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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전작권 전환 논쟁

워싱턴서 ‘연기’ 역설한 기무사령관 vs‘합의 준수’ 총력방어 나선 주한미군사령관

  • 김종대│D&D Focus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점입가경 전작권 전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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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전작권 전환 논쟁

1994년 12월1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신고하는 이양호 합참의장(앞쪽)과 육해공군 작전지휘관.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말이 안 통하는 주한미군과 협의하지 않고 워싱턴 당국자와 직접 협상할 것이다. 나는 이미 7월에 워싱턴에 갔을 때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 울포위츠 국방부 정책차관, 릴리 부차관보에게 작전통제권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을 전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던 리스카시 사령관은 절충을 시도했다. 그가 제시한 비밀문서에는 ‘늦어도 1994년 이내에 평시작통권을 한국 측에 환수할 것을 고려(Envisioned)하며’라는 문구가 있었다. ‘고려’라는 표현이 리스카시 사령관의 술수라고 판단한 김 수석은 사인펜으로 ‘Envisioned’라는 단어에 빨간 줄을 긋고 그 위에 ‘Decided(결정)’라고 써 넣었다. 그러나 다시 유심히 보니 문장 앞에 ‘Barring Military emergency(군사적 비상사태가 없다면)’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평시 작통권을 주면 주는 것이지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이렇게 되물은 김 수석은 이 구절에도 역시 빨간 줄을 그어 삭제했다. 전시든 평시든 전제조건을 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상기된 얼굴의 리스카시 사령관은 모자를 집어 들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고, 그레그 대사가 허둥지둥 그 뒤를 쫓았다. 세 시간이 흐른 오후 3시30분, 김종휘 수석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리스카시를 완전히 굴복시켜 평작권 환수 합의를 이뤄냈다고 보고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크게 기뻐했다.

기무사령관과 DIA 국장의 회동



그 후 17년의 시간이 지났다. 2009년 4월28일, 김종태 기무사령관은 정보기관끼리의 교류와 친선 도모를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가 마이클 메이플스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김 사령관은 2012년 4월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전환받기로 한 노무현 정부 당시의 양국 간 합의에 문제점이 있다고 거론했다. ▲예비역 장군들이 전작권 전환 및 연합사 해체를 반대하며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한국 내 이견이 상존하고 있고 ▲북한의 로켓 발사로 안보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할 경우 국민의 안보불안이 고조되며 ▲우리 군의 단독작전 행사를 위해 준비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메이플스 국장의 답변은 간명했다. “전시작전권은 한국이 달라고 해서 준 것인데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는 이야기였다. 5월 중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분간 전작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한 청와대와 국방부 지침과 달리 일부 관계자들에게서 ‘전작권 전환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발언이 통제되지 않은 채 나오고 있다”고 필자에게 밝혔다. “이렇게 되면 미국 측으로 하여금 정부 간 합의마저 준수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어 향후 전작권 전환 문제를 논의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노무현 정부가 자주국방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2003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부터였다. 당시의 경축사 가운데 자주국방에 관한 핵심 부분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자주독립 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 국군은 6·25전쟁을 거친 이후 꾸준히 성장해 능히 나라를 지킬 만한 규모를 갖추었음에도 아직 독자적인 작전수행 능력과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다. 6·25전쟁에서 미군은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바쳐 우리의 자유를 지켜줬고, 오늘날까지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있으나, 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도 옳지 않다. (국군의)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나가겠다.”

전환 준비 주도했던 이상희 장관

‘자주’와 ‘주권’을 표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은 상당부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언과 닮아 있다.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구상에 따라 조영길 당시 국방장관은 F-15K 전투기 추가도입, 핵추진 잠수함 건조, 지대공 미사일 도입 등 전력현대화를 골자로 한 ‘자주국방 추진계획’을 2003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기획예산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복지예산 1조5000억원을 국방비로 전용하도록 조치하는 등 자주국방에 필요한 비용이 먼저 배정되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은 국방비 증가율을 기록한 정부가 되었다.

이 같은 국방 중시정책에 탄력을 받아 조영길 당시 장관은 전시작전권을 가급적 조속히 미국으로부터 전환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시작전권 전환계획’을 2004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원래 조 전 장관은 2003년 4월과 6월 청와대에서 열린 ‘자주국방 토론회’에서 전작권 전환 추진에 반대했지만 결국 전시작전권 전환의 첫걸음을 떼는 주역이 되었다.

2004년 7월 윤광웅 국방장관이 부임하고 나서도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09년경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2005년 이상희 합참의장이 부임하고 난 뒤 윤광웅 당시 장관은 합참의장 건의에 따라 대통령을 설득해 전환 시기를 2012년으로 연기하도록 입장을 바꾼다. 현재 국방장관인 이상희 당시 합참의장이 “2012년이 전작권 전환시기로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며 합참 내에 전작권 전환을 준비하는 TF를 구성해 전환계획을 주도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작권 전환의 당위성을 군 간부들에게 교육하는 등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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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D&D Focus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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