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보면서 밥 먹으면 안 돼요?” 아이들의 성화에 엄마는 식탁에 차린 저녁을 TV 앞 앉은뱅이 상으로 옮긴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우스워 죽겠다는 듯 깔깔대는 아이들의 눈을 따라가 보니 시선은 이곳에 꽂힌다. 매주 토요일 저녁 MBC ‘무한도전’과 일요일 저녁 KBS의 ‘1박2일’. 20~30%대의 대박 시청률을 자랑하는 이들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자칭한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심지어 ‘1박2일’은 ‘리얼·야생·로드·의식주 버라이어티’란다. 주거니받거니 만담을 하는 듯싶더니 갑자기 여섯 남자가 춤을 추고, 또 어느새 초코파이 하나를 서로 먹겠다며 몸싸움을 벌인다. 어른들의 눈에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막막한 정신 없는 방송으로만 보이는데, 젊은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나다는 걸까.
MBC ‘무한도전’.(위) KBS ‘1박2일’.(아래)
미국의 ‘빅브라더’는 일반인 남녀 출연자를 한집에 모아놓고 그들의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과 사랑, 우정, 질투, 싸움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촬영장소 모든 곳에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실제로 ‘볼일 보는 것’ 빼곤 다 보여준다니, 과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이름값 한다 하겠다.
이외에도 미국 전역에서 가수를 발굴하는 ‘아메리칸 아이돌’, 살빼기 프로젝트인 ‘도전 팻 제로(원제 Fat zero)’,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 런웨이’,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우수한 도전자를 채용하는 직업 리얼리티 ‘어프렌티스’, 성형 리얼리티 ‘미운오리 백조 되기(원제 The swan)’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리얼리티’를 앞세워 인기몰이에 한창이다.
▼ 이해하기, 그 첫 번째 - ‘리얼 버라이어티’?
한국에서도 시도는 했다. 2000년엔 한 인터넷 방송에서 ‘한국판 빅브라더’인 ‘트웬티아이즈’를 선보였고, 수많은 케이블 방송사는 지금도 다이어트, 성형, 짝짓기 서바이벌, 스타 발굴 등 외국 리얼리티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SBS는 가수 박진영을 내세운 스타 발굴 프로젝트 ‘슈퍼스타 서바이벌’을 제작했다. 그러나 시청자의 반응은 뜨뜻미지근에도 못 미처 냉담하기까지 했다.
전세계적으로 인기 폭발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왜 한국에서는 죽을 쒔을까. 그 밑바닥에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애초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본 바탕이 우리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시청자는 여전히 선정적인 영상에 거부감이 있고, 서바이벌 경쟁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최근 들어 TV가 달라졌다. ‘리얼’은 한국 시청자에게 잘 안 팔리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어느새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별안간 한국 시청자의 취향이 변해 기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환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 터. 살펴보면 그 속엔 ‘리얼’을 우리 식으로 풀어낸 ‘한국형’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있다.
지난해 12월29일 여의도 MBC공개홀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2007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무한도전`팀이 축하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초창기 ‘무한도전’은 토요일 저녁 MBC 예능프로인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였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되던 이 프로그램에서, MC 유재석을 중심으로 평균 이하의 체력을 가진 게스트들이 지하철과 달리기를 하고, 온몸으로 세차를 해 세차 기계에 도전하고, 목욕탕 배수구 물 빠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물을 퍼냈다. 소수 마니아 시청자들은 이들의 ‘도전’이 신선하다며 극찬을 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그 ‘무모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리한 도전’으로 과도기를 거치며 대중성을 확보해나간 프로그램은 2006년 5월부터 현재 방영 중인 ‘무한도전’으로 포맷을 굳혔다. 그러고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지만, 뭉치면 최강이 된다’는 자신감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 끊임없는 도전, 최선을 다하는 리얼한 모습을 앞세워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KBS가 ‘리얼·야생·로드·의식주 버라이어티’라며 제작한 ‘1박2일’은 ‘무한도전’보다 출발이 늦었다. 후발주자로서 ‘무한도전’의’아류’라는 평가에 부담을 느꼈을 터. 영리한 제작진은 ‘무한도전’이나 그 아류작들과도 차별되는 포인트를 잡았으니 바로 ‘여행’ 이다. ‘무한도전’이 여섯 명의 캐릭터를 앞세워 매주 다른 주제와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한다면, ‘1박2일’은 ‘여섯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라는 최소한의 포맷을 벗어나지 않는다. ‘1박2일’의 웃음은 독특한 아이디어가 아닌 여행지에서의 돌발상황, 즉 해프닝에 몸을 기댄다.
▼ 이해하기, 그 세 번째 - 똑같은 건 지루해!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주류로 부상하기 전에는 짝짓기 프로그램, 퀴즈쇼, 토크쇼, 게임쇼가 연예·오락계를 풍미했다. 젊은 선남선녀 연예인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구애하는 현장에서 ‘마담뚜’ 강호동이 한껏 흥을 돋운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 ‘잘생긴 남자 연예인과 일반 여성의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극대화한 SBS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짝짓기 프로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성 떨어지는 동화 같은 사랑얘기에 시청자는 식상했다.
흥미를 잃은 시청자를 ‘똑똑’ 노크하며 깨운 것이 바로 ‘무한도전’이다. 잘생기지도 않고 인기도 그저 그런 어정쩡한 조합의 여섯 남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매회 ‘특집’으로 구성되는 ‘무한도전’은 기존 프로들에서는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내는 ‘신기하고 황당한’ 아이디어가 넘쳤다.
2007년 신년특집 ‘묵은 때를 벗기기를 바래’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출연자들이 목욕탕에 모여 목욕재계를 한다며 서로 때를 밀어준다. 그 순간 시청자는 연예인들의 몸에서 국수같이 밀려 나오는 때를 처음 접한다. ‘뉴질랜드 특집’에서 ‘아직도 형돈이 형이 어색해요. 그래도 사..사..사.. 좋아합니다’라고 고백한 하하의 롤링페이퍼가 공개되자, 제작진은 ‘형돈·하하 친해지길 바래’ 코너를 통해 두 사람이 친해지도록 데이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TV로 보면 그렇게 친밀해 보일 수 없는 연예인들이 사석에서는 서로 말도 잘 못 섞으며 애꿎은 휴대전화만 보는 모습을 전파에 실어 보낸 것이다.
비호감에서 호감 연예인으로 변신한 MBC `무한도전` 멤버들. ‘리얼 버라이어티’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진화하는 이들의 캐릭터에 있다.
신선도라면 ‘1박2일’도 뒤지지 않는다. ‘무한도전’의 성공 이후 그 아류작들은 ‘무한도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박2일’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간다. 멤버는 꽃미남 연예인이 아니라 각자 개성이 있는 여섯 연예인으로 구성된다. 기본적인 상황은 반복되지만 대본은 없는 리얼 콘셉트를 유지하며 ‘복불복 게임’으로 의식주를 결정한다.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은 따뜻한 방에서, 지는 사람은 텐트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자는 식이다.
강원도 정선으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가수 김종민이 우동을 먹다가 일행이 탄 기차를 놓치는 장면이나, MC몽이 가거도에서 영하의 날씨에 텐트에서 자기 싫어 한껏 숙성된 까나리 액젓 한 통을 단숨에 들이켜는 장면은 각본이 아닌 돌발상황이었고, ‘에이, 설마 하란다고 하겠어’ 하던 시청자의 예상을 단숨에 뒤집었다. ‘복불복 게임’은 새롭지 않지만 매번 달라지는 출연자의 행동과 스토리의 전개는 분명 새롭다. ‘똑같은 것’에 질려버린 시청자를 장악하는 핵심 수단이다.
▼ 이해하기, 그 네 번째 - TV라도 맘 편히 보자, 살기도 빡빡한데!
스스로를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 칭하는 ‘무한도전’의 멤버와,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1박2일’의 멤버들은 분명 어딘가 비슷하다. 연예인이지만, 부담 없는 외모와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을 법한 동네 이웃 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긴 무명시절을 겪은 유재석, 가느다란 인기에 만족해야 했던 박명수, 몇몇 히트작 외엔 내세울 게 없던 정준하, 안 웃긴 개그맨 정형돈, 길거리 VJ이던 노홍철, 가수로 못다 핀 꿈을 가진 하하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강호동, 김C,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 MC몽으로 구성된 현재의 ‘1박2일’ 멤버들 역시 ‘완벽할 것 같은’ 연예인의 허점을 드러내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마찬가지다. ‘누나들의 로망’이던 이승기와 ‘은각하’라고 불리던 은지원은, 야외 취침과 공복의 두려움 속에서 로망을 벗고 각하를 던졌다. ‘야생의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 ‘1박2일’ 멤버들은 때로는 순한 양이, 때로는 거친 악동이 된다.
특히 이들 출연자들이 ‘견고하고도 유연한 캐릭터 설정’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음은 가장 큰 공통점이다. ‘무한도전’은 캐릭터들의 찰떡궁합으로 이뤄지는 ‘캐릭터 쇼’라 칭해도 과하지 않다. 프로그램 초기에 유재석은 1인자, 박명수는 2인자 혹은 제8의 전성기, 박 사장, 아버지 등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정준하는 식신과 뚱뚱보 혹은 어머니, 정형돈은 어색한 뚱보, 노홍철은 퀵마우스, 하하는 꽃미남 또는 단신이었다.
자리를 잡았으면 이번에는 버린다.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시청자를 위해 캐릭터는 ‘유연한 변화’를 이어나간다. 박명수는 회를 거듭하면서 개그계의 ‘거성’과 ‘고유명수’, (하)찮은 형, 소년 명수로 변화했고, 하하는 꽃미남 이미지보다 작은 키가 부각돼 꼬마로 불리다 최근 ‘상꼬맹이’로 진화했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자랑하는 ‘캐릭터를 주무르는 재주’는 새해 들어 실시한 ‘반장 선거’ 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상치 못하게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되면서 졸지에 1인자와 2인자의 위치가 바뀐다. 이는 ‘캐릭터의 극적인 변화’를 이용해 프로그램 전체를 잠시나마 환기시키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 시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수많은 네티즌이 ‘무한도전’ 홈페이지에 ‘유 반장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글을 차고 넘치게 올리고 있고, 각종 연예뉴스도 연일 이를 이슈 삼아 보도를 이어나간다. 무한도전 팬카페에는 ‘지못미 유 반장’론(論)이 대세를 이룬다. 여기서 ‘지못미’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줄여 만든 젊은 세대의 신조어란다.
‘1박2일’은 어떤가. 일단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데다 여러 차례 멤버가 바뀌어 아직 캐릭터의 ‘역사’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제작진으로서는 견고한 멤버 구성이 시급한 과제였을 터. 하지만 여행 횟수가 늘어갈수록 멤버들의 행동은 한결 자연스러워지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캐릭터는 치밀하게 ‘포착’되는 중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겁 없이 행동하는 은지원은 철없는 ‘은초딩(초등학생)’으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완벽한 이미지였던 이승기는 매사에 빈틈을 보이며 ‘허당 이승기 선생’이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이미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보한 야생 돼랑이 강호동은 ‘강호동식 리더십’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중이고, 김C는 재치 있는 언변으로, 이수근은 중간 조정자로, MC몽은 뭐든 열심히 하는 야생 원숭이로 다가온다.
‘적당함과 평범함’이 미덕이던 과거와 달리, 개성이 없다는 것 자체가 ‘굴욕’으로 받아들여지는 젊은이들에게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네티즌들은 이름 앞에 수식어를 다는 것이 익숙한 세대다.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최강창민’‘영웅재중’처럼 넉 자로 된 이름을 앞세워 등장한 이래,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여넣는 것은 이제 하나의 공식이 됐다.
더욱이 이 캐릭터들 사이에 1인자 자리를 둘러싼 변주가 반복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핵심이 오히려 ‘2인자’라는 것. 경쟁은 하지만 2등 콤플렉스나 열등감은 없다. 오히려 ‘무한도전’의 2인자 박명수는 2인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풍부한 캐릭터 변화-을 철저히 누리고 있다. 1인자를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다가 수습이 안 될 때는 다시 1인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식이다. ‘1박2일’ 멤버들은 독보적 1인자 강호동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특히 은지원은 매번 강호동을 향해 도발적인 장난을 서슴지 않지만, ‘멋모르는 초등학생’ 캐릭터이기 때문에 순순히 용인된다. 강호동을 순식간에 ‘종이호랑이’로 바꿀 수 있는 ‘1박2일’만의 리듬 속에 ‘권위’는 없다.
이는 분명 찬물도 위아래 따져가며 마시는 한국 사회의 기존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학번 따지고 사번 따지며 ‘개념 있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한도전’ ‘1박2일’ 같은 무(無)권위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의 답답함을 뚫어주는 하나의 창구 기능을 한다.
게다가 이들은 매번 무언가를 향해 도전하지만, 그들에게 그 ‘결과’나 ‘성공’은 그저 도전하다가 당도할 수도 있는 하나의 지점에 불과하다. 무게는 ‘얼마나 진심으로 도전했는가’에 놓인다. ‘무한도전’의 여섯 멤버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던 ‘댄스스포츠’편은 쇼라기보다는 그들 도전의 땀과 눈물을 기록한 ‘인간극장’에 가까웠다. 몸치에 가까운 멤버들이 댄스 스포츠를 기초부터 배워 대회에 출전하는 장기 프로젝트에 대해 시청자들은 ‘과연 무한도전’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논리에 역행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다’라는 따뜻한 다독임의 눈길을 보낸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시청자들이 진정으로 위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모두가 성과 지상주의를 외치는 분위기에 주눅 든 평범한 젊은이들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흘리는 눈물’을 보며 함께 감동한다.
▼ 이해하기, 그 다섯 번째 - 그들은 이미 ‘우리’다
‘무한도전’과 ‘1박2일’ 제작진의 영리함은 이렇듯 시청자들이 갖게 된 정서적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데 있다. 프로그램 곳곳에서 시청자는 단순한 수용자를 넘어 ‘함께하는 친구’로 진화한다. ‘무한도전’은 ‘행사 하나마나’ 에피소드를 통해 예정도 없이 유치원, 안경점, 찜질방, 야구장에 찾아가 자신들의 캐릭터를 주제로 만든 노래 ‘하나마나송’을 부르며 공연을 벌인다. 갑자기 나타나 어색해 하던 관객들이 곧 적응해 함께 춤추며 어우러지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한도전’의 ‘하나마나 송’은 젊은 시청자들의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연말에 제작된 ‘무한도전 달력’은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판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짝퉁’ 무한도전 달력이 나올 정도로 이슈가 됐다.
‘1박2일’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현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감동 코드로 잡는다. ‘1박2일’ 인기 급상승의 결정적 계기였던 ‘독도 편’에서는 독도를 지키는 젊은 의무경찰들에게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 대접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자장면 한 젓가락에 웃음을 짓는 이들의 모습에 시청자는 감동했다. 피자가게가 없는 가거도의 초등학생들과 운동장에서 피자를 나눠 먹는 모습도 ‘1박2일’이 ‘사람’을 주목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공감대 넓히기’의 다른 한 축에 제작진의 노출이 있다. 촬영 현장에 제작진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굳이 편집으로 숨기지 않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김태호(33) PD는 뛰어난 패션 센스로 네티즌의 관심을 샀고, 김태희 작가의 미니홈피는 연예인 못지않게 방문자 수가 많다. 포털 사이트에서 박명수의 매니저 ‘정석권 실장’과 유재석의 코디 ‘미소 코디’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가 하면 정준하 매니저인 ‘최코디’ 최종훈씨는 하이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하하의 어머니 ‘김옥정 여사’가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세를 탔다.
심지어 제작진은 자막이라는 필살기를 통해 화면 내에서 직접적으로 발언한다. 노홍철이 ‘감독님 캡쳐’를 외치면 ‘닥쳐’라고 받아친 자막이 등장하는 식이다. 축구선수 앙리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미안해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오늘부터 아스날 팬!’이라는 자막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명자막으로 손꼽힌다. ‘신조어 남발’ 등으로 방송위원회의 경고를 받았지만, 그 대담한 자막 때문에 ‘무한도전’을 본다는 시청자가 많다.
‘1박2일’은 커다랗고 온순한 개 ‘상근이’를 전략적으로 등장시킨다. 제작진이 화자로 등장하는 자막을 줄이는 대신, 상근이를 통해 하고픈 말을 전하는 ‘시점의 변화’를 고려한 포석이다. 복불복 게임에 열중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제작진은 상근이를 카메라로 비추며 ‘쯧쯧쯧…’ 하는 말풍선 자막을 집어넣는다.
따지고 보면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성공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언뜻 보면 ‘웃고 떠드는 그들만의 잔치’로 비치는 이들의 쇼에는 사실 ‘무정형의 미학’과 ‘축적된 캐릭터 메커니즘’이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촉수는 극단적인 경쟁과 성과 지상주의, 인간관계의 단절에 지칠 대로 지친 젊은 층의 정서에까지 민감하게 뻗어 있다.
모두가 그리워하는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야말로 이들 프로그램이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오늘의 자리에 이른 까닭이다. 어른들의 눈으로는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주고받는 이들의 대화가 젊은이들에게는 한없이 정겹게 들리는 이유다. 그렇게 2000년대 후반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은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도 다른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