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 초유의 대도난: 78만원 사건’을 보도한 ‘신동아’ 1932년 3월호(위). 아래는 조선은행 전경. 조선은행권을 발행한 식민지 조선의 중앙은행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법주임이 자리에 없어 수사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수사주임도 자리를 비웠다. 미심쩍은 마음이 들어 형사계를 찾았지만, 그곳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2층에 올라가 주임급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무주임을 붙잡고 넌지시 물었다.
“서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평안남도 경찰부에 들어가셨소만….”
월요일 오전에 서장이 경찰부를 방문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오기영은 경무주임이 뭔가 숨기고 있음을 기자의 육감으로 알아차렸다.
‘방금 경찰서에 오는 길에 구(舊)시가로 달려가던 차가 서장 차였지. 하지만 평안남도 경찰부는 신시가에 있잖아. 음, 사법주임이 없다. 수사주임도 없다. 형사는 죄다 외근 중이다. 경무계 주임은 서장의 행방을 정반대로 속이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강도사건이라도 일어난 걸까. 그렇지만 강도사건쯤에 서장까지 출동할 리 없지.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것도 큰 사건이!’ (‘동양 초유의 대도난, 78만원 사건’ ‘신동아’ 1932년 3월호) |
오기영은 30분 정도 경찰서 아래위층을 오가며 정보를 수집했지만 그럴싸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경찰서에 남아 있는 인원들은 경무계 주임을 제외하곤 그에게 뭔가를 숨기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경찰서를 나와 부랴부랴 평안남도 경찰부로 달려갔다.
‘동양 초유’의 大도난
보안과에 들르니 예상대로 과장은 자리에 없었다. 보안과 차석과 전속형사도 보이지 않았다. 미심쩍은 표정을 애써 감추고 과장실 앞자리에 앉은 순사에게 태연하게 물었다.
“과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조선은행 평양지점에….”
“이봐!”
순사가 입을 떼기 무섭게 경무보(경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상관의 노기 띤 경고에 순사는 차마 발설해서는 안 될 비밀이나 폭로한 듯 당황했다. 자기 때문에 애꿎은 순사가 욕을 듣건 말건 오기영은 특종이라도 잡은 듯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