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소 :미래전략연구원
■ 사 회 :박 진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패 널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부원장 /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현석 국가경영연구원 원장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왼쪽부터 조성봉, 곽채기, 박진, 김현석, 김준기
박진 미래전략토론이 10회째를 맞았습니다. ‘신동아’와 함께 진행하는 이 토론 자료가 청와대에 보고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주제는 ‘공기업 개혁의 방향과 전략’입니다. 먼저 역대 정부가 공기업을 관리하면서 각각 어떤 특징을 나타냈는지를 비교해주십시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공기업 관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김준기 김대중 정부는 하드웨어적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그에 반해 노무현 정부는 소프트웨어적 개혁에 나섰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하드웨어적 개혁과 소프트웨어적 개혁을 병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공공개혁의 일환으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했으나 집행하지 못한 하드웨어적 개혁에 나선 것이죠. 노무현 정부는 성과지향적 경영, 대(對)국민 서비스 제고, 경쟁 촉진을 추구해 소프트웨어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엔 하드웨어를 개혁하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혁을 병행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이 하드웨어적인 부분입니다.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노조관계, 경영시스템 개선과 선진화 과제를 제기해놓았습니다.
박진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하드웨어를 손보려고 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은 지난해 촛불시위 등을 말씀하는 건가요?
김준기 예. 그렇습니다.
곽채기 제가 부연해 설명하면 김대중 정부는 민영화 정책에 포커스를 맞춰 접근했고, 노무현 정부는 민영화 정책을 거의 중단하고 지배구조 선진화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를 추진하되, 민영화의 타깃이 모(母)기업이 아닌 자(子)회사에 맞춰진 것 같습니다. 기관 통폐합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개혁에선 기능중복을 조정하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현석 두 분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평가했는데, 조금 직설적으로 장단점을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혼선을 빚었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집권 후반기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와 관련해 시민단체와 함께 개혁 작업을 추진하는 새로운 시도도 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었지요.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공기업 개혁 시스템을 초기에 정비하지 못했고 청사진이 명확하지 못해 혼선을 빚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단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청사진이 없었다는 비판을 의식해 로드맵, 그러니까 청사진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습니다. 그런데 로드맵 작성에 치중하다 중요한 시기를 놓쳤습니다.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고 2년까지가 공공부문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기인데, 그 중요한 시간에 로드맵을 그리는 데 치중함으로써 민영화 과제를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기능조정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했는데 그런 일도 못했습니다. 로드맵 그리다가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낸 셈이죠. 또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일자리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자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게끔 했습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상당히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공공부문 비대화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1년7개월 지났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공공기관 평가를 기관장 인사와 연계한 부분입니다. 단점은 청사진이 없다는 겁니다. 공공부문 개혁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아요. 민영화와 구조조정 중심인지, 시스템 개혁인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바뀌면서 과거의 경험이 쌓여 진화하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박진 조성봉 박사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조성봉 김대중 정부가 하드웨어 개혁을 했다는 데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외환위기로 인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부투자기관 8곳을 민영화했고, 부분 민영화도 3곳에서 이뤄졌습니다. 정부투자기관 산하의 자회사 21곳을 민영화했고 6곳을 폐지했으며 16곳을 통폐합했습니다. 공기업의 61개 자회사 중 20곳을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했고 나머지 41곳 중 36곳에 대해서도 민영화를 추진했죠.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는 상당히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민영화 재정수입이 7조2600억원에 달했고, 공기업 매각수입도 14조3500억원을 상회했습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이 같은 개혁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김현석 원장 말씀대로 공공부문이 굉장히 비대해졌습니다. 195조원이던 공기업 부채가 100조원 넘게 증가했고, 정부지원금도 34조원에서 48조8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인력도 4년간 2만6000명가량 증가했습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굉장히 커진 셈이죠. 노무현 정부 때의 또 다른 특징은 공기업마다 공익사업을 들고 나왔다는 점입니다. 소프트웨어 쪽에서 혁신했다고 그러는데, 그게 사실 내용 없이 포장에만 신경을 쓴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가장 큰 특징은 실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정부 추진 사업에 수자원공사를 동원하고 서민을 배려하는 정책에 공기업을 참여시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지난해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공기업 개혁 추진 여건이 나빠졌습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민영화를 할 때는 주식시장이 좋아야 합니다. 공기업을 싼값에 내다팔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민영화 추진이 주춤거리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청사진이 없다고 말씀했는데, 저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기업 개혁이 왜 필요한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 없이 정부의 지지도를 높이는 하나의 도구로서 공기업 개혁에 접근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만큼 실용성에만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