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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19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내가 차갑고 거친 건 최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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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필요 없다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오른쪽)는 애나 윈투어를 모델로 했다.

애나 윈투어는 1949년 11월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엘리트 출신이다. 어머니는 일류 여고를 나와 래드클리프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저술가나 언론인을 꿈꾸었으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바람에 전업 주부가 된다. 애나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버지 찰스 윈투어. 그는 저명한 언론인이다. 1946년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입사 5년 만에 부(副)에디터가 되었고 10년 만에 편집국장이 된다. 그는 유능한 집필자와 특별기고가를 알아보는 능력으로 신문을 변화시켰다.

애나는 이들 부부의 셋째딸이다. 그러나 애나가 태어나고 18개월 뒤 큰오빠 제럴드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장밋빛이던 집안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어가는 데도 일에 빠져 연락이 안 됐던 남편에게 평생 증오심을 갖고 살았다. 그 일 이후 자녀를 둘 더 낳았지만 부부 사이는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한다.

애나의 어린 시절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신경질적인 어머니, 일을 핑계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늘 음울했다. 아버지는 딸 애나를 유난히 예뻐했다. 항상 최고를 추구하면서 목표 지향적이고 야망이 크고 창조적인 성향이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성격도 비슷했다. 아버지 찰스 역시 단호하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차가운 찰스’라 불렸다.

애나의 청소년 시절은 모범적이지 못했다. 그리스 선박 왕 오나시스의 딸 같은 부잣집 딸들이 다니던 고급 중고등학교인 퀸스 칼리지에 입학하지만, 애나는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그곳을 싫어했다. 특히 긴소매 흰 셔츠에 스커트, 줄무늬 넥타이와 카디건으로 구성된 교복을 가장 싫어했다. 애나는 학교에서 ‘왕따’나 다름없었다.



부모는 딸이 학교생활이 끔찍하다고 하자 1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여학교 노스런던 칼리지에이트 스쿨로 전학시킨다. 하지만 애나는 “교복이 허섭스레기 같고 똑같은 색”이라며 투덜댔다. 벨트로 교복치마 허리선을 올리거나 허리 단을 접어 입고 다니다 선생님들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몸매관리에 관심이 많아 평소엔 최소량의 음식만 먹고 아주 가끔 특별한 때에만 과식을 하는 뛰어난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동급생들은 전한다.

애나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학문적인 접근보다 실용적인 접근을 좋아했고 이런 자신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학에 가는 것보다 일찍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직업 전선으로 나가는 게 옳다고 여겼다. 남이 뭐라 하건 상관없었다. 이런 강한 고집이야말로 그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강화시킨 원동력으로 보인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하퍼스 앤 퀸’이라는 잡지에 어시스턴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버지 인맥의 도움을 받아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화보 촬영지를 잘 찾아내 빠른 시간 안에 명성을 쌓는다. 그녀가 선택한 사진은 항상 감각이 넘치고 세련됐다는 평을 들었다.

여자보다 남자가 좋다

애나는 10대 중반부터 ‘연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남자들은 젊었든 늙었든 애나의 예쁜 얼굴, 상아색 피부,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세련된 단발, 짧은 미니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가느다란 다리에 매혹됐다. 언론계 유력인사의 딸이라는 점이 신비감을 더했다. 많은 남자가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경쟁했다.

애나는 항상 남자들과 어울렸지 여자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일을 할 때에도 이런 성향이 그대로 나타났는데, 애나는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고 ‘덜’ 깐깐하게 굴었다. 애나는 남자의 외모보다 머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로 글 쓰는 사람과 기자에게 끌렸다.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했다.(자랄 때 아버지의 부재라는 심리적 결핍과 남자를 발판 삼아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헤픈 여자는 아니었다. 속마음이나 감정을 쉽게 털어놓지 않았다.

그녀의 첫사랑 상대는 자유기고가 존 브래드 쇼였다. 애나보다 무려 열두 살 연상에 부유한 영국 여자와 1년도 채 안 되는 결혼생활을 끝내고 막 이혼한 한량이었다. 두주불사에 담배도 하루에 세 갑 이상 피우는 체인 스모커였다. 도박도 즐겼다. 그러나 위트와 언변, 잘생긴 외모로 여자들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결혼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브래드 쇼는 애나에게 ‘인맥’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다. 애나는 보그에 입성하기 전 다섯 곳의 잡지사를 전전하는데, 그때마다 브래드 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는 애나와 헤어진 이후에도 변함없는 서포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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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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