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입력2009-07-30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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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세서리 하면 여성의 전유물로 생각되지만, 실상 액세서리는 오래전부터 남성의 개성과 품위를 강조하는 데 한몫했다. 벨트, 포켓스퀘어, 커프링크스, 시계 같은 소품들이 정장의 멋을 한껏 살리는 것이다. 남성복의 스탠더드, 영국 신사는 보수적인 느낌의 정장을 고집하는 동시에 무게감을 완화시킬 만한 튀지 않는 액세서리를 탐색한다.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남성을 위한 제품들은 여성 제품에 비해 어느 정도 다양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부터 근대로 접어드는 18세기까지만 해도 공무나 사적인 경우 모두, 남성 복식이 여성 복식보다 훨씬 다채롭고 더 화려했다. 당시 여성을 위한 복식은 몸을 풍성하게 감싸도록 고안된, 실제로는 고래 뼈를 사용해 허리를 비정상적으로 조이는 드레스가 대표적이었다. 반면 남성을 위한 복식은 군복과 연회복, 평상복과 스포츠웨어에 이르기까지 장소와 목적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었다.

    특히 강력한 왕권이 확립돼 있던 프랑스를 중심으로 궁정문화가 발달해 남녀불문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복식과 화장술을 선호했다. 남성을 위한 별도의 스타일리스트가 있었을 정도다. 오늘날 여성의 전유물인 스타킹이나 하이힐, 심지어 가터벨트까지 원래는 남성이 치장하는 데 썼던 것들이라고 하니, 당시 남성패션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고대의 문화유산만으로도 후손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하다고 하는 프랑스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다수 출현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패션산업에서 독보적인 취향과 규모를 선보인 나라가 프랑스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에서 남성복의 스탠더드는 영국이 출발점이다. 이는 프랑스의 사치스러운 귀족문화가 프랑스대혁명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을 통해 대중적으로 부정되고 절제됐던 영향이 크다. 권력과 지배계급이 모두 폭력을 수반해 교체되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프랑스와 달리, 명예혁명이라는 무혈의 권력교체를 이뤄낸 영국은 근대 제국으로 강력하게 떠오르면서 사회 문화와 스타일 면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의회를 중심으로 부상한 영국의 엘리트 귀족들은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아무래도 잊지 못했는지 프랑스식 화려한 복식과 사치품들을 허례라고 비판하며 배격한다. 따라서 영국식 복장은 보수성을 기본으로, 군대와 사립학교 그리고 스포츠를 자양분 삼아 정립됐으며, 영국의 식민지 획득과 더불어 세계로 진출한다.

    다민족 국가인 영국의 문화는 하나의 특성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포멀한 슈트를 입은 어느 영국 신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코미디언이 아니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빨간색 양말을 신으며, 타인에게 셔츠를 보이는 것은 속옷을 보이는 것과 같다 하여 재킷을 벗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거나 섹시한 그림을 담은 서스펜더(suspender)를 매기도 하니 말이다. 영국은 군주나 귀족들이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고 할 만큼 집사 문화가 발달했지만, 대부분의 영국 남성에게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지갑은 여전히 필수품이다. 또한 가벼운 비는 아무렇지 않게 맞고 다니는 그들이지만, 다양한 소재의 모자나 묵직한 우산은 여전히 영국적인 그 무엇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전세계 남자들은 성장(盛裝)을 하면서부터 영국이라는 나라에 어느 정도 빚을 지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자의 품격을, 때로는 생각지 못한 유쾌한 위트와 유머를 드러내기도 하는 액세서리에 이르러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영향력이 더욱 놀랍다.

    아름다운 조화를 위한 액세서리



    액세서리는 슈트나 구두, 셔츠처럼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의복 그 자체는 아니다. 액세서리에 대한 잘못된 통념 중 하나는 그것이 반드시 보수적으로 보이는 남성의 옷차림을 개성적으로 마무리하거나 멋지게 튀어 보이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액세서리의 목적엔 어느 정도 착용자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함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룩이 조화를 이루도록 촉매 기능을 하는 데 있다.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프랑스인보다 훨씬 금욕적이었던 근대 영국인들은 남성의 옷차림을 그의 존재감이나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했다. 따라서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특정한 제품이 도드라진 차림새는 영국인답지 못하다고 보았다. 19세기 초에 형성된 근대적인 영국 국민성에 의하면 사회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 그리고 자연을 파괴하는 삶이나 페어플레이 정신의 실종 등에 대해 영국인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옷과 액세서리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차림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이 견지됐을 것이다. 요컨대 영국인의 미묘한 의식 속에는 시대와 무관하게 가장 보수적인 느낌의 정장을 고집하는 동시에, 그런 복장이 갖는 격식을 티 나지 않게 완화해주는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커프링크스는 남성의 손을 돋보이게 하는 정교하고 매력적인 소품이다.

    근대적 복식은 귀족 주도하에 발달했다. 그러니 대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코냑 색상의 악어가죽 벨트, 아일랜드산(産) 리넨 포켓스퀘어, 산뜻하고 포근한 스코틀랜드산 순모로 만든 수제 모자, 은으로 만든 무광택 커프링크스(cufflinks), 영국산 실크 서스펜더를 모두 갖추긴 어렵다. 그러나 역사란 소수의 사람이 즐기던 문화가 시간이라는 가치를 흡수하면서 대중화하는 잔잔한 흐름이 아니던가. 문명의 발전과 사회 수준의 진전은 점점 많은 사람이 이런 아이템을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남성복은 굳이 튀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은은하게 품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더욱 발전한다. 액세서리는 싸고 재미있는 것부터 고상하고 세련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슈트나 재킷 같은 정장에 어울리는 제품들과 가볍고 편안한 캐주얼에 적합한 스타일이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발달한다. 이 글에서는 남성의 전체적인 옷차림에 당당함과 유머, 그리고 감각을 더해주는 클래식한 액세서리들의 역사와 핵심 가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 역사상 가장 번영한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빅토리아 여왕 통치 시기)에 영국 남자들은 시대적 풍요로움에 힘입어 자신들의 품위와 취향을 차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액세서리를 활용하는 데 능숙했다. 비교적 표식이 분명한 액세서리는 착용한 사람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게 하는 일종의 잣대였으므로, 당시 액세서리 전문점은 커프링크스와 서스펜더, 수집가용 한정판 시계, 만년필 같은 소품들로 오밀조밀 풍요롭게 채워졌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몇 차례 전쟁을 치르고, 실용주의 영향이 강했던 근대에는 액세서리가 지나친 화려함으로 간주되면서 금기시되기도 했다. 전쟁을 통해 강한 마초성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던 20세기 초반에는 남자를 위한 포켓 위스키 병과 철제 담배 케이스가 필수 액세서리였다. 그러나 담배가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면서 이마저 남성성의 극단으로 비판받고 점차 자취를 감추고 만다.

    커프링크스의 매력

    역사는 긴 호흡으로 서서히 반복된다. 보수적인 정서로 시대를 넘을 수밖에 없었던 근대를 지나 다시 장식이 많은 바로크스타일이 유행한 1980년대엔, 금반지와 보석으로 장식한 목걸이, 주름을 잔뜩 잡은 레이스, 깃털 장식 모자, 벨벳 재킷 같은 화려한 패션이 등장한다. 198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세기의 아티스트 마이클 잭슨이 이 트렌드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사는 남자들은 다시 비즈니스를 위한 수수한 색상, 간결한 디자인의 남성복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반지나 목걸이, 팔찌 같은 보석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에 소극적이지만, 앤티크 느낌의 시계나 독특한 커프링크스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같은 경제적 정보도 무시할 순 없지만, 고풍스러운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각각의 아이템에 관한 일화나, 동일한 액세서리를 소장했던 첫 번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여러 종류의 액세서리 중에서도 금속제 액세서리는 특히 남자가 슈트에만 신경 쓰는 단조로운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는 유력한 아이템이라 하겠다.

    남성이 커프링크스를 신중하게 푸는 모습은 여성이 드레스 뒤쪽 지퍼를 내리는 소리만큼이나 섹시하다는 말이 있다. 비즈니스에 임하는 남성들이 거의 유일하게 착용 하는 보석류가 커프링크스이기 때문이다. 커프링크스가 채워져 손목에 꼭 맞는 프렌치 커프스야말로 남성의 손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정교하고 매력적인 소품이다. 19세기 이후 많은 남성이 착용하기 시작한 커프링크스는 정장이나 예복처럼 격식을 갖춘 의상에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남자의 옷 입기에 대한 강박이 사라지면서 커프링크스를 캐주얼 의류에 적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굳이 금속이 아니라 실크로 만든 매듭 커프링크스로 가벼운 느낌을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가장 엄격하게 착용하는 예복용 커프링크스는 네 면 모두 세심한 정성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이 좋다. 턱시도를 입을 때는 반드시 드레스셔츠에 맞춰 커프링크스를 착용해야 한다. 블랙오닉스가 예복용으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보석이다. 커프링크스는 프렌치 커프스에 끼우는 것이 정석이라 원래는 양면에 모두 보석 장식이 들어 있었지만, 현대적인 슈트에 착용하는 경우 셔츠 바깥쪽 면만 보석으로 장식된 커프링크스가 일반적이다. 커프링크스의 소재로는 작은 사슬로 연결된 금, 은, 에나멜, 진주가 많이 쓰였다.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같은 천연보석으로 장식한 커프링크스는 너무 번쩍거려서 정장엔 다소 부담스럽지만, 밤의 연회를 위한 멋진 예복과 검정 보타이, 검정 넥타이에는 아주 잘 어울린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커프링크스라면 광택이 나지 않는 은 소재가 적절하며, 좋은 커프링크스라면 아들이나 아끼는 조카에게 가보로 물려줘도 좋을 것이다.

    가죽 스트랩의 오토매틱 손목시계

    특별한 목적을 위한 최초의 손목시계는 루이 까르띠에(파리에 보석 판매회사이자 시계 브랜드인 까르띠에를 세웠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브라질 출신의 친구이자 비행조종사인 산토스-듀몽을 위해 디자인한 시계가 바로 그것이다(산토스는 매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조종장치에서 손을 떼는 걸 무척 불편해했다). 1917년 제작된 까르띠에 탱크 시계는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 클래식이 되었으며, 이 모델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모방된 디자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슈트와 함께 신사의 상징이었던 시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템을 독립적인 보석으로 생각하지 말고, 슈트와 함께 남성의 복식을 완성하는 제품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계 역시 다이아몬드 반지와 마찬가지로 화려함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거나, 단지 결혼식을 위한 예물에 그칠지도 모른다. 슈트를 입은 남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손목시계는 클래식한 슈트의 진지한 품격과 부합하는 전통적인 소재, 즉 브라운 혹은 블랙 가죽 스트랩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남성복식의 화룡점정, 액세서리

    벨트는 격식을 갖춘 슈트나 캐주얼에 다 어울리는 남성복의 필수 아이템이다.

    물론 실용적인 스틸 밴드로 무장한 다양한 기능의 시계도 많고 요즘은 휴대전화가 시계 기능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대한 문자판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시계는 재킷을 비롯한 캐주얼에 적합하다. 휴대전화를 시계 대용으로 삼는 것은 휴대전화 마케팅 담당자의 훌륭한 아이디어로 칭찬은 받겠지만, 온전한 스타일을 생각하는 남자에게는 권할 만한 것이 못된다. 시계는 남자의 손목 위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정장을 입는 남성은 전자시계가 아니라 아날로그, 배터리를 사용하는 쿼츠(quartz)가 아니라 태엽으로 감는 오토매틱(automatic)을 고르도록 한다.

    남자가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시계는 그런 부담 없이 남자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감식안을 시험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취향을 정확히 보여줄 수 있다. 자동차가 ‘힘’과 ‘열정’을 상징한다면, 시계는 ‘지성’과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는 것이 남성들의 오랜 믿음이다. 여성시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보석이라면, 남성시계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의 정교함이다. 이것은 슈트로 치면 소재에 해당할 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남성시계 소비자는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패션 브랜드보다 시계 하나만 만들어온 장인 브랜드를 선호한다. 시계는 보석이 아니라 남자가 바라보는 작은 우주 결정체이니까.

    벨트 색, 구두 색과 일치해야

    남성패션의 황금시대였던 1920년대 남자들은 슈트건 재킷이건 바지를 몸에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서스펜더를 착용했다. 사실 그때는 정장을 착용할 경우 재킷 속에 조끼를 입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벨트는 허리를 쓸 데 없이 두둑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 상의와 하의가 한 벌로 이루어진 싱글 슈트가 점차 일반화하면서, 즉 조끼가 사라지면서 서스펜더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개발된 벨트가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사랑받는다. 서스펜더 대신에 벨트가 슈트와 함께 착용하는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스포츠웨어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캐주얼에도 어울릴 만한 다양한 벨트가 남성 복식의 필수적인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종류의 벨트건 그 외피는 결이 곱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정장용이고 어느 것이 캐주얼용인지를 구별하는 문제다.

    슈트나 블레이저 차림에 어울리는 벨트와 청바지에 어울리는 벨트는 우선 버클 모양에서 차이가 난다. 정장용 벨트의 금속 버클은 가운데가 빈 직사각형이면서 벨트 고리가 있는 스타일로, 일반적으로 그 폭이 1.5인치(약 3.8cm) 정도이며, 금속은 골드나 실버 제품이 대표적이다. 벨트 뒷면에도 가죽이 사용되어야 하며, 버클을 다 채웠을 때 벨트 끄트머리가 바지의 첫 번째 벨트 고리에 끼워질 만큼의 길이면 문제가 없다. 색상은 벨트 색이 구두의 가죽 색과 일치해야 한다는 법칙을 따라 검정색이나 브라운 벨트를 구입하면 안전하다. 이에 반해 캐주얼용 벨트는 버클이 하나의 판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정장용보다 벨트 폭이 넓고 과감한 컬러가 많다. 벨트 버클이 지나치게 크거나 번쩍거리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오직 복부에만 집중될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지나치게 대중적인 벨트 대신 여전히 고풍스러운 서스펜더를 사용하는 남성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는 다수와 소수의 즐거운 긴장관계를 통해 발전하는 법이니까.

    가죽은 사람의 품위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하고 구체적인 소재다. 그래서 남자의 구두와 벨트, 시계와 브리프케이스엔 가죽이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 요즘의 비즈니스용 가방은 모두 14세기에 돈이나 귀중품을 넣고 다니던 축 늘어진 손가방에서 유래했는데, 처음엔 ‘예산’을 뜻하는 ‘케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여전히 서류를 담는 데 종이봉투를 애용하고, 휴대전화와 라이터, 수첩 등을 슈트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고 다니는 남성이 많지만, 소지품을 가방에 일목요연하게 보관하는 습관은 비단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닐 것이다. 현금과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명함이라는 사회적 신분증이 중요해진 현대에는 가방과 함께 지갑도 점점 그 무게를 더한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오늘날의 신사들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돈을 넣거나 구기지 않아야 하므로, 절제되면서 품위 있는 지갑의 상태가 필수적이다. 지갑의 종류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바지 뒷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정사각형과 상의 가슴 주머니에 넣는 직사각형이 있는데, 질 좋은 가죽 제품이라면 스타일의 선택은 굳이 유행을 따르기보다 각자의 행동 패턴을 참고하는 편이 낫다.

    마지막으로, 겨울이면 긴요한 가죽 장갑에도 슬슬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그가 신사인지 아닌지는 그가 낀 장갑을 보면 알 수 있다고 19세기 영국의 에티켓 북은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난방시설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현대에는 보온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갑의 중요성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품위와 절제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신사는 추운 겨울에 장갑을 낀다. 손이 따뜻해지면서 마음도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차가운 손으로 다른 사람과 악수하지 않기 위해 그렇다.

    포켓스퀘어는 손수건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넥타이를 액세서리의 대표 품목으로 생각하면서 컬러풀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남성이 많다. 그러나 넥타이란 기본적으로 정장의 일부이며, 정장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수록 전체적인 밸런스를 보완하면서 그 존재감을 이어간다고 강조한 바 있다. 너무 화려하고 튀는 넥타이를 매면 넥타이만 극단적으로 강조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사람의 얼굴이 실종되므로 옷차림의 조화가 깨져버린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안목을 표현하기 위해 넥타이 대신 포켓스퀘어(Pocket Square)라고 하는 장식 수건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4세기 말 영국의 왕 리처드 2세가 소맷자락이나 바닥에 코를 푸는 것을 상스러운 행위라고 단언하면서, 행커치프라 하는 손수건이 신사다움과 높은 지위를 상징하게 됐다. 행커치프는 여러 경우를 대비해 항상 손닿는 곳에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재채기가 나올 경우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행커치프를 사용해야 했으며, 탁자에 쏟은 샴페인을 손님의 무릎에 흘러내리기 전에 닦아내야 했다. 물론 진짜 코를 풀 때 쓰는 ‘손수건’은 덮개가 없는 바지 뒷주머니에, 보여주기 위한 ‘장식수건’은 재킷 가슴주머니에 꽂혀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두 가지는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버린 일이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슈트나 재킷에는 가슴주머니가 있게 마련이다. 그 가슴주머니는 순전히 장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포켓스퀘어를 각자의 스타일로 꽂도록 정교하게 제작된 화룡점정(畵龍點睛)과도 같은 자리다.

    포켓스퀘어에 익숙하지 않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사용을 강권하기는 어렵다. 포켓스퀘어를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일단의 현금이 아니라 어렵사리 시도하는 용기일 터. 무엇보다 포켓스퀘어의 색상을 슈트의 패턴과 매치하거나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접는 법을 터득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스타일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배우는 것처럼 노력과 시행착오가 따라야만 습득되는 지식이자 문화다. 다시 말해 너무 엄숙하게만 생각하지 않고, 연습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며, 마치 고구려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공부하는 것처럼, 혹은 좋은 와인이 무엇인지를 발견해나가는 것처럼 즐거운 기분으로 접근하면 된다. 굳이 전문가처럼 멋지게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도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포켓스퀘어를 손수건과 비슷한 물건이라고 이해하면 그 가격이 예상외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듯이 포켓스퀘어는 손수건이 아니므로 리넨, 면, 실크 등 다양한 소재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컬러도 다채롭다. 이처럼 선택의 폭이 넓은 포켓스퀘어는 슈트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주기 때문에, 손수건과 다른 값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 진정한 작가가 문장 끝에 구두점을 빼먹지 않는 것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을 숙고하는 신사는 가슴주머니를 결코 비워두지 않는 법이다.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라

    그러나 결국 당신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다. 액세서리를 현명하게 구입하려면 어떻게 착용할지 미리 계획하고, 옷장에 있는 자신의 옷들과 어울리는 품목이나 컬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모두가 패션 전문가처럼 살 수도 없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여러 가지 아이템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흡족하도록 조절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옷을 잘 입고 클래식한 액세서리를 적당히 활용하도록 완벽하게 가르쳐주는 책은 없다. 하지만 남자들의 옷차림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건 없다.

    누군가 아주 잘 어울리는 벨트라고 권한다고 해도, 당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벨트는 결국 당신의 물건이 아니다. 액세서리의 역사와 활용법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콘텐츠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취향이고 의사결정이다. 역사를 알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탐색하는 진짜 신사가 되기 위한 이 특별한 원칙들은 복잡하고 귀찮은 지침들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한결 수월하고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운 문화일 때 비로소 유의미하다. 그러므로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음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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