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덕일의 역사 추적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newhis19@hanmail.com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2/6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지덕사 부묘소 전경.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1394∼1462)의 묘와 사당으로 숙종 1년(1675) 임금의 명에 의해 세워졌다. 원래 숭례문 밖에 있던 것을 1912년 서울 동작동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대군의 형제가 세 사람인데 두 번째가 효령이고 그 다음이 우리 세종대왕이신데, 나면서부터 성덕이 있어 신하와 백성들의 촉망을 받고 있었다. (양녕)대군이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이 모두 그에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버리고 덕 있는 사람에게 양보하고자 밤에 효령대군의 처소에 가서 은밀하게, “나의 뜻은 이와 같은데 그대는 어떻게 하려는가?”라고 묻자 효령은 말하지 않고 다만 합장하고 벽을 향하였다. 그러자 대군께서 그의 뜻을 아시고 돌아가서 이때부터 거짓 기행을 하면서 몸을 닦고 자제하는 바 없이 날마다 노래하고 여색을 즐기며 매와 개를 끌고 사냥하기를 일삼았다.(‘행장’)

‘행장’은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폐위되고 충녕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후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했다.

마침내 종묘에 고하고 세자를 폐하여 양녕대군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책봉하여 세웠다. 임금이 눈물로 대군을 보냈다. 의논이 이미 정해지자 대군이 기뻐하며 후회하는 마음이 없이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말했다. “충녕이 과연 나에게 속았다.”(‘행장’)

‘행장’은 공자의 지덕(至德) 외에 “주자가 이르기를, 만약 극치에 이름을 논한다면 태백이 문왕보다 더욱 높다”며 태백의 덕이 성인으로 불리는 문왕보다 높다고 주장했다. 양녕이 스스로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는 기록도 적지 않지만, 문제는 이런 기록들이 모두 후대의 기록이란 점이다.

외숙 실언 폭로로 위기 모면



‘정종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등 당대의 기록은 모두 세종의 자리에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실록은 일부 과장은 있을 수 있어도 없는 내용을 창작해서 산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관이 자신의 견해를 덧붙일 필요가 있으면 ‘사신은 말한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표시할 뿐이다. 따라서 양녕의 폐위 이유를 실록에서 찾아보는 것은 사건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양녕이 세자 시절 충녕과 함께 연루된 사건이 있었다.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들인 민무휼(閔無恤)·무회(無悔) 형제 사건이다. 태종 8년(1408) 원경왕후의 두 동생 민무구·무질은 뚜렷한 죄가 없었음에도 ‘어린 세자를 끼고 위복(威福)을 누리려 했다’는 모호한 혐의로 사형당했다. 외척 발호를 염려한 태종의 명에 따른 조치였다.

태종은 민무구·무질은 사형시켰으나 남은 무휼·무회에게는 각각 이성군(利城君)·여원군(驪原君)의 봉작을 줬다. 그러나 태종 15년(1415) 전 황주(黃州) 목사 염치용(廉致庸)이 노비소송에서 패하자 민무회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뜻밖의 변을 낳았다. 염치용이, 자신의 종 서철(徐哲) 등이 큰 부자인데 태종의 후궁인 혜선옹주(惠善翁主) 홍씨(洪氏)와 영의정 하륜에게 뇌물을 주어 내섬시에 속하게 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염치용과 함께 이 사건에 관련이 있던 전 전농시사(典農寺事) 권집지(權執智)가 민무회의 처가 쪽 인물이었기에 민무회를 찾아와 하소연한 것이다.

민무회가 충녕대군에게 이 말을 전하자 충녕대군은 부왕에게 고했다. 이를 들은 태종은 “내가 부끄러운 말을 들으니 도리어 경들을 보기가 부끄럽다(‘태종실록’ 15년 4월9일)”라고 크게 화를 냈다. 태종이 엄중 조사를 지시함에 따라 염치용과 권집지는 물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민무회도 하옥되고 말았다.

염치용은 곤장 100대에 경성(鏡城) 유배되고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태종은 당초 민무회는 염치용에게 이용당했다면서 석방했다. 그러나 의금부, 사간원 등에서 계속 강경 처벌을 주장하자 민무회의 직첩을 회수하고 서인으로 삼았다. 그런데 태종은 갑자기 사헌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민무회와 염치용 등의 불충죄를 육조(六曹), 의금부, 승정원, 사간원이 모두 엄히 다스릴 것을 주청하는데, 나라의 헌법을 맡은 사헌부는 좌시하고만 있으니 그 충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6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newhis19@hanmail.com
목록 닫기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