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한정식집 ‘두레’.
먼저 2007년 6~8월 한나라당 경선 때로 잠시 되돌아가 보자. 박근혜 후보 진영은 한반도대운하의 부작용 논란,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 지방세 체납 전력, 자녀교육 목적 위장전입 전력 등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면서 ‘이명박 검증’을 한나라당 경선의 최대 이슈로 부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근혜의 눈부신 善戰
8월20일 경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경선 초반인 2007년 5월31일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KRC)의 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전화면접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결과 대선주자 선호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43.4%,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22.7%로 두 후보자 간 격차는 20.7%포인트로 나타났다. 그런데 8월20일 경선 투표에 20%가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는 51.6%, 박근혜 후보는 42.7%를 얻어 두 후보자 간 격차는 8.9%포인트로 줄었다.
문제는 경선 투표에 무려 80%가 반영되는 18만5080명의 선거인단 표심(票心)이었다. 박근혜 후보 측은 언론에 “선거인단 지지율에서는 이미 역전됐다”고 홍보했다. 이명박 후보 측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 후보 측 주장에는 근거가 있었다. 선거인단의 두 후보자 지지율 격차는 급격히 줄어들어 8월20일 경선 선거인단 투표에서 오히려 박 후보가 이 후보를 432표 누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선 초반 ‘여유 있는 1위’였던 이명박 후보는 경선을 거치며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다 당락이 바뀌기 직전 가까스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된 셈이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후보의 ‘이명박 검증’ 캠페인이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한나라당 지지성향인 선거인단 표심을 크게 흔들어놓은 데 있었다. “이명박 후보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본선 승리가 불안하다”는 논리가 먹혀든 것이다.
그러나 경선 중반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제동을 건 ‘일대 사건’이 발발했다. 이 사건은 이 후보의 ‘지지율 하락 속도’를 늦춰 궁극적으로 이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다. 이 후보 진영으로서는 ‘천우신조’와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