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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무현 그후

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미디어 비평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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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6월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회원들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메이저 신문 광고 기업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가 진료나 변론을 탈법적으로 하면 폐업을 당한다. 그뿐인가, 그 정도가 심하면 자격이 박탈되고 인신구속에 이른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치에서 보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 없다.

기자는 몰래카메라를 사용하거나 사법기관을 사칭하는 등 비합법적인 취재로 사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는 벌을 받는 시늉은 잠시뿐 화려한 찬사와 함께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영예의 퓰리처상이 품에 안긴다. 이것이 저널리즘의 세계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미국 미주리대학 저널리즘 스쿨에서 펴낸 교재(News Reporting and Writing)에 등장하는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 언론책임론이 뜨겁다. 언론책임론의 요지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에는 그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보도해온 언론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그와 대립각을 세워온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메이저 신문을 겨냥하고 있다.

본말 전도된 ‘언론책임론’

일부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주된 책임은 검찰에 있다고 답했다(복수응답). 검찰(56%)에 이어 언론도 절반에 가까운 49%를 차지해 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경향신문, 한겨레, MBC 등 일부 신문과 공중파 방송은 “비판 대신 증오…죽은 권력 물어뜯기로 지면을 도배했다”고 메이저 신문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메이저 신문은 이들 언론을 향해 “서거 전 비판모드, 서거 후 미화모드”로 표변했다고 역공을 폈다.



논리적 이성적 비판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언론책임론이 한쪽이 쓰면 다른 쪽이 맞받아치기를 되풀이하는 살기 넘치는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양쪽 진영 공히 “이번 싸움에서 밀리면 우리 회사는 끝장”이라는 인식 아래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고 지나간 보도까지 들추어내면서 상대편을 공격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관련 언론 보도태도는 언론윤리 측면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례로 학계는 물론 일반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논쟁 자체가 이처럼 해묵은 감정싸움으로 커지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필자가 심판관으로 나설 뜻은 없다. 그 밑바닥에는 노 전 대통령과 특정 언론사 간의 뿌리깊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음에 더욱 그러하다.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현 정권 및 살아있는 권력에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 군림하는 정치 검찰에 있다. 그럼에도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이란 이름 아래 메이저 신문이 상대적으로 화풀이 대상으로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이 자리에서 미디어 윤리, 수사단계 보도관행 등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언론책임론이 타당한지 규명해보고자 한다.

캐내도 욕먹고, 안 캐내도 욕먹고

윤리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다. 윤리가 제대로 지켜져야만 우리 공동체가 안정되고 풍요로워짐은 물론이다. 다원화한 현대사회에서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여러 윤리적 문제에 부딪힌다. 문제는 다른 일반 직업군과는 달리 언론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규범인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구현하도록 요구받는 데 있다.

언론이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윤리기준을 무시한다면 국민은 그러한 언론 보도내용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은 점차 도태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윤리적인 면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사회악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할 경우에도 언론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다. 이 대목에서 기자의 취재윤리가 흔들리고 언론인은 외부로부터 욕을 먹게 돼 있다.

탤런트 고(故) 장자연씨 접대 리스트 보도나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전직 대통령의 호소를 보더라도 기자들의 취재 행태는 논란의 대상이고 그 중심에는 윤리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언론윤리’란 그 자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은 두 개의 단어, 즉 ‘언론’과 ‘윤리’를 억지로 조합한 옥시모론(Oxymoron·모순어법)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켜도 욕을 먹고 지키지 않아도 욕을 한 바가지 먹는 것이 취재윤리라는 것이다. 속속들이 캐내면 선정주의 옐로 저널리즘, 저급한 저널리즘으로 매도당한다. 점잖게 대응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직무유기로 욕을 먹는다. 언론사 내부에서 취재기자는 데스크로부터 “무능하다” “기자 체질이 아니다”라는 질책을 받는다.

오늘날 통용되는 언론윤리는 크게 두 가지다. 공리주의 원칙(Utilitarian Principle)과 의무의 원칙(Duty-Based Principle)이 그것이다. 이중 공리주의 원칙은 취재활동의 윤리적 기준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사상적 배경이다. 공리주의는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S. Mill)에 의해 제기됐다. 어떠한 행위의 윤리적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결과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에 기여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좋은 결과가 나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The End Justify The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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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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