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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용병’ 페이스메이커의 세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신기록 고삐 죄는 충직한 ‘가게무샤’(影武者)

  •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육상 용병’ 페이스메이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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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용병’ 페이스메이커의 세계

세계 최초의 페이스메이커는 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겼다. 당시 생리학자들은 ‘만약 인간이 1마일을 4분 안에 달린다면 곧 심장과 허파가 파열돼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뼈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생리학자들이 한때 ‘인간은 결코 1마일을 5분 안에 달릴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5분벽은 1804년 스코틀랜드 지주 로버트 바클리 캡틴(4분50초)에 의해 간단하게 깨졌다. 1825년엔 제임스 메트카프라는 사나이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록을 무려 20초(4분30초)나 앞당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를 뒤따라 달린 것이다. 한마디로 그 사냥개가 세계 최초의 페이스메이커였던 것이다.

페이스메이커란 ‘육상의 가게무샤’나 같다. 가게무샤(影武者)는 일본어로 ‘가짜 무사’를 뜻한다. 자신이 상대할 무사와 비슷한 스타일의 대역 무사를 말한다. 가상 라이벌과의 연습을 통해 실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인간은 능력이 비슷한 라이벌과 피 말리는 경쟁을 펼칠 때 자신의 한계치를 뛰어넘는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형체도 없는 ‘인간 대 시간의 경주’에서 벗어났다. ‘인간 대 인간의 경주’가 기록을 단축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냥개가 아니라 인간을 ‘라이벌 대역’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만약 1마일 경기에서 누군가가 트랙을 2, 3바퀴까지만 전속력으로 끌어준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800m, 1500m 달리기 선수들이 1마일 경주에 페이스메이커로 하나둘 등장했다. 기록도 점점 나아졌다. 1886년 윌터 조지가 4분12초8까지 끌어올렸고, 1915년 미국 타버가 0.2초(4분12초6)를 또 앞당겼다. 사람들은 타버의 기록이 당분간 깨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핀란드의 육상영웅 파보 누르미가 있었다.

1923년 누르미는 4분10초4의 신기록을 세웠다. 여기엔 스웨덴의 1마일 주자 에드빈 와이드의 초반 오버페이스가 큰 힘을 발휘했다. 와이드는 첫 바퀴를 너무 빨리 돌았다. 누르미도 와이드의 페이스에 따라 평소보다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 와이드는 3바퀴까지 빠른 속도로 달리다 결국 힘이 달려 뒤처졌다. 하지만 훈련벌레인 누르미는 그 속도를 계속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와이드가 페이스메이커 노릇을 해준 셈이다. 결승선을 끊은 누르미는 “앞으로 기록을 4분4초까지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1마일 4분벽을 깨라!



1931년 10월 프랑스의 줄리 로도메그가 사상 처음으로 ‘4분 한 자릿수대(4분9초2)’를 끊었다. 역시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이 컸다. 800m 전문선수 르네 모렐이 2바퀴 반까지 전속으로 끌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기록이었다. 1937년 영국인 시드니 우더슨의 4분6초4 신기록도 여러 명의 페이스메이커가 3바퀴까지 끌어준 덕분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우더슨은 168cm 57kg의 볼품없는 체구였지만 4바퀴째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스웨덴에 세계 최고의 1마일 주자 2명이 함께 등장했다. 몸이 부드럽고 자세가 자연스러운 군다 하에그, 자세는 딱딱하지만 연습벌레인 아르네 안데르손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 말리는 경쟁을 벌였다. 4분벽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자연스레 서로 페이스메이커 노릇을 하며 조금씩 4분벽에 다가갔다.

4분4초6(1942년 하에그)→4분2초6(1943년 안데르손)→4분1초6(1944년 안데르손)→4분1초4(1945년 하에그).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4분벽은 끝내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10년 가까이 이들을 넘어설 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록이 뒷걸음질쳤다. 1954년 4월까지 4분벽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호주의 존 랜디. 그는 그때까지 4분3초 이내로 6번이나 결승선을 끊었다. 하지만 그를 끌어줄 페이스메이커가 없었다. 그는 늘 2바퀴쯤 지난 뒤엔 혼자 맨 앞에서 달려야만 했다. 1953년 12월12일 4분2초, 1954년 1월21일 4분2초4…. 지긋지긋한 2초였다. 랜디는 끝내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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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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