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1월12일 오전 10시.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을 때 비서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이름 밝히기를 몹시 꺼린 그는 “미안하지만 각하와 관련된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각하(전두환 전 대통령)를 편하게 모시는 게 나의 소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름 밝히는 게 껄끄럽다면 성(姓)이라도 말해달라”고 하자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자와 사전에 인터뷰를 약속한 비서는 급한 용무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무리 중요한 선약이라도 상사의 지시가 있으면 바꿔야 하는 게 비서다.
자신의 기분보다 상사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비서 세계에 대한 취재는 녹록하지 않았다. 우선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만났다 해도 자신의 소속과 신분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고 기사에 실명이 게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직 비서들은 더 몸을 사렸다. 취재를 하면서 “비서는 입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입이 없는 사람’의 말문을 여는 일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 ‘비서처럼 하라’의 저자인 전 강원도 정무부지사 조관일씨는 비서의 덕목으로 ‘비밀유지와 충성심’을 꼽았다. 비서 업무를 통해 얻은 비밀에 대해서는 무덤에 갈 때까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
노태우 전 대통령의 문모 비서(청와대 행정관 출신)는 “비서는 취재 대상이 아니다. 존재가 없는 사람이다. 모시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일 뿐 주체가 아니다. ‘내가 누구를 모시고 어떤 일을 한다’고 밝힌 사람은 비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서론을 폈다.
“여비서 하나는 끝내주게 뒀다”
비서를 일컫는 영어 secretary의 어원은 라틴어의 secretarius이다. ‘비밀’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양에서 처음 비서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후한(後漢) 무제(武帝) 때로 알려졌다. 당시 임금의 기밀문서나 비장(秘藏)의 서책을 관장하는 직책을 비서(秘書)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비서라는 명칭은 고려 초기 축문과 기록을 맡아보는 내서성을 성종 14년(서기 995년)에 비서성으로 개칭하면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의 수령 밑에서 인사비서 등의 사무를 맡은 이방아전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직종과 관계없이 윗사람이 선호하는 비서는 충직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비서는 상전이 죽으면 두말없이 따라 죽었다. 상전의 기밀을 그야말로 무덤까지 가져가기 위해서다.
“○○○ 회장이 여비서 하나는 끝내주게 잘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