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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무현 그후

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미디어 비평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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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취재진이 분주하게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많은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놓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People′s Right to Know)’이라는 명제의 밑바닥에는 공리주의 원칙이 있다. 취재기자가 권력기관을 사칭하거나 개인의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피소까지 감수하면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찾아내 공중에게 폭로하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도 바로 공리주의 원칙이다. 언론이 노 전 대통령 비리의혹 검찰수사를 보도하는 것도 이 원칙에 기대고 있다.

‘노무현 수사’ 보도의 공리주의

공리주의 원칙에 따르면 권력자의 비밀스러운 행위가 폭로됨으로써 당사자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지만 국민의 알 권리는 충족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부정부패는 감소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구현된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이 같은 보도는 큰 어려움 없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를 핑계로 검증되지 않은 폭로를 일방적으로 일삼는 무책임한 언론은 공리주의 원칙의 시각에서조차 비판에 직면한다. 이는 ‘먹레이킹 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이다. ‘거름더미(muck)’를 갈퀴로 ‘파헤친다(raking)’는 의미로, 선정주의 저널리즘보다 한술 더 뜨는 무책임한 폭로 저널리즘을 지칭한다.

‘먹레이킹 저널리즘’은 ‘하이에나 저널리즘’으로 곧잘 이어진다. ‘하이에나 저널리즘’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선 순하디순한 양처럼 보도하고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하이에나처럼 날뛰는 언론의 행태를 비유한 말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 관련 보도에서 보듯 검찰이 슬쩍 흘린 정보를 확인된 사실처럼 보도하거나 공직자, 연예인 등 유명인의 신변잡기만 보도하는 언론이 일정부분 이에 해당한다. 품위 있고 책임 있는 언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명제로도 정당화되기 힘들다.



공리주의 원칙은 완벽한 윤리기준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고 하지만 국민이 진심으로 알고 싶어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서 ‘최대 다수’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덧붙여 “소수의 행복은 늘 다수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숙제다.

몇 년 전 황혼의 부부가 88억원을 암 연구기금으로 써달라며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노부부는 자신의 신분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많은 언론이 이 사연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런데 모 신문은 이 노부부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독자의 알 권리에 부응했다고 하나 보도윤리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독자의 단순한 호기심과 독자의 알 권리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알 권리는 국가나 정부 등 공공기관이나 정치인 등 공인(public figure)에 대해 주장할 수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공적인 영역이 커지고 지위가 낮을수록 사적 영역이 커진다. 이는 지위가 높을수록 사생활도 공적활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위직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는 법적 면책사유(legal defense)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 대해서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거액을 기부한 노부부의 신원과 사생활을 알 권리는 없다.

공리주의 시각에 의한 취재 관행에 자연인이 대항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프라이버시 권리’다. 프라이버시권은 간섭을 받지 않고 사적 행위와 관계를 즐길 수 있는 자율권(autonomy), 개인적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은둔(seclusion)의 권리, 그리고 정보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정보적 프라이버시(informational privacy) 권리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 우리 헌법은 17조에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며 사생활 보장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단순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the right to be let alone)에서 나아가 언론의 횡포로부터 개인의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는 비밀 보장권(the right to privacy)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러한 개념에 기초해 사생활을 보장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고위직의 사생활 보호 요구는 공동체적 공리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외면받기 십상이다.

칸트는 노무현을 옹호한다

공리주의 원칙의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원칙이 ‘의무의 원칙(Categorical Imperative)’이다. 이는 칸트(Immanuel Kant)의 도덕철학에 기초한 윤리관이다.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절대적인 윤리적 기준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면 남을 속이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므로 인간은 그러한 행위를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는 공리주의처럼 행위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따지지 않는다. 따라서 공리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의무의 원칙에선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되고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 사저 건너편 언덕에 진을 치고 밤낮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이 하는 취재행위는 정당한 절차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공리주의적 주장은 칸트 앞에서는 공허한 언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인은 윤리적 절대성을 강조하는 의무의 원칙에 대해 융통성 없고 비현실적인, 한마디로 세상물정 모르는 주장이라며 애써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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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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