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딸 사이의 진한 사랑을 그린 영화 ‘아이엠 샘’의 한 장면
A‘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에게 언제나 포근함과 안정감을 준다. 사람은 저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신화를 마음에 품고 산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키워주며, 오직 가족만을 위해 등불을 켜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이미지. 그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무쌍한 시기를 견뎌내면서 새로운 생명을 끝없이 탄생시키고 거두어들이는 대지의 여신으로 상징화된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좀 더 역동적이다. 가족을 보호하고 이끌어나가는 선장과 같다. 아버지는 부족을 보호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법칙과 질서를 세우는, 힘세고 현명한 신격화된 왕의 이미지로 신화화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여신과 남신을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미지로 간직하고, 평생을 그러한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이후에도 말이다.
사실 부모가 되고 나면, 누구나 자신이 신화화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것은 경이롭고 기쁜 일이면서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소설 ‘피터 팬’에 등장하는 웬디의 부모 달링 부부는 이 불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웬디를 임신하고 처음 한두 주 동안, 엄마 아빠는 웬디를 키울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아기가 생긴다는 생각에 달링씨는 가슴이 터질 만큼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웬디도 먹여 살려야 할 입이니, 명예롭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달링 부인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뭔가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동안에도 달링씨는 한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열심히 비용을 계산했죠. …달링 부인이 이런저런 제안이라도 하면, 계산이 헷갈려 달링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답니다. 존을 낳을 때도 똑같은 법석이 일어났고, 마이클 때는 더한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자신이 머지않아 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한다. 곧 태어날 아이와 그 아이가 살아갈 세계에 대해 이것저것 꿈꾸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러한 꿈 안에는 기대와 희망만큼이나 걱정과 불안이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 아이만은 나같이 힘든 시절을 보내지 않게 하고, 세상의 모든 상처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안전하게 잘 키우고 싶다는 꿈. 내가 못 가진 행복을 주고,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루게 하고 싶다는 꿈. 아이에게 완벽한 사랑과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능력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
그러나 과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지점에서 아버지들은 좌절한다. 내 안에는 아직도 유치하고 어린애 같은 마음이 많은데, 나 역시 누군가 끝없이 나를 돌보아주길 간절히 원하는데, 나 혼자 생활해나가기도 버거운데 내가 무슨 수로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고 돌볼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내 책임일 텐데 과연 내가 어디까지 아이를 책임지고 보호할 수 있을까?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데, 내가 이 아이에게 최고의 환경을 줄 수 있을까? 만일 무능한 아버지가 되고 그것 때문에 아이가 나를 원망하게 된다면? 이 아이를 잘 키우려면 나의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나의 꿈조차 뒤로 미루거나 그만 접어야 하는데 내가 이 아이를 미워하기라도 하게 된다면? 상처를 주게 된다면? 이런 불안을 안고 남자들은 아버지가 되는 길을 밟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