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진짜 나’를 보여주는 슈트의 디테일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입력2009-10-07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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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즈니스맨의 삶에서 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인은 슈트를 통해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인상이나 품격, 나아가 직업과 성격까지 예단한다. 슈트의 디테일 하나가 당신의 품격을 높일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격식을 갖춰 클래식 슈트를 입으려 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할까?
    ‘진짜 나’를 보여주는 슈트의 디테일
    남자가 슈트를 입는 것일까 아니면 슈트가 남자를 선택하는 것일까. 남자와 슈트는 어느 틈엔가 동의어가 돼 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슈트를 경험해왔다. 그중에는 존재감만으로도 입은 사람을 압도하는 진지한 브랜드가 있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멋진 브랜드도 있으며, 오래도록 몸과 옷이 교감하며 신뢰를 쌓게 만드는 옳은 브랜드도 있다. 때로 우리는 가격에 비해 품질이 터무니없이 떨어지는 실망스러운 브랜드도 경험하고, 할아버지 세대만 입는 것인 줄 알았던 맞춤복이 몸에 썩 잘 맞아 신기한 기구를 발명한 에디슨처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세상의 수많은 옷차림 중에서 유독 슈트에 대한 경험이 이처럼 풍부한 것은, 슈트가 옷장에 고이 모셔놓고 즐기는 오브제가 아니라 실제로 입고 비즈니스와 여가를 비롯한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일종의 생필품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슈트의 품질은 중요한 문제다. 모든 사람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만드는 최고급 수제 슈트를 고집할 수는 없다. 다섯 벌의 슈트를 구비해 일주일 동안 여유 있게 돌려가면서 입는 것도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직업과 성격이 어떻든 슈트를 입는 남자들은 항상 어떤 슈트가 가격 대비 합리적인 품질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슈트의 가격이 청바지와 다르고, 패션 전문가가 아니라 해도 현대 비즈니스맨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슈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6할 이상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슈트는 입고 나면 종결되는 옷차림이 아니다. 입는 순간 그 사람과 동화돼 사회적인 형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사람의 인상이나 품격, 심지어는 직업이나 성격까지 드러내주는 옷이다. 각각의 슈트에는 그것만이 간직한 놀라운 아우라가 있다. 그러므로 슈트에 대한 관심이나 숙고는 슈트 그 자체의 획득보다 그것의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세계 모든 비즈니스맨이 입는 슈트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창조해낸 결과물이 아니다. 영국의 엘리트 귀족들이 일상적으로 입던 군복에서 진화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 때문에 슈트 속에는 전통과 법을 중시하는 영국적 사고방식, 군복이 갖고 있는 엄격한 성격 등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탄생 당시부터 슈트에는 제작이나 활용할 때 주의해야 할 몇 가지 규범이 존재했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런 사항들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신사로서의 매너나 교양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슈트를 제대로 입으려면 먼저 이러한 슈트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이나 아시아의 왕 혹은 귀족이 입었던 군복은 전투를 위한 실무적인 옷이기 이전에 공식석상에서 입는 일종의 정장이었다. 그들의 신분을 표시하는 코드이기도 했다. 따라서 군복의 성격을 그대로 계승한 슈트를 입을 때는 ‘격식에 맞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개성 표현은 그 다음 문제다.

    슈트를 고르는 첫 번째 기준, 어깨

    늘 바쁘게 일하는 한국 남성들은 특정 브랜드의 스타일을 관습적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이라는 고정관념도 상당히 강하다. 그러나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슈트의 사이즈가 몸보다 커서 마치 다른 사람의 옷처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슈트는 포멀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 체형에 정확히 맞으면서 편안한 기성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기성복이 원래 누구에게나 어울리도록 만들어지는 옷이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옷은 반대로 말하면 누구에게도 정확하게 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성복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사이즈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 가까운 사이즈를 입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맞춤복만을 입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성복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필연적인 현실을 비추어보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대신 슈트의 격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기성복을 고를 때 다양한 브랜드와 패턴 중에서 자신의 몸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찾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먼저 따질 것은 어깨 부분이다. 모든 슈트나 재킷은 일차원적인 평면에 존재하는 소재를 입체적인 사람의 몸에 맞도록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움직임이 많은 부분인 어깨는 팔이나 배 등 다른 곳과 달리 입는 즉시 이 옷이 내 몸에 편안하도록 잘 변형됐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말해줄 것이다. 천차만별인 슈트의 가격도 실은 어깨 부분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술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어깨가 편안하면서도 체형에 잘 맞는 슈트가 남자에게 필요한 좋은 옷이므로, 그런 슈트를 찾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슈트를 직접 입어보는 게 좋다.

    어깨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얼굴이라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좌하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어깨가 실제 몸보다 크면 얼굴이 작아 보이고, 반대로 사이즈가 너무 작으면 얼굴이 커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어깨 라인에 잘 맞으면서도 편안한 슈트를 찾는 것이 슈트를 제대로 입는 첫걸음이다. 슈트를 제대로 고르려면 브랜드의 명성이나 피팅룸 안의 요술 거울, 그리고 배우자의 일방적 강요에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깨 라인이 슈트의 제작 프로세스에 관한 핵심적인 고려사항이라면 슈트의 재료인 소재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입었을 때 사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전달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장식을 할 수 없는 슈트의 특성상, 소재의 은근한 변화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슈트는 탄생 당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남자의 거의 유일무이한 차림이었다. 따라서 오래 그리고 자주 입어도 변형이 거의 없는 소재의 내구성이 중요했다. 이를 위한 최적의 선택은 양의 털로 만든 천연소재 울(wool)이었다. 계절의 변화에 맞게 다양한 무게의 울이 개발됐고, 이 소재는 사계절용 슈트에 전천후로 사용됐다.

    한번 정한 규범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영국인들은 이후 아무리 가볍고 편안한 신소재가 발명돼도 슈트 소재는 울을 기본으로 한다는 규범을 버리지 않고 있다. 여름 슈트를 만들 때는 울에 시원한 소재인 리넨이나 실크를 조금 섞고, 겨울에는 캐시미어를 혼합하는 등 다소 변화를 주기는 하지만, 울이 소재의 바탕이 된다는 점만은 여전하다. 그러므로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번쩍거리는 실크 소재 슈트를 비즈니스용으로 입는 것은-어떤 설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격식에 맞지 않는 행동이 된다.

    ‘진짜 나’를 보여주는 슈트의 디테일

    남자에게 슈트는 옷장에 모셔놓고 즐기는 오브제가 아니라 비즈니스와 여가를 함께 하는 생필품이다

    품격 있는 색상, 포멀한 스타일

    천연소재인 울은 염색에 따라 다양한 색상으로 변신한다. 대표적인 슈트 컬러는 그레이와 네이비, 브라운이다. 쥐색이라고 표현되는 차콜그레이 컬러는 공식석상에서 가장 애용되는 색상. 한 벌 구비해두면 상의와 하의를 각각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므로 최초의 슈트를 구입할 때는 이 컬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특히 차콜그레이색 바지는 블레이저나 다른 재킷과 잘 어울려 쓰임새가 많다. 차콜그레이보다 밝은 그레이 컬러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슈트다. 긴장감을 덜고 여유를 갖고 싶은 자리에 잘 어울린다.

    네이비 슈트는 유럽과 한국에서 사랑받는 색상으로 보수적인 행사나 신뢰감이 필요한 자리에서 입기에 좋다. 네이비 컬러 슈트 상의는 다른 색상의 바지와 입어도 잘 어울린다. 피부가 옐로 톤인 아시아인에게는 브라운 컬러 슈트도 잘 어울린다. 지나치게 튀지 않으면서 남다른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주의할 것은 블랙 슈트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즈니스맨들이 많이 입는데, 사실 전통적인 비즈니스 슈트의 색상이 아니며 상복이나 예복으로 적합한 옷이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색상을 고른 뒤엔 소재의 패턴도 봐야 한다. 가장 무난한 것은 특별한 무늬가 없는 무지(Solid) 계열이다. 비즈니스할 때나 중요한 행사에 모두 잘 어울리며 유행을 타지 않으므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어색하지 않게 입을 수 있다. 일단 무지 계열의 슈트를 한 벌 구비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좀 더 자유롭게 패턴을 선택해볼 수 있다.

    키가 좀 더 커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스트라이프 패턴이 어울린다. 슈트 차림에 익숙해져서 자신감이 붙은 사람은 체크 패턴의 슈트를 시도하는 것도 좋겠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패턴인 체크는 아름다우면서도 품위가 넘쳐 젊은 사람에게는 무게감을, 장년층에게는 신선한 감각을 더해줄 수 있다.

    현재 슈트는 상의와 하의로 이뤄져 있지만, 최초의 슈트는 여기에 베스트까지 더해진 형태였다. 난방 기술의 발달과 자동차의 보급으로 베스트의 필요성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스리피스 슈트는 여전히 슈트 중에서 가장 드레시하고 공식적인 느낌을 준다. 현대에는 노치드 라펠(notched lapel·같은 넓이의 깃이 위아래로 있는 스타일)로 처리된 싱글 브레스티드(single-breasted·단추가 한 줄로 달린 스타일) 슈트가 일반적으로 애용된다. 침착해 보이는데다 어떤 체형에나 잘 어울린다.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는 싱글보다 좀 더 엄격해 보이고, 개성적이다. 이런 슈트를 입으면 날렵한 이미지를 연출하게 되므로 어깨가 넓거나 건장한 체형의 사람이 입으면 좋다.

    슈트 버튼의 개수도 따져봐야 한다. 턱시도 같은 예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슈트에는 2개 혹은 3개의 버튼이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 사람들은 3버튼, 미국 사람들은 2버튼을 선호한다. 유럽의 3버튼 슈트는 첫 번째 단추를 잠그지 않고 가운데만 잠그는 스타일로 제작돼 자연스럽게 라펠이 휘어지게 돼 있다. 이렇게 하면 옷에 볼륨감이 생겨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이성에게 어필하는 남성적인 매력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스타일은 넉넉한 실루엣을 가진 2버튼 슈트다. 슈트 상의의 소매에도 보통 3~4개의 단추가 달려 있는데, 이 단추는 원래 필요할 때 소매를 걷어 올릴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는 실제로 걷어 올릴 수 있는 소매는 품질 좋은 맞춤복이나 최고급 기성복에서만 볼 수 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사소한 디테일은 장인정신을 나타내는 데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슈트 상의의 뒷트임 벤트(vent)도 주목해보자. 슈트 형태에 따라 가운데만 트인 싱글(single) 벤트, 양쪽 옆으로 트인 사이드(side) 벤트, 그리고 트임이 아예 없는 노벤트 이렇게 세 가지 옵션이 있다. 벤트는 슈트를 입고서 승마를 하던 영국식 스포츠의 전통에서 유래한 디테일로, 말을 탈 때 재킷의 뒷부분이 안장과 닿으며 벌어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벤트를 선택할 때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따르면 되지만, 엉덩이가 발달했거나 좀 왜소한 체형이라면 유럽인이 선호하는 사이드 벤트를 입는 것이 유리하다. 엉덩이를 가려주는 보정 효과가 있으며, 뒷모습의 실루엣도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트임이 없는 슈트는 주로 예복이다.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저 바다나 산을 넘으면 어떤 세상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문명 교류를 촉진시켰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갖가지 고민이 철학과 사상을 태동시켰고, 사회의 탄생과 함께 출현한 각 계급의 신분이 이를 상징하기 위한 의복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타일의 발전도 필요에 의해 추동되는 테제라고 볼 수 있다. 반드시 선천적 재능이나 특별한 비법이 있어야만 슈트를 잘 차려입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조언만 있다면 누구라도 배경과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슈트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호의 조언은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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