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이명박 대북정책 최초 본격진단

‘한미’ 지렛대로는 ‘남북’ 고비 못 넘긴다

  • 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8-03-07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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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25일 이명박 새 정부가 출범한 이튿날, 평양에서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양국 국가를 연주한다. 이것이 새 정부의 남북관계 구상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에피소드 1

    이명박 대북정책 최초 본격진단
    지난해 여름,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10여 년 전부터 대북(對北)관련 문화 교류사업을 해오던 B씨였다. 그는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며 “평양 측과 합의서도 체결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 후 B씨의 사업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미국 쪽에서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해줄 만한 협력자를 구하지 못한 게 주된 이유였다. 일개 민간인이 추진하기에는 사업이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가 너무 큰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됐건 뉴욕 필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은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이 사업이 다시 동력을 얻은 것은 지난해 가을께. 당시 B씨는 전화에서 “북측이 사업의 최초 기획자이자 계약 당사자인 나를 빼놓고 미국 측과 직접 교섭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이 시점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사이에 이 문제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는 얘기가 일각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2월11일, 뉴욕 필 자린 메타 사장의 ‘평양공연’ 기자회견이 발표됐다. 개인 사업가가 힘겹게 추진하던 것이 양측 고위 관료들이 발 벗고 나서면서 ‘공적(公的)’ 성격을 띤 프로젝트로 변모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튿날인 2월26일, 동평양극장에서 양국 국가를 연주하는 뉴욕 필의 공연은 전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묘한 타이밍이다. 최근 핵 신고 작업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온 두 나라가 ‘오케스트라 외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에피소드 2

    지난해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건이 제기됐다. 남쪽에서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주체는 노무현 정부였다. 노 정부가 임기 말 평화협정 내지는 그 전 단계로서 종전(終戰)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에 매달렸다는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그 구체적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된 것이 북한의 명목상 수반이자 권력 2인자인 김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이었던 것. 그러나 북한은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남측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굳이 ‘끝나가는’ 정권의 요청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 후 김영남 서울 방문 건이 다시 등장했다. 이는 1월 대통령직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자문위원인 고려대 남성욱 교수의 ‘북측 고위 당국자의 취임식 참석’ 발언으로 막연하게나마 처음 공개됐고, 이명박 당선자도 1월17일 외신기자회견에서 “북한에서 (취임식) 경축사절단이 온다면 언제나 환영한다”고 밝혀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불발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취임식 참석’은 남측의 대북전문가 A씨에 의해 추진됐다. A씨는 먼저 북측에 김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필요성과 논리를 제기했고, 북측이 동의하자 지난해 말 이명박 당선자 측에 이 제안을 넣었다. 그러나 당선자 측은 차일피일 답변을 미루다가 1월말에 와서야 이 제안을 거부했다고 알려진다. 북은 심사숙고 끝에 ‘권력 2인자의 서울 방문 카드’를 던졌지만, 남측 새 정부가 이를 거부한 셈이다. 당선자 진영은 미·일·중·러 등 6자회담의 당사국들에 특사를 보냈지만, 평양에 대해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해프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명박 대북정책 최초 본격진단

    1월9일 이명박 당선자(가운데)가 서울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왼쪽에서 두 번째)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위의 두 사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한반도 주변 상황을 전망하는 데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뉴욕 필의 평양공연 성사 배경을 설명하는 첫 번째 사례는 북미관계의 최근 동향을,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취임식 참석이 무산된 뒷얘기는 남북관계의 향후 기상도를 점쳐볼 수 있게 하는 재료다.

    뉴욕 필 평양 공연은 북미관계 진전이 올해 상반기에 급물살을 타는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가까운 시일 내에(심지어는 2월26일 뉴욕 필 공연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에반스 리비어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등도 26일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에 질세라 중국도 1월말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2006년 이후 소원해진 양국 관계의 전면 회복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일본 후쿠다 내각 역시 납치 문제 때문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기존 양국관계에 모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다수의 정보통은 전한다.

    이런 상황에 이명박 당선인 측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비핵·개방 3000’ 구상을 공약으로 내놓고, 한미동맹을 남북관계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 경협에 대해선 북핵 진전, 사업 타당성, 재정능력, 국민합의의 4가지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2월1일 동아일보·아사히신문·월스트리트저널의 이명박 당선자 공동인터뷰).

    문제는 이처럼 전임 정부에 비해 180도 달라진 대북 자세가 향후 한반도 기상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남북관계는 새 정부의 대북 자세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차적인 결과물이다. 이 함수관계의 답을 찾으려면, 정보통들이 전하는 북한 내부의 최근 움직임과 주변국 동향, 북한 지도부와 이명박 차기 정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주판알을 튕기는 속계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영남 서울방문 무산 배경

    먼저 북한의 최근 내부 사정. 북한은 지난해 대선국면 내내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왔다. 오히려 올해 신년 사설에서는 “남북경제협력을 다방면으로 추진하고, 10·4선언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대결시대의 잔재를 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예전 행태와 비교해볼 때 이는 새 정부에 대한 명백한 유화 제스처다.

    무엇이 북한의 태도를 이처럼 바꿔놓았을까.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남측에서 10년 만에 이뤄지는 집권세력의 물갈이에 보다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새 집권세력이 어떤 대북구상을 갖고 나오는지 일단 두고 보자는 포석이었던 것. 해마다 받아오던 대규모 식량 및 비료 지원 등에 대한 부담감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이후 선군(先軍) 슬로건을 슬그머니 옆에 제쳐두고 경제 부분에 매진해왔다. 갈수록 커가는 내부 체제 모순을 억누르기만 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징표다. 그러나 북미관계 등 근본적인 걸림돌을 치우지 않고서는 경제회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북한 당국은 지난해부터 대남창구인 통일전선부(통전부)와 그 산하기구들인 아태평화위원회(아태위), 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에 대한 일대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엔 당 조직지도부와 중앙검찰소가 이들 조직에 대해 강도 높은 부정부패 조사에 착수했다. ‘북측에서도 새 정권의 인적 변화에 대비해 물갈이가 진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한 북한 전문가의 ‘해설’은 이렇다.

    “통전부에 대한 조사는 단순히 부정부패 척결 차원이 아니라 남북 정부 간 단일창구로 기능해온 통전부 및 산하기구들의 역할 및 기능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으로 읽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대남관계에 관여하지 않던 상위의 당 중앙부서가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다시 말해 당 중앙부서가 과거 통전부가 보인 행태의 문제점을 찾아 해법을 모색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북정책 최초 본격진단

    지난해 12월11일 미국 뉴욕 맨해튼 링컨센터에서 폴 구엔더 뉴욕 필 회장(왼쪽)과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뉴욕 필 평양공연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자린 메타 뉴욕 필 사장.

    북한에서 이 부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함께 체제를 지탱하는 두 개의 핵심 축이다. 그런 기관이 남북 간 이면대화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중대한 변화다. 한편으론 김양건 통전부장이 국방위 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국방위가 지난해 초 이래로 통전부를 관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이들 조직이 움직였다는 것은, 최고지도부가 통전부-통일부(국정원) 간에 이어져온 기존 대화방식의 문제점과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타진은 통전부가 아니라 ‘그 윗선’ 차원에서 추진된 사안이었다. 북측으로선 획기적인 제안을 통해 남측의 새 정권과 새로운 대화구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난 10년간 겉돌기만 하던 남북대화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남측의 새 정부 준비팀은 이를 외면했다. 나아가서 남북관계보다 ‘한미동맹 강화’ 및 ‘북핵 해결 우선’을 전제로 내세우겠다는 자세를 안팎에 천명하며 노무현 정권과 합의한 기존 경협에 대해서도 4가지 원칙을 적용해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으로 구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북측으로선 실망스러웠을 대목임에 틀림없다. 베이징에서 평양 심층부의 상황을 관찰해온 한 전문가의 말이다.

    “북한은 조만간 이명박 새 정부에 대한 비판을 시작할 태세다. 우선은 지난해 10·4 공동성명에 열거된 경협사업에 대해 새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으면서 ‘청구서’를 들이밀 공산이 크다. 거기서 합당한 답이 나오지 않는 한 당분간 남북관계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北, 넌-루거 프로그램에 관심

    다음으로 짚어볼 대목은 북한을 둘러싼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최근 동향. 현재 표면적으로 나타난(달리 말해 다수의 전문가가 바라보는) 북미관계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줄다리기 양상이다.

    그러나 정보 계통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사뭇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미간 물밑 대화가 상상 이상으로 깊숙하게, 다방면에서 진행 중이며, 중국 일본 또한 이에 경쟁하듯 대북관계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황이 여러 부문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것. 겉으로는 핵물질 신고를 둘러싸고 잡음이 커지는 듯 보이지만, 이는 양자 대화가 깊숙한 단계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싸움’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지난 몇 개월간의 일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려면 얘기가 길어지므로 앞으로의 전망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 정리해보자.

    첫째, 현재 북미간 사회문화 교류 확대가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뉴욕 필 공연 이후의 사회문화교류 프로그램에 대해선 2월 중순 현재 북한에 이미 들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뉴욕 필 공연준비 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이후의 프로그램을 놓고 북측과 협의 중이라는 얘기다. 한 정보통에 따르면, 2005년경 평양에서 잠시 문을 열었다가 폐쇄된 북미 연락사무소(이는 양국간 관계정상화의 전단계다) 준비팀 멤버들도 이 작업에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두 나라간 다양한 방식의 ‘핑퐁외교’가 벌어질 것으로 점쳐지는 대목이다.

    둘째, 북미간 ‘넌-루거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넌-루거 프로그램은 1991년 미 상원의 샘 넌, 리처드 루거 의원이 공동 발의한 국제적 위협감축 계획으로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의 핵무기 해체를 돕기 위해 미국이 자금과 기술, 장비, 인력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지난해 2·13합의 이후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루거 의원의 보좌관인 키스 루스는 얼마 전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과학자 기술자 등의 재교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키스 루스 보좌관은 이를 위해 올해 2월12일부터 4박5일간 지그프리드 해커 미 스탠퍼드대 교수, 조엘 위트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 등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셋째, 북미간 식량 및 중유지원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북한 수해 때에도 식량지원 재개 의사를 내비친 바 있는데, 최근 물밑 협상에서 거론되는 지원 물량(세계식량기구의 지원분을 포함한)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라이스 방북→연락사무소 개설…

    이명박 대북정책 최초 본격진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월30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선물을 전달받고 있다.

    넷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양국간 ‘현안’이었다. 성사의 관건은 이 일을 통해 양측이 주고받을 ‘거래 내역’이 무엇이냐는 것. 미국은 지난해 10월 인신매매희생자보호법에 의거한 대북 제재 중 교육이나 문화교류사업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일부 제재를 해제했다는 사실이 최근에서야 알려졌는데, 이것도 라이스 장관의 방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전문가의 말이다.

    “북한은 그동안 라이스 방북의 선결조건으로 테러지원국 해제 등을 요구해왔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 신고부터 충실히 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최근 나오는 얘기에 따르면, 북한이 플루토늄에 대한 신고만이라도 명확하게 할 때 라이스 장관이 방북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고 한다.”

    다섯째, 앞에서도 거론된 북미간 연락사무소 개설에 관한 논의다. 이와 관련해선 북측에서 나온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북한 지도부는 “6자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그동안 미국에 판판이 깨졌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양측 수도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려면 최소한 미국의 국무장관급 인물이 평양에 와서 테러지원국 해제 등 물꼬를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북측은 그동안 물밑 접촉에서 ‘라이스 장관이 와야만 북미 문제의 엉킨 매듭이 풀린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해왔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1월말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 노동당 초청으로 평양에 들어가 30일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한 데 이어 이튿날엔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외교에서 당 기관끼리의 초청은 가장 높은 수위의 교류에 속한다. 중국의 경우 대외연락부는 가장 친북적이고 임무의 태반이 북한과 관련되는 부서다.

    왕자루이의 방북에 대해 대다수 국내 언론은 6자회담 진전을 위한 포석이라고 풀이했지만, 정보계 일각에선 북한의 대미 접근을 견제하는 동시에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동북아 정세를 안정시킬 필요성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한 그가 개성공단을 방문한 것에 대해선 남측 새 정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풀이도 있었다. 즉 이명박 당선자의 4강 특사외교에서 미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다고 느끼는 중국이 북한 경제개발에 발 벗고 나설 경우 한국의 대북경협 구상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음을 무언중에 시위하는 경고라는 것이다.

    국내외 정보 계통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와 무관하게 올 상반기 이후 다시금 ‘꽃놀이패’를 쥐고 흔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임기 말에 접어들어 외교적 성과에 목마른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동북아 정세 안정의 핵심을 국가이익으로 삼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당분간은 북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형세라는 얘기다.

    한미관계 개선이 남북관계에도 도움?

    그러면 이 같은 주변 환경 속에서 이명박(MB) 당선자 측의 대북 자세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MB 대북정책에 대해선 아직 공약 차원의 ‘원론’들과 당선자의 몇몇 발언밖에는 나와 있는 게 없지만, 일각에선 벌써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B 진영에서 현재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으로는 5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글로벌 코리아’ 항목에 적시된 ▲북핵 폐기의 우선적 해결 ▲비핵·개방 3000 구상 추진 ▲한미관계의 창조적 발전 ▲남북한 인도적 문제의 해결 등이 있고, 일반 과제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경제·안보·문화 공동체 추진 ▲남북협력기금의 투명성 강화 등을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당선자 측의 기본 구상은 ▲핵문제 해결이 경협 등 모든 남북 문제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 ▲한미관계 및 한일관계를 남북관계에 우선한다는 점 등이다. 한마디로 한·미·일 3국 관계 강화에 주력해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MB 대북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들을 거칠게나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미동맹 복원’과 ‘북핵 해결 전제’를 연결시키면서 다른 모든 사안을 이에 종속변수로 놓고 있다는 점. 북미관계 및 북핵 문제는 한국 정부에 의해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미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당선자의 발언은 논리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다.

    핵문제가 국제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내 문제라는 것은 1993년 북한이 NPT(핵비확산협정)를 탈퇴할 때부터 줄기차게 거론되어온 ‘원론’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하나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때의 부작용을 우리는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때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은 핵 협상을 미국에 맡김으로써 주도권을 상실한 채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처지로 전락했던 것이다. 국제적 틀로서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 노력과 남북대화를 통한 대북 설득이 ‘병렬적으로’ 진행될 때 한국은 주도적 역할을 잃지 않으면서 통일이라는 장기 비전을 구체화해나갈 지렛대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은 한 정보 전문가의 말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국제정치질서의 현실에서 보면 한미동맹 강화라는 주제가 전적으로 타당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이 북한과 나누는 속 깊은 대화 내용을 한국은 다 전달받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한미동맹이 아무리 강화된다고 해도 이 질문에 마음놓고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은 별개의 트랙으로 다루는 게 옳다.”

    “각론(各論)이 없다”

    둘째, 남북경협과 관련해 이 당선자가 제시한 4대 원칙(북핵 진전/경제성/재정부담 능력/국민적 합의)은 ‘북핵 진전→남북경협 검토’라는 공식만을 밝히고 있을 뿐 경협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각론’이 없다는 점. 나아가 ‘비핵·개방 3000’ 구상에서 북한이 300만달러짜리 수출기업 100개를 양성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떤 분야의 기업을 어떻게 설립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경협을 포함한 남북 문제는 어느 일방이 정해놓은 구도대로 되는 게 아니라 쌍방간 대화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북한 주민에게 지금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한지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300만달러 수출기업 100개 양성’은 북측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이는 또 일방적인 대북 공약이 북측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더욱이 차기 정부는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기회를 저버림으로써 향후 남북대화를 새로운 차원에서 만들기 위해 대화할 기회도 함께 날려버렸다.

    MB 공약에 따르면, 예컨대 북핵 문제 해결이 계속 난항을 겪으며 제자리를 맴돌 경우엔 새로운 경협사업을 벌이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이 경우 극단적으로 남북대화는 중단되고, 그 틈새에 미국 중국 등 외세가 북한에 진출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국민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궁극적으로 남북 화합과 통일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셋째, 남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각론 창출에 실패함으로써 남북 문제와 관련된 숱한 현안을 일단 전제만 내놓은 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다뤘다는 점. 사실상 역대 정권 중 출범 초기부터 남북관계에서 구체적인 각론을 갖고 있던 전례는 없었다. 대부분의 정권이 남북이 직접 부딪치는 ‘현장’을 무시한 채 탁상공론식, 피상적인 접근으로 불필요한 부작용을 키우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 초기 1~2년은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실용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현장’을 중시하는 자세는 필수다. 당장 2월 이후 북한에 대한 식량 및 비료 지원 문제가 대두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 및 미국에 대해 내밀 수 있는 지렛대는 무엇인지 등 가까운 장래에 벌어질 일들에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현장을 알아야 한다.

    넷째, 대화 채널의 문제다. 이 당선자는 “통전부와 통일부(국정원)의 밀실 담합은 더 이상 안 된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서울은 누가 북측의 대화 파트너가 될 것인지를 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측 입장에서 통전부는 지금까지 대남 전담창구였다. 남북 장관급회담에는 통일부 장관과 북측 내각 참사가 나왔지만, 지난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는 총리급회담, 부총리급을 단장으로 한 경제협력추진위(남북경추위), 국방장관회담 등으로 회담의 패턴이 다양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을 누군가가 나서 조율해야 하는데, 남쪽에서 그 조율의 파트너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남북관계, 위기의 3월

    결론적으로 말해, MB 대북정책에서 ‘신선한’ 접근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평가다. 이 당선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핵 포기가 곧 경제지원과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식의 대북 설득을 언급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문제를 한미동맹과 북핵, 경제성 검토라는 세 가지 트랙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한미동맹 강화라는 한 가지 창구만을 통해 남북 문제에 접근한다면 훗날 미국의 우산 속에 남북 문제를 종속시켰다는 비난을 받게 될 소지가 크다. 또, 모든 경협사업을 북핵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경제성에 입각해 추진한다면, 남북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기란 당분간 무망하다.

    당장 차기 정부는 취임식 다음날 평양에서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북미관계가 급진전하는 것이 과연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기만 하는 일인지 여부는 의외로 빠르게 드러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3월을 ‘치명적인’ 모순과 변수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낼 시기라고 보는 것이다. ‘실용’을 앞세우는 차기 정부가 이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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