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에는 본질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수반된다. 결혼생활의 진실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한 장면.
A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서로가 경쟁조직의 킬러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아주 평범한 위기가 닥친다. 권태기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은 찾을 수 없고, 섹스도 거의 하지 않는다. 심각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담을 받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임무를 수행하다 둘은 서로의 실체를 알게 되고, 조직으로부터 상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제 적이 된 두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쫓고 쫓기는 게임을 하던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합쳐 훼방꾼을 없애버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는 결혼생활과 부부관계에 관한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결혼이란, 환상에서 시작해서 목숨을 건 전투를 거쳐 비로소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평범한 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로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부부가 오히려 상대방에 대해 전혀 모를 수 있다는 코미디 같은 진실은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연애할 때는 그토록 신비롭고 생각만 해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 왜 결혼 후에는 신비로움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버리는 걸까? 이에 대해 뇌과학자들은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는 화학작용의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들에 따르면 사랑의 감정을 조절하는 기관은 뇌의 변연계인데, 여기서 사랑의 각 단계마다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엔도르핀 등의 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된다. 사귄 기간이 18~30개월쯤 되면 항체가 생겨 사랑과 관련된 화학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시들해지고 권태기가 온다는 것이다.
권태기가 오는 또 다른 이유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의 상실에 있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가 되면 그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더는 알려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호기심은 사람을 깨어 있게 하고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주된 동력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사라지면 관심과 열정 또한 사라지게 된다.
흔히 시간은 나이에 비례해 빨라진다고들 한다. 스무 살 때는 시속 20km로 흘러가는 듯 보이던 시간이 서른 살이 되면 30km, 마흔 살이 되면 40km로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는 얘기다. 주관적으로 달라지는 시간의 속도는 호기심의 정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점점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사에 대해 심드렁해지면,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사이 시간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후딱 흘러가고 만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상대는 그저 옆에서 같이 생활하는 늘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완벽한 사랑에 집착할수록 행복한 결혼생활은 멀어진다
배우자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는 또 다른 원인은 상대에 대한 실망이다. 우리의 친구들은 완벽하지 못하다. 우리는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그런 친구를 용납하는 현실감을 가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친구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만은 고집스럽게도 완벽한 사랑에 집착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리처드 스틸은 “결혼이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이미지의 천당과 지옥”이라고 했다. 인류학자인 말리노브스키는 “결혼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선물한다. 그 문제란 인간의 꿈 중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가장 낭만적인 꿈을 일상적인 관계 속으로 합치시켜야 한다는 과제다”라고 했다.
어쩌면 결혼이란 매일매일 묻어나는 잘못과 모욕의 얼룩을 감내해야 하는 실크 옷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관계라면 상처 받을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공간인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이에 대해 “(결혼생활 속에서) 한 사람은 어떠한 증오나 분노 혹은 상처를 주려는 의도 없이 단지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표현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사랑에 대한 환상을 일정부분 버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마누라 죽이기’의 한 장면.
부부간의 사랑 속에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절실히 원해왔던 사랑을 보장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즉 현재의 사랑을 통해 어릴 적 조건 없이 쏟아지던 부모의 사랑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러한 불가능한 소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우리는 연인을 미워하게 된다.
우리는 그가 나와 분리되는 것을 멈추어주지 않기 때문에 연인을 미워한다.
우리는 그가 나의 공허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연인을 증오한다.
우리는 그가 나를 구해주고, 완성시켜주며, 나만을 바라보고, 엄마처럼 나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충족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연인을 미워한다.
우리는 그가 더 이상 나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연인을 증오한다.
물론 이러한 것이 모두 의식상에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숨겨진 문제들은 의식 밖에 있다. 이 같은 숨어 있는 소망은 현실에 거대한 지진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의식적이고 도달 가능한 목표와, 무의식적이고 도달 불가능한 목표를 구분할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인간의 행복이란 문제는 결혼에서건 다른 곳에서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기대,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욕구는 결혼생활에서 긴장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 된다. 결혼생활이 여자인 부인과 남자인 남편, 서로 다른 두 종족 간의 결합이라는 사실도 본질적으로 결혼생활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남자와 친밀함을 추구하는 여자는 늘 부딪치고,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에게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우리는 절망하고 유아적으로 분노한다. 부부는 결국 ‘가까운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계속 사랑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해 끝없이 궁금해 하기
결혼생활의 양식이 어떻게 변하든 여자와 남자는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 서로에게 계속 실망할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관계일지 모른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인간의 욕구 사이에 해결될 수 없는 갈등이 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갈등에 따른 상대방에 대한 실망은 결혼에 미움이 싹트게 한다. 미움은 의식적이기도, 무의식적이기도 하다. 순간적으로 스쳐가기도, 또는 깊이 뿌리박혀 지속되기도 한다. 미움은 잠깐 긁혀 나는 ‘삑’ 소리이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쓰디쓴 분노와 고통의 북소리이기도 하다. 미움은 항상 큰 주먹을 날리지만은 않는다. 때론 작은 훌쩍임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미움 없는 사랑은 없다. 그러나 알트만이란 분석가의 말처럼 만일 우리가 좀 더 유쾌하게 미워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격성이 배제된 인간관계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장난스럽고 유쾌한 형태로 미움을 표출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우선 결혼생활은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결혼생활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변덕스럽게 왔다갔다한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결혼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결혼을 두 사람의 교집합이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따로 떠다니는 두 개의 풍선으로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각자 자신의 욕구를 따로따로 충족하려들며 점점 더 합치기 어려운 낯선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부부관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내가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듯, 나조차 잘 모르는 내가 어찌 남을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끊임없이 서로를 알아가려고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70~80%조차 알 수 없는 게 부부관계다. 그러니 절대로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말자. 퇴근 후 부인이 뾰로통한 채 말도 안 하고 설거지만 우당탕탕 하고 있다면 ‘저 사람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한번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보자. 남편이 말도 없이 TV만 보면서 건성으로 대꾸하고 있다면 ‘저 사람 마음은 지금 어떨까’ 한번 생각하자. 그러면 상대방의 내면세계가 흥미롭게 펼쳐질 것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상을 나누며 교감해보자. 아마 당신은 계속해서 배우자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에 놀라고, 경탄하고 또 때론 실망하기도 하면서 상대에 대한 열정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같이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함께할 수 있는 취미나 문화생활의 시간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취미가 다르면 상대가 좋아하는 활동에 호기심을 갖고 하나씩 참여하자.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배려는 침몰해가는 결혼생활을 구해줄 유일한 구명밧줄이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을 spring@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