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장중학교 2학년 때인 2004년 그랑프리 준우승을 차지하고 귀국해 어머니 박미희씨와 함께 인터뷰를 하는 김연아.
김연아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그가 군포 신흥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윤명자씨는 “성격이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요즘 TV 인터뷰를 보면 예전보다 많이 활달해졌다고 느낄 만큼 내성적이고 연약했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담임을 맡은 지 1년 만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 했던 윤씨에게 ‘선생님, 저 안 잊어버릴 거죠?’라고 편지를 써 보낼 만큼 정이 깊은 아이기도 했다.
이미 피겨 스케이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맡은 임민옥씨는 김연아의 ‘겸손함’을 떠올린다.
“워낙 바쁘니 숙제를 빼주는 등 이런저런 배려를 했어요. 그러면 그 나이 때 애들은 잘난 척하기가 쉬운데 연아는 오히려 미안해 하더군요.”
그 무렵 김연아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슬럼프에 빠져 스케이트를 그만둘까 깊이 고민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임씨에게 고비를 넘기고 지금의 자리에 이른 옛 제자는 그저 대견할 뿐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듯, 김연아도 연습시간에 쫓겨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노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김연아와 함께 유종현 코치 밑에서 훈련한 안민지씨의 말.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일반인이 링크를 사용하는 자유시간에 노래에 맞춰서 피겨 안무를 스스로 만들어보고, 그걸 서로 보여주고 하면서 놀았어요. 연아는 피겨 점수 집계하는 방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쉴 때면 직접 점수를 매겨보고 재미있어 했죠. 피겨를 스포츠라기보다는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영광과 시련의 순간
6학년이 되던 2002년, 김연아는 4월에 열린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이듬해에는 크로아티아 골든베어 대회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기쁨을 맛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피겨부문에서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갔던 것이다.
도장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김연아는 선수로서는 좀더 도약할 수 있었지만, 그 전보다 학교생활을 더 많이 포기해야 했다. 그때 3년간 김연아를 지켜본 도장중학교 류정식 체육부장은 “학교에 따로 빙상팀이 없었기 때문에 선수도 김연아 혼자였다. 학교도 시즌이 아닐 때만 잠깐 나와서 중간고사만 보고 나머지는 리포트로 대체하곤 했다”고 말한다. 김연아에게 중학교 시절은 시련의 시기로 기억될 듯하다.
무엇보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 때문에 생기는 잦은 부상이 김연아를 힘들게 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연습을 쉬지 않았던 것도 부상이 끊이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 와중에도 2004~2005시즌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와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2위, 주니어 그랑프리 헝가리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때의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은 ‘영원한 맞수’인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와 처음 대결했기에 김연아에게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됐다.
국가대표였지만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나이 제한에 걸려 출전하지 못했고, 그 대신 3월에 열린 2005~2006시즌 세계 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최고성적을 거둔다. 높아만 보이던 마오의 벽을 처음 넘었다는 점에서, 또 김연아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렸다는 점에서 그의 선수 인생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경기였다. 그후 2006~2007시즌 시니어 그랑프리 2차대회에서 3위에 오르며 시니어 무대에 입성한 김연아는, 일주일 뒤 열린 그랑프리 4차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르며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 자격을 얻는다.
이후의 일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김연아의 앞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6년 12월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를 12점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 3월에 열린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쇼트 프로그램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 11월의 그랑프리 3차대회, 5차대회 우승, 12월 이탈리아 토리노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역시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지켜보며 대한민국은 새로운 스포츠 스타의 등장에 열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