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Great Company’ 비전으로 세계 초일류 공기업 만든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9-07-30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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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 출신 사장의 인사 혁명·경영 혁명
    • 스마트 그리드로 세계인의 생활 바꾼다
    • 새로운 공기업 윤리모델 제시 노력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방만 경영’ ‘낙하산 인사’ ‘신의 직장’….

    공기업에 각인된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다섯 차례에 걸쳐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을 내놓았고 이제는 민영화, 통폐합, 기능 조정에도 나설 움직임이다. “공기업의 고질적 문제인 경영효율성 저하, 도덕적 해이를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있는 분위기다.

    당사자인 각 공기업도 개혁안을 내놓고 실행하는 모습이다. 공기업 내부에도 ‘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마인드’(‘헤럴드 경제’ 2009년 7월8일 보도)가 형성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몇몇 선도적 공기업에서 진정성이 깃든 개혁행보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공기업이 달라지고 있는 현장, 그중 우선적으로 한국전력공사의 내부를 심층 탐구했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대한민국 모든 공기업, 정부투자기관의 맏형 격이다. 일단 규모 면에서 단연 최고다. 한전은 자산규모 65조원, 2008년 매출액 31조5224억원으로 국내 굴지 재벌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직원 수는 2만370명에 달한다. 한전이 제공하는 전기는, 인체의 혈관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공공서비스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한전은 다른 공기업의 전범(典範)이 되어왔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대다수 공기업은 ‘한전이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본 뒤 태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한민국 공기업의 맏형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전은 전체 공기업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키맨(keyman)이다. 여러 공기업이 한전의 개혁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전 개혁은 그 속도와 내용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이다.

    한전 개혁은 2008년 8월27일 시작됐다. 이날 김쌍수 한전 사장이 취임했다. 그의 한전행(行)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경북 김천 출신인 김 사장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뒤 1969년 럭키금성에 공채로 입사해 2003년 10월부터 2007년 3월까지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07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LG 부회장, 2008년 4월부터 8월까지 LG전자 고문을 역임했다. 관료나 정치인의 낙하산 인사가 관행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한전 사장 임명은 특별한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지난 5월13일 카자흐스탄 이스타나에서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왼쪽)과 김 블라디미르 카작무스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하슈 프로젝트 협력 협약서를 교환하고 있다.

    김 사장은 LG전자 재임 시절 “특유의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가전부문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위클리경향’ 2008년 9월23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2003년 아시아의 스타’로 선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가 한전 사장에 취임하자 “LG전자를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으로 올려놓은 솜씨를 한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인사’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한기식 한전 경영선진화실장은 김 사장이 부임 직후 임원회의에서 한전이 나아갈 비전을 ‘Great Company’라는 한 마디 말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럭키금성이 LG전자가 된 것처럼 한전을 세계 초일류 공기업으로 만들자는 의미, 국민에게 존경받는 윤리적으로 훌륭한 회사로 만들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로 LG전자 생활가전 공장 안에는 ‘Great Company Great People’(훌륭한 회사가 훌륭한 인재를 만들고, 훌륭한 인재가 훌륭한 회사를 만든다)이라는 구호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김 사장의 ‘Great Company’는 ‘경영효율’과 ‘기업윤리’ 양쪽을 모두 지향하는 개혁의 지침이자 신호탄이었다. 이에 따른 첫 번째 후속조치는 강도 높은 부정부패 척결 선포였다. 2008년 9월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본사 한빛홀에서 임직원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Great Company 구현을 위한 윤리경영 선포식’이 열렸다.

    “‘한전 변했다’ 입소문 돌아야”

    김 사장은 이 자리에서 “금품수수·비위·부조리·불합리한 관행은 뿌리 뽑겠다” “청렴도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문책하겠다” “내부고발제도를 적극 활용해 일벌백계하겠다” “열심히 일하다 발생한 실수는 선처하겠다” “한전의 청렴도를 저해하는 업체도 제재하겠다” “고객의 입을 통해 ‘한전이 정말 변하고 있다’는 입소문이 돌도록 해야 한다”고 윤리경영 원칙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는 “한전이 국가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차원 높은 투명성이 요구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행사는 한전의 전국 모든 사업장에 생중계되었으며 전 직원은 ‘위반시 어떤 조치도 감수하겠다’는 윤리서약에 서명했다. 2007년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최우수기관으로 평가받은 바 있는 한전의 임직원을 이렇게 몰아가는 데 대해 이영근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전이 안주하지 말고 글로벌 수준의 윤리경영을 정착시킴으로써 세계 최고의 전력회사로 도약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성 한전 홍보실 차장도 “한전은 지금 새로운 공기업 윤리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한전이 건설한 필리핀 일리간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공기업 철밥통’ 깨져

    이어 인사태풍이 몰아닥쳤다. 한전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월 처장급에 대해 공개경쟁보직제를 도입해 전체의 76%(54개 직위 중 41개)를 교체했다. 공개경쟁에는 426명이 지원해 8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전의 처장은 일반기업의 임원에 해당한다.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한전이 건설한 중국 내몽골 풍력발전단지

    1월11일 도입된 팀장급 공개경쟁보직제를 통해서는 팀장급 40%(438명)가 교체됐다. 처장급 54명이 밀폐된 강당에서 각자의 PC를 통해 팀장급 1019개 직위에 지원한 5700명의 지원서를 검토해 자신과 함께 일할 팀장급을 직접 선발하는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한전이 뒤집혔다”(‘한국경제신문’ 2009년 3월1일)는 반응이 나왔다.

    공개경쟁보직제에서 탈락한 차장급 이상 52명은 무보직으로 6개월 교육을 받은 뒤 그 결과에 따라 업무복귀 또는 완전퇴출이 결정된다. ‘공기업은 철밥통’이라는 관념이 깨진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인사개혁은 한전 혁신의 선제조건이자 최대 난관이었는데 김 사장은 전광석화처럼 추진했다”고 전했다.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한전이 건설한 개성공단내 154kW송변전 설비.

    한전은 6월26일 단행된 221명에 대한 승진인사도 승진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되도록 했다. 승진심사위원 60명은 3급 이상 4500명 가운데에서 부서, 출신 고교, 출신 대학교, 직군, 직급 분포를 고려한 컴퓨터 무작위 추출로 6월23일 오후 11시 선발됐다. 위원들은 이튿날 오전 6시 외부와 차단된 서울 KEPCO 아카데미(한전 연수원)에 모여 승진 후보자들의 최근 10년 업무실적, 경력, 포상, 징계, 외국어 점수, 사내외 교육 평점 등을 검토한 뒤 5개 등급을 매기도록 했다.

    청탁 여지를 차단하고 성과 중심의 객관적 심사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전 관계자는 “인맥, 로비, 연공서열이 아닌 실력과 실적으로 공정하게 평가받도록 했다.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승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고 했다. 개혁 시늉만 하는 듯한 여러 공기업은 한전의 속도와 수위에 적잖이 놀랐다. 공개경쟁보직제는 이들의 연구대상으로 급부상했고 정부도 한전의 인사개혁이 전체 공공부문으로 퍼지도록 유도할 방침임을 밝혔다.

    한규완 한전 그룹경영지원처 차장은 “다른 한편으로 한전 개혁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인 경영효율 부문에서도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먼저 비용절감에 대한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전사적으로 ‘이삭줍기’(사소한 비용 줄이기)가 진행 중이다. 7월 초 기자가 한전 본사를 찾았을 때 대낮인데도 복도는 어두침침했다. 집무실도 다른 회사에 비해 어두웠다. 에어컨 냉기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꼭 필요한 양만 남기고 형광등을 빼놓았다. 냉방도 최소화한다. 전기 만드는 회사에서 절전을 솔선수범하자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비용을 아낄수록 국민의 전기료 부담은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이런 노력과 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위기대응 시나리오 가동으로 한전은 지난해 1조4000억원을 절감했다고 한다. 전기요금 인상요인을 4% 줄이는 효과였다. 한전 측 자료에 따르면 변압기 교체기준 개선 등 작업방식 개선으로 1975억원, 유휴자산 매각 등 경영효율화로 915억원, 수목전지 등 외주 축소로 2692억원, 사업집행기준 상향으로 5032억원, 에너지 절감으로 2983억원이 절감됐다. 임직원들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인상분 592억원을 반납했다. 간부급 이상은 인상분의 100%를, 직원은 50%를 내놓았다. 한전은 올해도 1조원 정도의 추가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사장은 취임 직후 사장 비서실 조직을 30% 감축했다. 먼저 모범을 보인 셈이다. 각 사업소 등 국내외 조직을 통합하고 축소하는 대대적 개편을 단행했다. 중복되는 기능을 최소화하려는 의지였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한전은 6월19일 기획재정부 주관 2008년도 공기업 경영실적평가에서 14개 SOC유형 공기업 중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한전 측은 “유가 및 유연탄가, 환율 폭등으로 대내외 경영여건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달성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눈물 없인 혁신 없다”

    한전 본사 20층에는 TDR(Tear Down & Redesign)룸이 있다. ‘한전 군살 빼기’의 사령탑이다. 벽에는 ‘눈물 없인 혁신 없다’ ‘낭비 제거, 부가가치 창출’ ‘World Best를 디자인하자’라는 구호가 붙어있다. TDR은 “풀어헤쳐서 재구성하자”는 뜻이다. 김 사장이 거대 공기업 한전을 쇄신하겠다며 만든 경영혁신의 산실로 통한다. 정예요원 350명이 근무하고 있다.(‘위클리 공감’ 2009년 5월16일)

    TDR은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기존 업무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2008년의 경우 보고문서 간소화 과제를 시행해 문서작성 건수를 종전 대비 56% 축소하고 매수도 48% 줄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113억원의 경비가 절감됐다. TDR 관계자는 “154kV 변전소의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는 공법으로 763억원의 건설비용을 줄였다”고 밝혔다. TDR은 2009년에는 131건의 경비절감 과제를 추진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김쌍수 사장의 한전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Great Company’, 즉 한전을 존경받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다. 윤리경영, 인사개혁, 경비절감은 그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녹색성장, 원자력 수출, 해외시장 개척은 한전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성장 동력 구축에 필요한 조직과 투자를 늘렸다. 2월 출범한 녹색성장팀은 ‘온실가스 감축, 탄소배출권 확보, 청정에너지 연구,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미래 산업의 중추 컨트롤타워’(윤성원 녹색성장팀 차장)라는 기능을 부여받았다. 정부와 전력그룹사 간 신재생에너지 자발적 공급협약(RPA)에 따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조9680억원이 투자되고, 811MW의 설비가 보급될 예정이다(잠정안). 한전은 17건, 52만t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송배전설비의 SF6가스 재활용 사업을 통한 탄소배출권 확보를 추진 중이다. 윤성원 차장은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연간 263만t의 탄소배출권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몇몇 사업은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중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는 국제사회의 집중적 관심대상으로 떠올랐다. 스마트 그리드는 한전이 최근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추진 중인 ‘세계 최초의 국가단위 지능형 전력망 구축사업’이다. 전력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이다. 현 체제는 발전소에서 각 가정이나 기업으로 전력을 일정하게 끊임없이 공급한다. 쓰지 않는 전기는 버려진다. 스마트 그리드 체제에선 전기가 남아 값이 쌀 때 쓸 수 있도록 해준다.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한전 TDR 직원들의 회의 모습.

    G8에서 채택된 ‘스마트 그리드’

    이를 위해선 집과 발전소를 잇는 첨단 통신망과 IT기술이 필요하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전력수급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그리드 체계가 상용화할 경우 에너지 소비는 6% 줄고 온실가스는 4.6%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6월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제주도 내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 3000가구를 대상으로 2013년부터 시범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7월9일 이탈리아 중부 도시 라퀼라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의 기후변화세션(MEF)에서 스마트 그리드는 에너지 효율, 태양광 에너지, 탄소포집저장 기술, 바이오에너지, 첨단 자동차, 고효율 저탄소 석탄기술과 함께 ‘7대 전환적 기술’로 선정됐다. 또한 이 회의에서 한국은 스마트 그리드 기술의 선도국가로 선정됐다. 한국은 11월15일까지 추진방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MEF에서 “전환적 기술 개발과 확산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에 합의한 것은 또 다른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했다. 이 발표가 있자 국내에서는 스마트 그리드 관련 회사들의 주가가 상승했다.

    일부 전문가는 스마트 그리드가 2030년까지 3조달러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정부관계자는 “한전은 스마트 그리드 기술의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이 시스템의 세계적 확산을 선도할 기회를 잡았다”고 전했다. 한전은 11월 G8 측에 스마트 그리드의 세부적 로드맵과 추진방안을 보고하는 기구(지능형 전력망 구축 추진위원회)에 참여한다.

    전력망과 IT의 결합은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2010년 9월까지 정부주도 전력IT 연구개발 사업의 10개 과제 중 4개 과제에 총 323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한전이 참여하는 4개 과제는 배전지능화, 대용량 전력수송, 디지털 변전, 전력선 통신 유비쿼터스다. 한전은 이들 과제의 성과물을 조기에 사업화하기 위해 2013년까지 테스트 지역(Test bed) 구축사업(총 810억원)을 추진한다.

    4개 과제 중 ‘전력선 통신유비쿼터스’는 전기-통신 소비자 사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사업은 말 그대로 전기선을 전화나 초고속인터넷, 유비쿼터스 시스템 등 각종 통신망으로도 활용하는 분야다. 조금 길지만 이 사업과 관련한 한전 전력연구원의 2007년 8월17일자 보고를 인용한다.

    고객만족 1위와 요금 인상론

    “꿈의 세상인 유비쿼터스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통신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전력선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든지 포설되어 있는 인프라 망이다. 따라서 전력선과 유비쿼터스 기술이 만난다면 어떠한 유무선 통신매체로도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를 탄생시킬 수 있다.

    전력통신 유비쿼터스 기술개발은 이러한 전력선통신(PLC·Power Line Communication)을 통해 1차적으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2차적으로 통신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미 국내 기술로 가정이나 산업계의 PLC 상용화의 길은 열렸다는 평가다. 이번 과제가 성공적으로 완료됐을 때 파급효과는 상당히 크다. 전국을 하나의 전력망에 연결해 통합망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막대한 설비 관리비-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 전력설비 진보로 개발 후 5년간 4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울러 전력망을 통신망으로 활용한다면 그 응용폭은 매우 넓을 것이며 효율적인 유비쿼터스 인프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어느 나라나 해마다 수억원에서 수조원을 전력시스템 관리-개발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국내에서 먼저 21세기형 스마트 전력시스템을 개발해 상용화한 뒤 각국의 전력시스템에 맞는 수출 모델을 개발한다면 신규 수출시장 개척도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85~90% 정도 전기가 들어가는데 통신 인프라는 15% 미만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전기는 써도 전화는 못 쓰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PLC 모뎀에 전기선만 꽂으면 전화가 된다는 것은 PLC가 세계적으로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U-시티 건설사업이 추진되는데 이는 각 수용가정은 물론 공원 가로등에까지 통신선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즉 엄청난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비용이 소요되는데 PLC밖에 대안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전은 스마트 그리드 이외에도 석탄가스화 복합발전, 이산화탄소 회수처리,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 초고압직류송전, 초전도 기술, 수출형 원자력 발전을 ‘녹색전력기술 아이템’으로 정하고 이들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연구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해외사업 53배 늘린다

    한전 측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정전(停電)시간은 프랑스, 미국, 영국보다 짧은 반면 전기요금은 이들 국가에 비해 가장 저렴하다(한국이 100일 때 프랑스 148, 미국 110, 영국 148). 한전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정부주관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최고등급에 올랐다. 신속한 민원처리, 소액요금합산청구제 등 전기소비자를 배려하는 제도 시행을 통해 비교적 좋은 평판을 유지해왔다. 최근 들어 고객 서비스(고객 자문단, 고객센터, 모바일 납부, 사회봉사단 활동 등)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정부 일각에서는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상의 불가피성이 이해된다”는 여론도 있는 반면 “전기요금 인상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 가정에 압박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는 한전이 비용 대비 수익을 많이 내는 것이다.

    임태균 한전 해외사업개발처 차장은 “한전은 지금 해외시장 개척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 10%대이던 국내 전력수요 성장세는 최근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2009년 전력수요 증가율은 3~4%, 2010년 이후엔 1%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국내 전력시장의 성장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기 위해선 이제 세계시장 진출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전의 주요 해외 발전사업 사례는 필리핀의 말라야 화력발전, 일리한 가스복합화력, 나가 발전소, 중국의 간쑤(甘肅)성 풍력발전, 내몽골 풍력발전, 산시(山西)성 발전탄광연계, 레바논의 복합화력 Q&M 용역 등으로 7736MW 규모였다. 최근에는 우라늄(캐나다 3만6000t), 유연탄(호주 12억t) 등 해외자원 개발에도 지분참여, 탐사사업 등의 형식으로 뛰어들고 있다. 2008년과 2009년 한전은 요르단 알카트라나 가스복합화력(373MW) 입찰사업, 사우디아라비아 라빅 중유화력(1200MW) 입찰사업, 방글라데시 송전망건설 컨설팅사업(1100만달러)을 수주했고 중국 간쑤성 풍력발전 2단계(49.5MW) 사업, 중국 내몽골 풍력발전 3단계(279MW) 사업에 추가 참여하기로 했으며 카자흐스탄 발하슈 석탄화력(1200MW)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비즈니스의 ‘깔딱고개’

    한전은 2009년 5031억원 수준인 해외사업 규모를 2020년엔 27조원 규모로 무려 53배 늘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한전은 한국형 원자력발전 수출에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임태균 차장의 설명이다. “고유가와 환경규제로 2030년까지 전세계에서 300기의 원전이 건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900조원대 시장규모다. 원전 수출은 국가 간 대항전 성격을 띨 수도 있다.

    한전은 한국형 원전 수출에 있어 국가별 차별화-집중화 전략을 갖고 있다. 즉 주요 원전 발주 4개국인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터키, 중국에 수주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연구용 원자로, 가속기의 동반수출을 추진하고 인도 등 잠재시장에도 수출 기반을 조성할 계획이다.”

    김쌍수 사장은 등산을 좋아한다. 그의 취미는 등산과 독서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등산을 하다 보면 흔한 말로 ‘깔딱고개’가 나옵니다. 몸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것처럼 힘이 들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고 그만큼 더 목표의식이 명료해집니다. ‘정상이 바로 저긴데’ 하고 말입니다. 그 지점을 넘겨야만 산의 정상을 밟을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에도 깔딱고개라는 것이 있습니다. 더 이상 생산성이 오르지 않고 ‘한계가 여긴가’ 하는 생각이 들 때 그 고비를 넘겨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며 동료에 대한 굳건한 믿음입니다.”

    ‘백색가전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 사장이 성장의 고비를 맞은 것으로 보이던 한전을 추슬러 제2의 ‘녹색전력 신화’를 이룰 수 있을까. ‘대한민국 대표 공기업’ 한전의 개혁을 많은 이가 주시하는 이유다.

    인터뷰

    “혁신 워크숍으로 소통”


    한국전력공사 김쌍수 사장
    한기식 한전 경영선진화실장(사진)은 “고유가, 고환율로 에너지기업 한전의 적자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김쌍수 사장은 항상 위기의식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 김 사장이 특별하게 추진 중인 사내 경영방식이 있나요.

    “워크숍이죠. 주로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직급별로, 혹은 노사합동으로 하고 있어요.” LG전자 재임시절부터 ‘혁신전도사’로 알려진 김 사장은 한전 사장 취임 이후 개혁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워크숍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 한전 측은 2008년 9월부터 진행된 워크숍에 2000명이 넘는 임직원이 자리를 함께했고 이와 별도로 10개 전력그룹사 대상 워크숍에도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 워크숍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김 사장이 직접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직원들에게 혁신사상을 전파하고 있어요. 김 사장 이야기에 공감하는 직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지론인 ‘Great Company’를 지향하기 위해선 인재 육성, 가치 창조, 고객 만족, 강한 조직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 공기업은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과 다른 특성도 있는데요.

    “한전은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데, 김 사장이 말하는 혁신과 변화는 그런 점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 결과 청탁을 안 받고 실력으로 보직경쟁을 하고 경비를 줄이고 신성장동력을 개척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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