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아무리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아요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입력2009-11-03 17: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무리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아요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면 휴식과 운동,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40대 남성들이 밴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Q45세 직장인입니다. 얼마 전 동창생 한 명이 TV를 보다 갑자기 죽었습니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하더군요. 평소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고, 죽기 일주일 전에도 등산을 다녀온 친구라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저도 요새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많습니다. 조금만 무리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하고, 건망증도 심해졌습니다. 잠을 잘 못 잔 지도 꽤 됐어요. 누워서 자려고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찹니다. 병원에 가면 별 이상 없다고 하니 가족들은 꾀병을 부린다고 하는데, 저도 차라리 꾀병이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겁이 나고 자꾸 자신이 없어지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나이가 들고 건강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이 정오를 지나 황혼으로 내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저기서 암 같은 난치병에 걸린 친구들 소식, 과로로 급사한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이제 내 차례인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이제 겨우 인생의 반을 살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몸이 삐걱대기 시작하니 남은 반평생은 어떻게 버틸지 더럭 겁이 난다. 아직 나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 사는 것에 치여 꿈을 접은 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지난날이 떠오르면 회한과 후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임상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런 피로는 과로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휴식을 취해도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로감으로 인해 직업적, 교육적, 사회적 활동이 저하되고,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은 심각하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은 목이 붓고, 근육과 관절에 통증을 느끼고, 머리가 아프고, 마치 안개 낀 것처럼 멍한 느낌이 오며, 자도 개운하지 않고, 조금만 일해도 피로를 느낀다고 호소한다.

    이런 증상은 보통 인구 1000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유병률이 2~3배 높다. 이 병의 원인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스트레스에 주목하는 학자가 늘고 있다. 특히 중년에 찾아오는 만성피로증후군의 경우, 몸의 노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중되는 스트레스가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좀먹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0대는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나이다. 직장에서는 위아래 사이에 끼여 이 눈치 저 눈치 보랴 정신이 없다. 밀려오는 업무량에 눌려 정신없이 뛰다보면 바쁘기만 했지 막상 이뤄놓은 것은 없는 듯한, 허무와 불안이 교차하는 저녁을 맞게 된다. 가정에서는 아이들 교육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때다. 부부간에도 서로 바쁘고 지치다보니 소원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니 머릿속은 항상 터질 듯 분주하다. 가족 간의 갈등, 해결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나야 할 사람들, 직장에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일, 나무라는 듯한 상사의 눈빛과 동료들과의 은근한 경쟁, 치고 올라오는 후배 직원들에 대해 느끼는 위기감 등은 항상 40대 남성의 머리를 무겁게 찍어누른다. 쉬고 있을 때조차 쉬지 못한다. 머릿속에선 항상 야간작업을 하는 공장처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 들린다. 집에서 쉬다가도 해결 못 한 일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입술이 바싹 마른다. 한 가지 일을 해결했나 싶으면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날카로워진 신경은 좀체 무뎌질 줄 모른다.



    몸과 마음을 좀먹는 만성피로증후군

    사람이 느끼는 피로에는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다. 적당한 육체적 피로는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 왕성해지는 식욕, 깊은 수면, 그리고 다가올 휴식에 대한 기대 등은 살아 있다는 생동감과 더 잘하고 싶다는 의욕을 북돋워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적인 피로다. 노화가 시작됐다는 데 대한 두려움,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근심걱정, 이러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등은 자는 중에도 몸을 뒤척이게 한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몸과 마음이 피로감에 지치고 병들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의 출발점은 자신이 늙고 있다는 데 대한 깨달음이다. 사람의 몸은 기계와 같다. 기계를 오래 사용하면 닳고 낡는 것처럼 인체 역시 세월이 흐르면 노화 현상을 겪게 된다. 30대부터 세포와 조직 단위에서 기능적, 구조적, 생화학적 퇴화가 시작된다. 노화가 몸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과 사회적 기능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생물학적 노화는 신체 기능 저하, 호르몬의 변화, 잔여수명의 감소 등으로 나타나지만, 정신적 노화는 지능 및 감정 기능에 변화를 야기해 개인의 행동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사회적인 노화는 개인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에서 기능이 축소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노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나이 드는 것이 곧 죽음으로 가는 과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모든 나이는 각 단계에 맞게 인생을 즐기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구조화돼 있다. 단지 우리가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모른 채 나이 들면 병들고 죽게 된다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노화하는 신체와 정신의 기능을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는 노화의 과정을 되돌리려 한다는 맹점이 있다. 노화는 진행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노화는 결코 죽음의 전 단계가 아니다. 최근 발표된 세포에 대한 실험 및 관찰 결과를 보면 노화세포가 외부 자극에 대해 젊은 세포보다 오히려 강하게 저항한다고 한다. 이런 연구는 노화 현상이 죽음의 전 단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늙으면 죽는다는, 또는 죽어야 한다는 명제를 생명체가 거부하고,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인간의 생리 기능이 연령 증가에 따라 저하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노력에 따라 회복되는 사례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노화에 대한 결정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이러한 생명력과 적응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이를 아끼고 활용한다면 우리는 성공적인 노화를 겪고 멋진 인생의 후반부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노화란 병이 없는 상태로 나이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존귀와 품위를 지키고,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누리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의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몸을 통해 그 실체를 나타내고, 몸은 마음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 소중한 것이다. 마음은 유한한 존재인 몸에 스러지지 않는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영원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몸을 그동안 너무 혹사해오지 않았는가. 휴식을 주지 않고 일에 치여 살면서, 술과 담배로 스스로를 해치면서, 스트레스를 제때 풀지 않고 몸과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아오면서, 게다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운동조차 안 하면서 소중한 나의 몸을 함부로 대해오지 않았는가.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두려움은 그런 대우에 지친 몸이 일으키는 반란이다. 중년이 되면 몸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 좀 돌보라고, 내가 건강해야 당신도 행복한 삶을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러니 노화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이제라도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자. 어딘가 편치 않고 뻐근하며 힘이 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자. 때론 뒹굴며, 몸을 가만히 쉬게 놓아둬야 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으면 휴식도 아무 소용이 없다. 휴식은 몸과 마음이 기운을 되찾고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에너지를 재충전시켜주는 행위가 돼야 한다.

    스트레스 없는 세상은 없다. 적당량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우리를 준비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대로 참고 쌓아두기만 하거나,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오는 자극이 두렵고 자신은 그러한 자극에 대처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들 경우, 삶은 온통 근심걱정거리가 된다. 우리는 항상 긴장상태에 놓인다. 만성적인 긴장과 고통에 시달리면 몸과 마음은 노쇠해질 수밖에 없다.

    걱정 속에 파묻혀 있는 한 우리의 심신은 더 지치고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을 상실하게 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것들과 연관지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집에 온 뒤, 혹은 쉬는 시간만이라도 그 일을 잊는 게 좋다. 걱정을 달고 다니면 우리는 쉴 수도 없고 숙면을 취할 수도 없다. 오히려 충분한 휴식 뒤에 머리가 맑아지면 일의 해결이 더 쉬워진다. 때로는 “이 일이 안 풀린다고 지구가 망하나?” 하는 배짱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쉬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그래서 만성적인 피로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축적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노화와 만성피로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길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20분 이상 걷자. 운동은 세로토닌, 도파민 같은 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뇌에 자극을 줘 뇌세포를 생성시켜준다. 노화를 지연시키면서 우울증과 치매를 예방해주는 효과도 있다. 밝은 태양 아래서 가벼운 걸음으로 폐에 가득 공기를 불어넣으며 보는 세상은 당신에게 새로운 활력을 안겨줄 것이다.

    운동과 똑같이 중요한 것이 빛이다. 햇빛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기원이다. 피부에 작용해 비타민을 합성해주고, 뇌에서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시키며 멜라토닌 생성도 증가시켜 우리의 생리 리듬을 맞춰준다. 뇌 혈류량을 증가시켜 머리를 맑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화가 일종의 적응현상이라면, 그리고 우리 내부에 스스로를 치유하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복원력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에 맞는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아요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스트레스가 계속된다면 몸의 즐거움을 만끽해보자. 신선한 공기, 적당한 운동과 휴식, 적절한 수면,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 섹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몸이 생기를 되찾으면 마음을 불러 함께 움직이자고 청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이중주가 시작된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도,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월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 꾸준히 자신의 몸을 아끼고 돌보는 것, 이러한 노력이 당신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어줄 것이고 생동감이야말로 건강과 활력을 되찾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소중한 선물인 것이다.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을 spring@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