐다. 이 당선자가 “당헌·당규에 잘 정리돼 있는 것 같다. 당헌·당규를 고친다든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강 대표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또 “신문을 보니 우리 당이 공천 문제 때문에 뭐 어떻고 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 그런 것을 갖고 얘기할 때가 아니다”고 우려를 표시했고, 강 대표는 “내년 1월 중 총선기획단을 만들어 공천 일정과 기준 확정 등을 조용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코 조용하게 추진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강 회동 이틀 후인 12월26일 ‘친이(親李)’ 핵심인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 정종복 사무부총장이 잇달아 “18대 총선 공천자는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확정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재오 의원 등은 “취임식 전에 공천자를 발표하면 (공천 탈락 현역 의원의 비협조로) 국회에서 새 정부 국무총리 인준과 장관 인사 청문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자 박 전 대표 측이 드디어 반격에 나섰다. 총선에 임박해 공천자를 발표하겠다는 것은 반발의 틈을 주지 않고 이 당선자 측 뜻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으로, 총리 인준 등에서 거수기로 사용한 뒤 팽(烹) 시키겠다는 의도란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박 전 대표 측 명분은 이랬다.
겉도는 이명박-박근혜 회동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월23일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공천 문제와 관련해 박 전 대표는 공천 시기를 최우선으로 언급했다. 박 전 대표는 12월28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에 등원했다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작심하고 나온 듯 거침없이 말했다.
“들리는 이야기나 언론보도를 보면 공천이 늦춰진다고 하던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느냐, 인수위 업무도 중요하지만 공천도 당으로선 중요하다.”
당정 분리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당헌·당규대로 하는 게 당연하다.”
박 대표의 짧은 한마디는 친박 진영을 단번에 뭉치게 했다. 공천 주도권을 친이계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박 전 대표의 일전불사 의지를 재빨리 읽은 것이다. 이후 친박은 조직적 반격에 나선다.
이튿날인 29일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가 대선 이후 첫 회동을 가졌다. 서울 통의동 이 당선자 집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엔 덕담을 나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곧 단도직입적으로 공천 시기 문제를 꺼냈다. 박 전 대표는 먼저 이 당선자에게 정치발전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 뒤 “사실상 공천 문제 같은 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초석이 된다. 거기서부터 삐걱거리면…”이라고 운을 뗐다.
이에 이 당선자는 “그렇다, 내 생각도 똑같다. 국민이 볼 때 ‘이 사람들 밥그릇 챙기나’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잘해야 할 책임이 당 대표에게 있고, 우리가 옆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받았다.
언뜻 두 사람이 공정(公正) 공천에 인식을 같이한 것 같지만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천 시기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다. 서로 속마음을 감춘 채 엇박자를 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이 따로 깊숙한 얘기를 나눴을 수는 있다. 43분간의 이날 회동 가운데 언론에 공개된 내용은 8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배석자를 물리치고 독대했다.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 등도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때 한나라당 주변에선 박 전 대표가 ‘중국특사’를 수락하는 대신 이 당선자가 공천 시기 조절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말이 들렸다.
그러나 두 사람의 단독 회동에서도 공천 시기 문제를 해결할 분명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드러났다. 이 당선자는 새해 첫날 KBS 9시 뉴스 앵커 대담에서 “오는 (2월)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도 바꿔야 하고 새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해야 하는데 그 기간에 공천 문제가 겹치면 국회가 잘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친이 핵심들의 논리와 똑같았다.
40% 물갈이론은 당연?
이에 박 전 대표는 “29일 회동에서 이 당선인과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가 공천 시기와 관련한 말도 나왔는데 늦추지 않는다는 대화가 있었다”고 이정현 전 공보특보를 통해 밝혔다. 이튿날인 2008년 1월2일 박 전 대표는 마침내 폭발했다. 대구·경북 신년교례회 및 지역구(대구 달성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텃밭인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였다. 그는 이 지역 기자들과 만나 “석연찮은 이유로 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천을 그렇게 뒤로 미룬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대표는 특히 “당선인이 분명히 늦추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보도가 달리 나온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이 당선자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천 시기를 둘러싼 마찰이 계속되자 강재섭 대표가 나서 진화를 시도했다. 그는 1월3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 모두 (공천시기를) 당헌·당규대로 하자는 입장”이라며 “더 이상 권한 없는 분들이 나서서 오버하지 말라”고 양자 측근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그러나 친이와 친박 진영의 날 선 대치는 계속됐다. 특히 친이 핵심인 이방호 사무총장의 ‘40% 물갈이론’이 보도되면서 양측의 핵심 인사들이 나서서 벌이던 국지전은 친이-친박 진영이 총출동하는 전면전으로 확산된다.
이명박계의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중앙)과 박근혜계의 김무성 의원(맨 오른쪽)이 거리를 둔 채 서로 모른 체하고 있다.
이 총장의 35~40% 물갈이론은 언뜻 보면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의 공천 물갈이 폭은 17대 총선 36.4%, 16대 총선 31%로 과거에도 그 정도의 교체는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양측이 일촉즉발의 긴장을 느끼고 있던 시점이라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결과를 낳았고, 이 가운데서도 영남권 물갈이 폭을 수도권보다 확대하겠다는 것은 친박 진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 당시 현역 국회의원을 기준으로 영남권은 친박이, 수도권은 친이가 절대적 우위를 보였다. 따라서 이 총장의 40% 교체론, 특히 영남권 대폭 물갈이 언급은 친박 진영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가뜩이나 여의도 정가에선 “이 당선인 측이 이번 기회에 지역정서에 기대 당선됐던 함량미달의 영남권 의원들을 대대적으로 솎아내려 한다” “이미 살생부(殺生簿)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나돌던 무렵이었다.
“우리에겐 피난처가 있다”
발칵 뒤집힌 친박 진영은 이 총장의 발언을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김무성 최고위원은 “특정 지역과 계파는 공천 심사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승민 의원은 이 총장을 “공천과 관련해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한 뒤 “그런 사람이 당 지도부의 권한을 초월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통박했다. 친박 진영에서조차 금기시되던 ‘집단 탈당’이란 말이 입 밖에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친박 인사는 이런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칼자루를 쥔 이 당선인 측이 작심하고 영남의 친박을 친다면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만 그 경우 칼을 맞은 친박 인사들이 집단탈당한 뒤 제3지대에 모여 ‘박 전 대표도 동참하라’고 요구한다면 박 전 대표가 가까스로 공천을 받은 몇몇 측근만을 데리고 당에 남아 있지는 못할 것이다.”
또 다른 인사는 “우리에겐 ‘이회창 신당’이란 피난처도 있다. 나가라면 못 나갈 것도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친박 진영의 분노는 1월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스란히 표출됐다. 박 전 대표 진영의 좌장 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이 총장의 면전에서 사퇴를 요구했다. 김 최고위원은 “공정한 당무를 집행해야 할 사무총장이 월권적이고 비민주적 발언을 함으로써 당 내분을 야기하고 있다”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몰아붙였다. 이 총장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방어에만 급급했다.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전날 친박계인 김학원 최고위원, 유정복 전 대표비서실장 등과 함께 서울 시내 모처에서 박 전 대표를 만나 ‘이방호 발언’ 대책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날 이 총장 사퇴 요구는 박 전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박 전 대표 진영의 공세는 더욱 강화된다. 대통령직인수위가 활동하고 있는 시점에 공천 문제를 놓고 내분을 일으키는 양상을 보이면 여론이 등을 돌릴 수 있음을 들어 숨고르기를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박 전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때가 공천 주도권 경쟁의 중요한 고비라고 판단하고 총력을 쏟아 붓는 듯했다.
이 총장의 물갈이 발언이 있은 지 닷새 후인 10일 박 전 대표 측 핵심 인사 30여 명이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대규모 회동을 가졌다. 형식은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용갑 의원 위로연이었지만 대선 후 처음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앞다퉈 이 당선자 측을 성토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1월28일 공천과 관련해 박근혜 대표, 김무성 의원, 유정복 의원과의 일정이 적힌 메모를 보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앞서 이 당선자와 첫 회동을 가진 12월29일 몇몇 핵심 측근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측근들은 “이렇게 (약하게 대응을) 하시면 다음(차기)에도 안 됩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것은 결국 세(勢)가 부족해서였습니다. 다음에 승리하려면 세를 지키고 불려야 합니다”라고 쓴소리를 던졌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공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양측의 내부 분위기를 살펴보자. 이 당선자의 경우 직접 구체적인 ‘작전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그런 마인드도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도 대표적인 비둘기파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선 당내 분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양측 사이에서 중재역을 자임하기도 한다. 대신 이방호 사무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이재오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막후에서 뒤를 받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하팀’이 주도
박 전 대표 측에선 김무성 최고위원이 이끄는 ‘대하팀’에서 주로 전략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헌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대하팀은 사무실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건너편에 있는 대하빌딩에 두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등 원로들과 유정복·유승민·이혜훈 의원 등을 자주 만나 조언을 듣는다고 한다. 남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밑에서 오랫동안 각료를 지낸 인연으로 박 전 대표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고 있다. 현 전 회장은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 캠프에 참여했다.
이들의 조언을 들은 박 전 대표는 친박 인사들의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여러분이 (공천 문제로) 마음고생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다독거렸고, 이날 중식당 회동에서 한 강경 발언도 그런 기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한 측근은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계파 회동 다음날 이 당선자가 4강 특사를 면담하는 자리에 참석했지만 이 당선자와는 짤막한 인사말만 주고받았고, 러시아 특사인 이재오 의원과는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1월13일 열린 경기도지역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들과의 만남에서도 “박근혜와 가깝다고 부당한 대우를 하지 말라”는 등 강성 발언을 이어갔다.
박 전 대표 진영의 회동이 있은 이날 당 지도부는 공천심사위의 전 단계인 총선기획단을 발족시켰다. 이방호 총장을 단장으로 8명으로 구성됐다. 친이계가 이 총장을 포함해 정종복·정병국·김정훈·박순자 위원 등 5명이었고, 친박계에선 김학송·송광호·서병수 위원 등 3명이 포함됐다.
강 대표는 11일 총선기획단에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박 전 대표의 ‘사당화’ 발언을 겨냥, “자꾸 밖에서 당이 사당화 된다느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자체가 심한 모욕감을 갖게 한다”고 박 전 대표의 강경 드라이브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대신 이 당선자는 화가 치밀 대로 치민 박 전 대표를 다독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14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 측과 공천 시기 등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언할 점은 뭐냐”는 질문에 “당의 어느 누구도 개인적 이해나 계보의 이해를 떠나서 협력하는 게 좋다”고 답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더 할 얘기는 없다. 내가 할 말은 다 했다. 이 당선자의 기자회견 말씀은 당연하다. 그런 것은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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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 전 대표가 16일부터 3박4일간 이 당선자의 중국특사 자격으로 베이징 방문 길에 오르면서 한나라당의 공천전쟁은 잠시 포성이 멎었다. 공천심사위의 구성 시점, 외부 인사 참여 비율 등을 놓고 산발적인 말싸움이 벌어졌지만 한쪽의 총사령관인 박 전 대표가 국내에 없다 보니 전체적으론 휴전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소강 국면은 곧이어 몰아닥칠 대대적인 공천전쟁을 예고하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박 전 대표는 출국장에 배웅 나온 측근들에게 공천 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베이징 구상’이 초강수가 될 것임을 넌지시 귀띔했다고 한다. 경선 당시 조직을 담당했던 이성헌 전 의원이 “여기 나온 사람들이 대표님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참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박 전 대표는 “21세기에 꼭 말을 해야 아나요? 다 알고 있어요”라고 했다. 박 전 대표의 말이 끝나자 측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눈물 겨운 환호로 믿음을 표시했다.
예상했던 대로 이-박 진영 공천전쟁의 새로운 화약고는 공천심사위 구성 문제였다. 1월21일 확정된 1차 공천심사위 구성안에 친박 진영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기피하는 이방호 총장이 포함되자, 친박 진영은 다시 전의를 불태웠다. 유정복 의원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고, 유승민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이 구태로 돌아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한 박 전 대표의 말에는 탈당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직접 ‘탈당’을 언급했다.
담판, 밀약, 파기, 다시 담판…
한편으로는 양측의 절충 작업도 벌어졌다. 이방호 총장과 김무성 최고위원은 22, 23일 이틀 내리 저녁 늦게까지 무릎을 맞대고 담판을 벌였다. 친박 진영이 제시한 절충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굳이 이 총장을 공천심사위에 넣겠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리인’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데 이견이 없고 외부영입 인사 5명도 그렇다 치더라도 내부 인사 5명은 계파 안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내부 인사 5명에는 이 총장과 당연직인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 이종구·김애실·임해규 의원이 포함됐는데 박 전 대표 측에선 이 가운데 강 위원장만 ‘친박’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의 절충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양측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이러는 사이에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23일, 대선 이후 4번째 회동을 가졌다. 박 전 대표가 중국특사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였지만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최고조로 치닫던 공천 갈등을 둘러싼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 쏠렸다.
여의도에서 이 총장과 김 최고위원이 격돌한 것과 달리 이 당선인자와 박 전 대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공정 공천’이란 원칙론에 합의했다.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이) 당에서 원칙과 기준을 갖고 공정하고 마땅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고, 저도 전적으로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주호영 당선인대변인도 “두 분이 공정 공천 원칙에 합의했다”고 확인했다.
그 시간에 이 총장과 김 최고위원은 여전히 대치하고 있었다. 대화가 여의치 않자 이 총장은 선약을 이유로 자리를 떴고, 김 최고위원은 이 총장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때까지 여의도에서 기다리겠다고 버텼다.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 공정심사위원회 구성안을 상정키로 했기 때문에 밤을 새워서라도 가부간에 결정을 봐야 한다는 태세였다.
이 과정에서 미심쩍은 일이 하나 발생했다. 기자가 밤 10시쯤 김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이 다시 시작될 것 같으냐”고 묻자 김 최고위원은 “잘 안 될 것 같아서 집에 들어와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밝았다. 뭔가 물밑 움직임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이튿날 오후 양측의 갈등은 극적으로 봉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강 대표와 친이 진영의 주도로 짜여진 공천심사위 구성안이 원안대로 최고위원회의에서 만장일치 의결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어제 이 당선인-박 전 대표 회동에서 공정 공천을 합의한 정신에 따라 박 전 대표가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퇴각 이유를 설명했다.
김 최고위원은 “오늘 점심 때 강 대표, 이방호 총장과 만나 오해를 많이 풀었다”며 “그 자리에서 (전화로) 박 전 대표에게 보고하자, ‘내막을 잘 모르는 국민이 짜증스럽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정 그렇게 확실한 약속을 한다면 양보하고 원안대로 합의해주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오찬 모임 결과를 “사나이 대장부끼리의 약속”이라고 했다.
당장 정가에서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친박 진영이 이 당선인의 ‘공정 공천’ 약속 한마디에 물러설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박 회동에서 공개되지 않은 ‘밀약’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전날 밤새 기다리겠다던 김 최고위원이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간 것도 박 전 대표에게서 어떤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강-이-김 오찬 회동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 사이에 오간 약속들을 거듭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그날 이-박 회동은 55분간 이어졌고, 두 사람은 이 가운데 20분가량 배석자를 물리친 채 밀담을 나눴다.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 면담 후 웃음을 지은 이유에 대해선 나중에 “이 당선인이 한승수 국무총리 발탁 사실을 미리 알려줬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왔다. 한 총리지명자는 박 전 대표의 이종사촌 형부로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공천 문제에 접점을 찾은 것이 박 전 대표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게 한 원인이란 분석이 많다. 이른바 ‘이-박 이면합의설’이다.
이와 관련해 1월22일자 ‘동아일보’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에 4월 총선 공천 보장 희망자 85∼90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이 명단에는 지난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현역 의원 40여 명과 원외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40여 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대승적 양보냐, 이면합의냐
같은 날 ‘영남일보’도 비슷한 내용을 1면 톱기사로 실었다. 영남일보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 명단은 ‘대하팀’에서 짰다. 박 전 대표 진영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명단이 건네진 것은 확실하다. 내가 알기론 김무성 최고위원이 이방호 총장에게 전달했고, 지금은 이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모 인사가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80명이면 전체 지역구 243개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박 전 대표 측에서 3분의 1을 지분으로 요구했으며, 다만 80명 가운데 20% 정도는 다시 조율할 수 있다는 ‘마지노선’도 아울러 제시했다는 것이 그 인사의 설명이다. 물론 김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사자들은 명단 전달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며칠 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한 국회의원(38명)과 원외 당협위원장(42명)의 명단(총 80명)을 입수했다”고 보도하고 명단을 공개했다.
만일 이 같은 보도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의 23일 비공개 회동에서 명단을 두고 이면합의가 이뤄졌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양측이 이를 확인해주거나 명단 원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추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의 대승적 양보에 따른 것이든, 이면합의에 의한 것이든 이때까지는 다시 공천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화합을 가로막는 강력한 복병은 또 있었다. 부패 전력자는 공천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한 당규상의 공직후보자 선출규정 3조2항이었다.
공천심사위는 1월29일 3차 전체회의에서 그동안 잠재적 논란거리였던 이 조항을 그대로 적용키로 했다. 3조2항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직후보자 추천신청 자격을 불허한다’고 돼 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지난 1999년 알선수재죄로 벌금형을 받은 김무성 최고위원은 아예 공천 신청 자격이 없어진다.
박 전 대표 측은 분노했다. 이 당선인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지난 9월에 슬며시 개정한 조항을 그대로 공천심사에 적용하겠다는 것은 ‘준비된 정치보복’이란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30일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기자들과 만나 “정치보복이고 토사구팽”이라며 “한 번도 당적을 바꾼 적이 없는 나를 당이 쫓아내니 이제 당적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탈당 의사를 밝혔다.
파국은 원치 않지만…
그러자 공멸 위기를 감지한 친박계 현역 의원 35명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모임을 갖거나 전화를 통해 ‘동반 탈당’을 결의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들은 “이 참에 갈라서자, 이 당선인을 믿은 우리가 바보”라고 자괴감을 표시했다. 박 전 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공심위에서 원칙이 정해지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금은 그 적용 기준조차 모호하다”고 거들었다.
이 와중에 강재섭 대표가 당 회의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당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강 대표는 앞서 공심위 결정이 나오자 “이런 식으로 되면 당은 자멸할 것”이라며 “거취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대표직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이 당선자는 러시아특사 임무를 마치고 보고하러 서울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을 찾은 이재오 의원을 앉혀놓고 1시간 동안 대책을 숙의하기도 했다.
이 당선자의 직접 지시가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공천심사위는 31일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김무성 최고위원을 비롯한 부정부패 전력자에 대해서도 별도로 공천 신청 자격 여부를 심사키로 했다. 그러나 친박 진영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별도심사’를 통해 시간을 끌다가 신청 불허로 결론내거나, 혹 신청을 받아들이더라도 공천심사 과정에서 탈락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다.
결국 이 사태는 강 대표가 2월1일 새벽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이 총장이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하며 “당규대로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나가려면 나가라”고 하극상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이에 친박 의원 28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42명 등 70명이 긴급 회동을 갖고 이 총장 사퇴 요구에 동참하고 나섬으로써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은 친이 대 친박+강 대표가 벼랑 끝 대치를 벌이는 신주류와 구주류의 맞대결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총선이 다가온 시점에서 양측 모두 파국은 원치 않았다. 이 당선자가 “서로 대화를 많이 해서 문제를 원만히 풀어야 한다”고 지침을 내린 것을 계기로 갈등의 상처는 또다시 빠르게 꿰매졌다.
“강재섭 지역구 민심 안 좋다”
2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 신청 불허 조항을 ‘금고형 이상’에만 적용키로 함으로써 벌금형을 받은 김 최고위원을 구제한 뒤 이 총장이 강 대표 자택을 찾아 “앞으로 잘 모시겠다”고 사과했고 강 대표가 이를 받아들였다. 내심 엄동설한에 여당을 떠나기 싫었던 박 전 대표 측 역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최고위원회의 중재안을 수용함으로써 당 내홍은 일단 잠복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진짜 공천전쟁은 지금부터다. 2월5일 한나라당이 전국 243개 선거구의 공천 신청을 마감한 결과 모두 1173명이 지원해 역대 한나라당 공천 사상 가장 높은 4.8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들이 현역 의원으로 있는 상당수 선거구에 친이 진영 인사들이 도전장을 냈다. 공천심사위는 계파 지분을 의식하지 않고 공정한 공천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탈락하는 측에선 결코 공정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구 서구에 공천신청을 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5선)의 경우 지역구 민심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한다. “대구의 경제 상황이 전국 광역단체 중 최하위 수준이고 대구 내에서도 서구가 가장 낙후된 곳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서구 출신 정치인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나”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 한나라당 관계자는 “서구는 ‘참을 만큼 참았다’며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감이 팽배하다. 지난해 4월 대구시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킨 바 있다. 한때 대구 경제를 이끈 견인차였던 서구의 낙동강-금호강 인근 공업벨트가 정치적-행정적 무관심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 현대화-재개발을 통해 서구를 낙동-금호 운하시대 대구를 대표하는 ‘강변 랜드마크 도시’로 재창조하라는 여론이 빗발친다. 이젠 당 간판이나 이름값으로는 안 통한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이번 총선에서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