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인종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는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흑인’이라고 부른다. ‘검둥이’‘깜씨’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이처럼 피부색을 바로 지칭하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인종차별적이고 비하적인 태도로 평가된다. ‘African 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다. 미국에서 ‘black(흑인)’‘negro(검둥이)’‘nigger(깜씨)’ 등의 표현 대신 ‘African American’을 쓰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다. 아시아 사람도 ‘yellow people(노란 사람)’이 아니라 ‘Asian American(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부른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유럽에는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터키 등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많은데, 이들을 피부색에 따라 부르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실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재미교포조차 ‘black’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곤 한다. 이런 표현은 당사자에게 모욕적일 뿐 아니라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걸음 나아가 피부색을 묘사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black’‘brown’ 같은 직설적인 단어보다는 ‘dark-skinned(피부색이 어두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성차별적인 어휘 역시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여성을 차별하는 표현은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없어진 지 오래다. 많은 어휘가 평등적,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회의의 의장 chairman→chairperson, 대변인 spokesman→spokesperson, 기업인 businessman→business person, 경찰관 policeman→police officer, 항공기 여승무원 stewardess→flight attendant 등은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어휘이므로, 무의식중에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잘 익혀두어야 한다. 과거에는 남자를 기준으로 했던 대명사도, 요즘에는 he/she, his/her 식으로 병기하는 추세다.
또 하나 신경 쓸 것은 장애인에 관한 표현이다. ‘blind(장님)’‘mute(벙어리)’‘slow(저능아)’‘cripple(절름발이)’ 등의 단어는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장애를 묘사할 때는 ‘장애가 있는’ 이라는 뜻을 가진 ‘handicapped’‘impaired’‘challenged’ 등을 활용하는 게 무난하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은 ‘visually-impaired(시각장애인)’‘hearing-impaired(청각장애인)’ ‘mentally-challenged(지적장애인) 등이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사교행사의 동반자를 대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인 사교행사에 참석할 때 보통 배우자를 대동한다. 이 때문에 동반 참석자를 ‘wife(부인)’ 또는 ‘spouse(배우자)’로 호칭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동거관계의 상대방 또는 친구가 함께 사교행사에 참가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partner(파트너)’나 ‘companion(동료)’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오랜 세월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생활을 하고 있고,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도 동거 커플이다. 일부 유럽국가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파트너 동반 모임에 남자끼리, 또는 여자끼리 한 쌍으로 오는 경우도 꽤 자주 있다. 이런 상황에 놀라거나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도록 평소 문화적 추세에 대해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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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떤 어휘를 쓰느냐의 문제는 글로벌 무대에서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에게 큰 실례를 하고, 자신의 품격에도 흠집을 낼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이 경구는 영어 환경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어휘를 구사하면 언제 어디서나 교양과 지성을 갖춘 문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