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삼성 비자금 - 국제 갤러리, ‘수상한 거래’ 내막

삼성 차명계좌서 거액 유입 후 미술품 수입액 급증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8-03-07 15: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삼성 비자금 스며든 후 수입 미술품 총액 4배 증가
    • 유명 갤러리 대표 “관행상 수입액은 매출액으로 잡혀야”
    • 수입액의 5분의 1인 매출액…탈세 의혹 제기
    • 국제갤러리 관계자 “전시용 작품 많아 세관 신고금액 높다”
    • 삼성 관계자 “불법적인 방법으로 미술품 구입한 사실 없다”
    • 해외 나간 국제갤러리 대표, 두 달 넘게 귀국 안 해
    삼성 비자금 - 국제 갤러리, ‘수상한 거래’ 내막

    서울 소격동에 있는 국제갤러리.

    지난해 12월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한 검찰 특본(특별수사감찰본부)팀은 삼성 돈 110억원이 국제갤러리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돈의 출처는 김용철 변호사를 포함한 삼성 전·현직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 김 변호사 이름으로 개설된 차명계좌에서는 17억원이 빠져나와 국제갤러리 계좌로 입금됐다.

    미술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 등 ‘삼성가(家) 여인’들이 회사 비자금으로 수백억원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김 변호사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물론 삼성측은 김 변호사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1982년 개관한 국제갤러리는 가나아트센터, 갤러리현대, 서미갤러리 등과 더불어 국내 대표적 화랑으로 손꼽힌다. 미술계 관계자는 “국제갤러리와 서미갤러리는 역사가 짧은 데 비해 인맥이 좋다”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큰 손님’은 인사동이 아니라 강북의 평창동과 강남 등 부촌에 많은데, 두 갤러리는 이들 부촌의 ‘큰 손님’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것.

    서미갤러리 대표 홍모씨는 2004년 해외 미술품 구입과 관련해 관세법과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 이후 삼성이 ‘주 거래처’를 국제갤러리로 바꾼 것 같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국제갤러리로 유입된 삼성 비자금은 ‘행복한 눈물’ 소동을 일으킨 서미갤러리로 흘러든 규모보다 클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110억원은 검찰이 국제갤러리의 여러 계좌 중 한 계좌에서만 확인한 것이다. 수사기간이 짧았던 검찰 특본팀은 나머지 계좌들은 열어보지 못한 채 조준웅 특별검사팀에 넘겼다.



    100억 넘는 작품도 구입

    삼성 계열사 전·현직 임원들의 차명계좌를 수사하고 있는 특검팀은 지난 1월말 1조원 이상의 차명자금을 확인하고 이 자금의 상당액이 비자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여러 차명계좌에서 출금된 돈이 미술품 구매를 대행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갤러리로 흘러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가려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특검팀은 서미갤러리에 이어 삼성 비자금의 미술계 유입 창구로 의심받고 있는 국제갤러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계좌 추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랑협회 회장이기도 한 국제갤러리 대표 이모씨는 지난해 10월말 출국해 귀국하지 않은 상태. 특검팀은 이씨가 입국할 경우 ‘통보’되도록 관계당국에 조치를 취했다.

    기자는 관계기관 취재를 통해 국제갤러리로 이동한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관계기관에 따르면 국제갤러리에 삼성 비자금이 처음 흘러들어간 시기는 2006년 6월. 몇몇 삼성 임원 명의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돈이었다.

    국제갤러리는 국내 미술계에서 흔치 않게 외국의 고가 미술품을 사들이고 연중 몇 차례 외국 유명 작가의 전시회를 여는, 말 그대로 ‘국제적인’ 갤러리다. 대부분의 화랑에서는 국내 작가의 작품만 판매한다.

    삼성 비자금 - 국제 갤러리, ‘수상한 거래’ 내막

    2006년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장 미셀 바스키아의 그림.

    관계기관에 따르면 2006년 이전 국제갤러리가 세관을 통해 들여온 수입 미술품 총액은 수백억원대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2005년에 약 500억원, 2004년에 400억원이었다. 하지만 2006년 이후 그 규모가 4배가량 커졌다. 2006년 약 1600억원, 2007년엔 1700억원으로 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삼성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이 유입된 이후 해외 미술품 수입액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100억원이 넘는 고가의 작품도 들어왔다. 이전에 없던 일이다.

    세관은 신고가액이 큰 물품 위주로 선별 검사해 실제 가격과 차이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관세청은 통관금액을 토대로 수입물품에 관세를 매긴다. 그런데 미술품에는 관세가 붙지 않는다. 관세청 관계자는 “미술품은 무세품이므로 세관 심사대상이 아니다. 외화 유출이나 밀반입만 아니면 수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세관 신고가액은 실제 가격보다 낮으면 낮지 높지는 않다. 관세청 관계자는 “미술품 같은 예술작품의 경우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어 세관으로서는 신고한 금액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했다. 관세청은 2001년부터 국세청에 통관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자료는 국세청이 법인세와 소득세 탈루 여부를 조사할 때 참고로 활용된다.

    “왜 급증했는지 모르겠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가격이 높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 전시회를 자주 열기 때문에 세관 신고금액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2006년 이후 왜 갑자기 (미술품 수입액이) 증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미술품 경매에 관계하는 모씨는 “예전부터 국제갤러리가 해외의 좋은 작품을 많이 소개해왔다”고 국제갤러리의 ‘실력’을 인정했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루이스 브루주아, 가다 아메르, 조앤 미챌, 장 미셀 바스키아, 칸디스 브라이츠, 장 프루베, 에바 헤세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어왔다. 그렇지만 갤러리의 경우 미술관과 달리 전시가 판매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전시용 작품 때문에 세관 신고금액이 높다”는 국제갤러리 관계자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무엇보다도 2006년 이후 미술품 수입 금액이 급증한 이유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외국 유명작가의 전시회가 2005년과 2004년뿐 아니라 그 몇 해 전부터 연중 몇 차례씩 열린 데다 딱히 2006년 이후 개최 횟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관세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수입 미술품 총액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품은 회화, 데생, 파스텔, 콜라주다. 2004년과 2005년엔 각각 5612만4000달러, 7350만2000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2006년엔 1억5201만6000달러로 증가했고, 2007년에는 6억2802만2000달러로 급증했다.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국제갤러리의 수입량이 급증한 2006년부터 전체 수입 미술품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것이다.

    국제갤러리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갤러리가 해외에서 들여와 전시회에 올린 작품 중에는 그림 외에 조각과 사진 작품도 많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조각전과 사진전을 자주 열었다고 한다. 국제갤러리를 통해 작품이 소개된 대표적인 해외 조각작가로는 데이비드 내쉬(2007년), 알렉산더 칼더(2003년)가 있다. 사진작가로는 칸디다 회퍼(2005년)가 꼽힌다.

    관세청 품목 분류에 따르면 조각은 회화와 구분돼 통계가 따로 잡힌다. 2004년과 2005년의 조각품 수입액은 엇비슷했다. 2004년에 1936만5000달러, 2005년에 1871만8000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2006년 들어와 5819만3000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2007년엔 1억달러를 넘어섰다(1억1291만7000달러). 2006년부터 미술품 수입액이 급증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세관에 따르면 어떤 물품을 어떤 목적으로 들여오든 세관을 통과할 때는 가격을 신고해야 한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미술품의 경우 판매용이든 전시용이든 소장용이든 신고절차는 같다”며 “전시 목적이라도 가격은 기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시용 물품인 경우 ‘전시 목적’이라고 용도를 따로 적는 게 관례라고 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전시용 미술품 수입액은 관세청의 수입실적 통계에서 빠진다”고 밝혔다. 2006년 국제갤러리의 수입액과 관세청 통계에 잡힌 전체 미술품 수입액이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미술계 관계자는 “갤러리가 해외에서 작품을 들여오는 건 대부분 판매 목적”이라고 했다. 유명 갤러리 대표 A씨도 “갤러리가 순수 전시용이나 소장용으로 작품을 수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제갤러리의 자금력은 어느 정도일까. 2006년 모 신용평가회사가 국제갤러리에 대해 작성한 신용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12월 결산한 국제갤러리의 총자산은 54억1400만원이다. 납입자본금 2억원에 자기자본이 13억6600만원이다. 매출액은 305억원이고 순이익이 7억2200만원이다.

    수입액과 매출액 격차

    갤러리업계에서 연 매출액이 100억원대면 톱클래스에 속한다. 그럼에도 국제갤러리의 재무구조는 1600억원 혹은 1700억원어치 미술품을 해외에서 구입한 것에 의구심을 자아낼 만하다. 물론 전시를 목적으로 임차했거나 위탁판매 계약을 맺고 외상으로 들여온 작품이 많다면 달리 생각할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세관에 가격신고를 했다면 대금을 지급하고 구입한 작품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했다.

    매출액이 수입액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것도 의문이다. 2004년과 2005년에도 200억~300억원대였다. 2006년 이후 해외 미술품 수입액은 4배 증가했는데, 매출액은 몇 년째 제자리인 셈이다. 이를 두고 수사기관 관계자는 “탈세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국제갤러리 관계자의 해명이다.

    “사왔다고 다 팔리는 게 아니다. 팔리지 않은 작품은 에이전시에 반납하기도 한다. 또 꼭 팔려고만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해외의 좋은 작품을 전시한다는 공익 목적도 있다.”

    그런데 미술계에 따르면 갤러리가 해외에서 고가 미술품을 수입하는 것은 대체로 판매처 확보를 전제로 한다. 사전에 특정 고객의 주문을 받고 들여온다는 얘기다. A씨는 “미술계 관례에 비춰 해외 수입액은 거의 그대로 매출액으로 잡혀야 맞다”면서 “다만 사전에 주문을 받고 구매 심부름만 한 경우 매출로 잡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가의 해외 미술품은 대부분 고객과 사전에 얘기가 된 상태에서 들여온다. 외국도 마찬가지인데, 먼저 갤러리가 고객에게 작품을 추천한다.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 카탈로그가 나오면 국제가격이나 경매 사례 등 가격 정보를 알려주고 구매 의사를 타진한다. 그런 다음 해외에 나가 작품을 사들인다. 주로 경매를 이용하기 때문에 싸게 구입하지는 못한다. 단순히 구매 대행만 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과 갤러리 사이에 상당한 친분이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갤러리는 고객의 돈으로 작품을 사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도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는 국제갤러리의 해외 미술품 수입액과 매출액이 큰 차이가 나는 데 대해 “매출 규모에 비춰보면 갤러리 자체 자금만으로 해외에서 미술품을 사들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제갤러리의 탈세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대신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해외에서 1600억원어치를 들여왔는데 매출액이 300억원이라면 먼저 재고가 1300억원어치 남아 있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갤러리의 자금력이 탄탄하다면 말이다. 아니면 해외 미지급금이 있는 경우다. 국내에서 사기로 한 쪽에서 구매를 보류하고 있거나 대금을 다 지급하지 않아 해외 판매자에게 구매대금의 일부만 지급한 경우다.

    또는 펀드 형태로 여러 투자자한테 돈을 끌어 모아 구매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갤러리가 팔지 않고 창고에 보관하기에 당연히 매출로 잡히지 않는다. 요즘 화랑업계에서는 이런 형태로 작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 고객들은 몇 년 후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투자 개념으로 미술품에 돈을 묻어둔다.”

    “우리에겐 고객이 많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미술품시장이 호황이라 작품가격이 예전보다 크게 올랐다”며 “미술품 수입액 증가를 꼭 삼성과 연결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국제적으로 그림값이 오른 건 사실”이라면서도 국제갤러리의 수입액 급증에 대해선 의아해했다. 수입액이 4배나 증가한 것을 가격만으로 설명하기엔 무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술품 가격은 작가나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격 요인보다는 수입 작품 수가 증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A씨의 견해다.

    한때 화랑업계에 종사했던 B씨의 의견은 좀더 단호하다.

    “갤러리가 고가의 해외 미술품을 무턱대고 들여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삼성 비자금이 유입된 게 사실이라면, 국제갤러리가 삼성측 오더를 받고 사들였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우리 갤러리가 삼성과 거래한다는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삼성 외에도) 우리에게는 고객이 많다”는 말로 삼성 비자금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삼성이 국제갤러리를 통해 어떤 작품을 얼마에 샀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울러 “미술품 구매 대행은 하지 않는다”고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국제갤러리는 혼수용 미술품시장에서도 알아준다. 강남 지역 등 부촌에서는 고가의 미술품을 혼수로 마련하는 것이 유행인데, 유난히 국제갤러리에 손님이 몰린다는 것이다. 국제갤러리 대표 이모씨는 평소 ‘누구누구네 혼수를 우리 화랑에서 마련해줬다’는 식으로 주변에 과시했다는 게 다른 갤러리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제갤러리는 또 언론 홍보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칸디다 회퍼 전시회만 해도 유력 일간지에 크게 소개된 바 있다.

    B씨는 “미술계에는 국제 등 몇몇 대형 갤러리를 삼성이 키워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홍라희 관장도 국제갤러리 이○○ 대표와 가까운 사이로 안다”고 귀띔했다. 다음은 그가 들려준 일화.

    “이세이 미야케라는 일본 디자인 브랜드가 있다. 제일모직에서 수입했는데, 홍라희 관장이 좋아한다. 이OO 대표를 비롯해 대형 갤러리 여주인들이 홍 관장을 따라서 그 옷을 입는 바람에 ‘갤러리 관장 유니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미술품엔 양도소득세 안 붙어

    미술계에 따르면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미술 애호가인 홍라희씨는 외국여행 중 전시회 관람 등을 통해 점찍어둔 작품을 국내 갤러리에 부탁해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나 리움 같은 큰 미술관에서 직접 구매를 시도하면 작품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것.

    대기업 비자금의 미술계 유입설과 관련해 가장 흔히 제기되는 의혹은 비자금 세탁이다. 갤러리가 비자금을 세탁하는 통로로 활용된다는 시각이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마련한 비자금을 안전하고 모양 좋게 묻어두기에 미술품만한 게 없다는 얘기다. 특히 기업이 세운 미술관의 경우 작품 구입비를 부풀려 차액을 비자금으로 만든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둘째는 투기 의혹이다. A씨는 “유명작가의 작품은 되팔 때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투자 개념으로 사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투자를 권유한 갤러리가 고객에게 되사가 비싼 값에 팔아주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긴다”고 털어놓았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손님에게 투자용 부동산 매입을 권유해 나중에 비싼 가격에 되팔아주면서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A씨는 그러나 “개인 투자자라면 몰라도 삼성 같은 대기업이 그런 시세차익을 노려 투기할 리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셋째는 상속 의혹. 즉 거액의 재산을 미술품으로 바꿔 세금 없이 상속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미술품에는 관세는 물론 양도소득세도 붙지 않는다. 상속이나 증여할 때는 과세대상이지만 등기를 할 필요가 없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금 납부를 피할 수 있다. 또 통관기록에 남는 해외 작품과 달리 국내 작품의 경우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구입자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일일이 ‘맞다,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서도 핵심 의혹에 대해선 부인했다. 그는 삼성측이 국제갤러리를 통해 미술품을 구입했을 개연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사실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갤러리 쪽으로 삼성 비자금이 입금됐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라고 정색했다. “아직 수사 결론이 내려진 게 아니다”라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모 갤러리 관계자는 “국내 화랑들이 이제 막 외국에 진출하는 단계에서 이런 일이 터져 안타깝다”며 “그간 삼성이 국내 미술계에 끼친 공은 지대하다”고 삼성을 변호했다.

    삼성은 대규모 투자로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해왔다. 다른 기업들이 주저할 때 삼성은 적극적이었다. 내가 공부한 독일에서는 삼성 같은 대기업이 미술품을 많이 구입한다. 장사 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 환원이 목적이다. 삼성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삼성이 미술계에 끼친 공 크다”

    국제갤러리 대표 이모씨는 해외 출장이 잦다. 1년에 10번 넘게 나간 적도 있다. 평균 출장기간은 일주일. 길어야 열흘이다. 이번처럼 두 달 이상 외국에 체류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수사관계자의 설명이다.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말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페어에 참석할 예정으로 출국했다. 이후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에도 참석하고 해외 작가들을 많이 만나느라 귀국 시점이 늦춰졌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이 미술품 구입에 쓰였다고 폭로한 것은 지난해 11월 하순이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타이밍이 묘해 오해를 받고 있는데, 원래 계획된 일정이었다”고 이씨의 귀국 지연이 도피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1월말 귀국 예정이었는데, 현재 연락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직까지 수사기관에서 공식 수사를 한 적도 없고 대표에 대한 소환 통보도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