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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2중 공작원 정태환 충격 증언

“北, ‘이재오 포섭, 노무현·이광재 관리’ 시도했다”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남북 2중 공작원 정태환 충격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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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2중 공작원 정태환 충격 증언

오랜 이중 공작원 생활에 대해 설명하는 정태환씨(왼쪽).

10·4 남북정상회담 중 노 대통령은 평양 옥류관에서 우리 측 인사들과 점심을 하며 ‘정말 힘든 회담이다’라고 했는데, 저는 노 대통령이 그러한 상황을 맞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노 대통령은 아마 ‘다시 평양에 가시라’고 해도 ‘가지 않겠다’고 할 것입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 지도자들이 북한의 실체를 모르고 상대하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큰 문제점입니다….”

이어 정씨는 대통합민주신당 이광재 의원과의 인연,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등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간략하게 말하면 1990년대 북한은 이광재 의원을 관리대상으로 선정해 정씨로 하여금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동향보고를 하게 했다. 이재오 의원은 관리대상보다 한 차원 높은 ‘포섭 대상’으로 선정해 역시 정씨로 하여금 동향보고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동향보고는 두 사람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씨는 이 동향보고를 북한뿐만 아니라 국가안전기획부에도 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정씨는 북한과 안기부에 모두 정보를 주는 이중 공작원 노릇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안기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은 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의 정보가 어떻게 북한에 전달됐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입을 꾹 다물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본심과 다른 일을 해야 했던 국정원 사정에 대해서도 그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정씨는 “북한의 중앙노동당 대남 사업부와 2005년 3월23일 이후 ‘반제(反帝)전선’으로 이름을 바꾼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 해외대표부의 제의로 그들에게 한국 동향 정보를 제공하다 ‘북한은 말로만 통일을 떠들지 실제로는 통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안기부에 자수했다. 그런데 안기부는 나를 통해 북한 공작조직의 움직임을 파악하려고 계속해서 북한에 정보를 제공하게 했다. 이른바 역(逆)공작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은 북한 노동당의 생각과 한국의 주요 정치인에 관한 어떤 정보가 어떻게 북한에 들어갔는지 손금 보듯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후 국정원은 김대중 정부의 지시로 모든 대북공작을 중단했다. 그때 나를 이용한 역공작도 중단됐다. 공작을 중단하려면 자수한 나에 대해 법적인 정리를 해야 한다. 2001년 국정원은 나에 대한 자료를 서울지검 공안부로 넘겼고, 공안부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것으로 내 사건은 정리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나와 관련된 모든 자료는 국정원의 비밀 캐비닛으로 들어갔다. 그때 국정원 직원들은 반 농담으로 ‘당신은 대통령이 되어야 이 캐비닛에 들어간 당신 파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중 공작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남북한 간에 만들어진 비밀의 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이러한 탐구는 1980년대 후반 주체사상 이론으로 이 땅을 휩쓴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계열의 한계와 우리 노동운동계의 문제점을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 한민전 대표의 애환과 타성에 젖어 관료조직화하는 북한 공작 조직의 한계도 보여줄 것이다.

‘제1부’ 노동 운동가의 탄생… “한국을 바꾸고 싶다”

정씨는 1963년 경남 진주에서 전기제품 도매상을 하는 집안의 4형제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진주 배영국민학교 6학년 무렵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신문을 정독했고 그 과정에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죽은 지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진주중학교에 진학한 그에게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혁명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나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생각은 더욱 절실해져, 1979년 2월 진주중 졸업장을 받는 것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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