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박근혜 죽이기 TF팀 실제 있었다

前 국가정보원 직원의 증언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04-01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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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죽이기 TF팀 실제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최근 김유환씨를 국무총리실 정무실장(1급)에 임명했다. 이번 인사(人事)는 고위공직자 한 명의 채용 차원을 넘어서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했다. 김유환 실장 임명 건이 이명박 정권의 권부(權府) 내에서조차 4개월간이나 진통을 겪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2007년 대선 당시 현직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이던 그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파일 유출 및 이명박 후보 측과의 유착’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명박 캠프 정치공작 커넥션”

    2007년 8월7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국정원 현직 간부를 동원한 이명박 캠프의 정치공작’이라는 발표에서 김유환 당시 국정원 경기지부장(1급) 등을 이명박 후보 캠프와의 유착의혹 당사자로 지목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는 김 지부장에 대해 “(국정원) 윗선의 배후라는 제보가 있다”고 했다. 이어 언론에 배포한 ‘이명박 후보 캠프 정치공작 커넥션’에도 김 지부장을 “국정원 고위간부 K모씨(고려대 영남 출신)”이라고 표기해 포함시켜 놓았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는 ‘이명박 후보 캠프와 국정원 측의 유착으로 박근혜 후보가 비방에 시달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줄곧 토로해왔다. 이명박 후보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의 보좌관은 김해호씨로 하여금 박근혜 후보 비방 자료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하도록 사주했다. “박근혜 후보와 관련 있는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등이 육영재단을 통해 거액의 재산을 증식했다”는 내용이었다.

    자료의 출처와 관련해 검찰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안기부 자료가 불법 유출됐을 가능성을 수사했다. 자연히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심을 샀다. 김씨는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구속됐다. 정두언 의원은 이 사건으로 검찰에 지명수배되어 도피 중이던 자신의 보좌관에게 수개월간 월급을 지급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는 이 사건에 대해 “이명박 후보 캠프가 국정원과 내통해 추악한 정치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선 무렵인 2007년 6월27일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작성했다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가 PC방에서 은밀하게 인터넷에 올려진 일도 발생했다. 최태민 보고서는 고(故) 최태민 목사가 박정희 정권 시절 박근혜 전 대표에게 접근해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담은 문건이었다. 검찰은 문건을 인터넷에 올린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또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이재오 의원(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2007년 6월21일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후보를 겨냥해 “차마 말하기가 창피한 정도의 안기부 보고서를 봤다”고도 했다. 이 발언에 대해 박근혜 후보 캠프는 “국정원 측과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2007년 12월 하순 김유환 국정원 경기지부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발탁됐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후보 캠프가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와 국정원의 접점 의혹’으로 지목했던 양 당사자인 ‘정두언 의원’이 ‘김유환 지부장’을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김 지부장은 공직에서 물러나 한화석유화학 고문으로 들어갔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국정원은 과거의 정치공작 행태를 개혁한다는 차원에서 국정원 내 박근혜TF팀의 실체에 대한 사찰에 나섰다. 박근혜TF팀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뒷조사를 수행해 자료를 수집·작성해둔 것으로 알려져왔었다. 이런 국정원의 행보에 “내부개혁 메스 들었다”(OO일보 4월7일자 보도), “국정원 잦은 외도 반성”(△△일보 5월5일자 보도) 등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사찰은 시작만 거창했다. 국정원은 사찰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박근혜 뒷조사 및 이명박 캠프와의 유착설은 이처럼 무수한 의문만 남겨둔 채 미스터리로 남았다.

    송영길 “특정 계보 제거 의심”

    박근혜 죽이기 TF팀 실제 있었다

    2007년 8월7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후보 측이 국정원 직원들과 연계해 정치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의혹의 당사자인 김유환 전 국정원 지부장이 이명박 정권에 의해 정치를 관할하는 주요 공직인 국무총리실 정무실장에 기용되자 지난 대선의 의혹은 현재 및 미래의 정치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야당 측과 친(親)박근혜 진영은 그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을 표출했다. 일부 언론도 실명으로 그의 대선 당시 의혹을 조명했다.

    “최태민 목사 파일 관련 건으로 의심을 받았던 김유환 전 국정원 경기지부장을 총리의 정무실장으로 임명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내 특정 계보를 견제하고 제거하기 위한 정치 공작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게 한다.”(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 2월22일 최고위원회의 발언)

    “김유환 전 국정원 경기지부장이 누구인가? 지난 대선 당시 경선에 깊숙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던 사람 아닌가? 호떡집에 불난 듯 소란스러운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총리까지 나서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격이다. 참으로 혀를 찰 일이다. 목불인견이다.”(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 2월22일 논평)

    “가뜩이나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나 정치사찰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마당에 내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실의 정무실장까지 국정원 출신이 와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앞으로 정운찬 국무총리께서도 정치공작을 시작하시겠다는 뜻인지….”(우상호 민주당 대변인, 2월22일 현안브리핑)

    “김유환 전 지부장을 임명하겠다는 건 이 정부와 총리가 이젠 금도도 없이 막가자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정무실장에 앉히겠다니 도대체 우리와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냐.”(친박근혜계 인사, 한겨레 1월22일자 인터뷰)

    “국정원 출신 김유환 실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친박근혜 진영으로부터 박근혜 전 대표와 관련한 ‘최태민 목사 파일’을 유포한 인물로 의심받은 바 있다.”(MBN 2월22일자 보도)

    “인사는 넉 달여가 지나도록 답보상태였다. 청와대 내 일부 그룹에서 김유환 전 지부장의 정무실장 기용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박 진영으로부터 ‘최태민 목사 파일’을 유포한 인물로 의심받은 점이 반대 이유로 꼽힌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2월18일자 보도)

    “(대선 당시) 최태민 목사 비(秘)파일 유출 당사자로 김유환 실장이 지목됐다. 박근혜 후보 측은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친박 계열의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랐다.”(스포츠서울 2월22일자 보도)

    핵심에 접근도 못한 부실수사

    김 실장 임명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친이계 인사들은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지부장이 박근혜 파일과 관련됐다는 얘기는 정치권에서 나돌기는 했지만 검찰 수사에서도 무혐의로 밝혀지는 등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 파일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정원 사찰은 ‘최태민 보고서가 인터넷에 유포된 경위’ 등 핵심 사안에 접근조차 못한 부실조사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국정원 등이 의혹 당사자인 김유환 전 지부장을 직접 조사하는 과정을 거쳤는지도 불분명했다. 한 여권 인사는 “김 실장 인사가 지체된 실제 배경은 친이계 내부에서 김 실장을 미는 쪽과 반대하는 쪽 간에 알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유환의 정치 관여’에 대해선 친이계 일각에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은 ‘국정원의 박근혜 뒷조사설 및 김유환 연관설’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신동아’에 증언했다. 언론의 접근이 차단된 정보기관의 내부에서 국민적 영향력을 지닌 유력 정치인을 실제로 뒷조사했는지, 그랬다면 누가 어떻게 그 조사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흥미 있는 진술로 보였다.

    전 국정원 직원은 이 문제의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혀왔는데 ‘신동아’는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제기해온 의혹의 당사자인 김유환 실장의 의견도 들었다. 그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던 김 실장은 ‘신동아’가 ‘전직 국정원 직원의 증언’이라고 출처를 밝히면서 사실 개요를 제시하고 질의하자 답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 국정원 직원의 증언 내용은 김 실장의 답변 내용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부분에서 일치했다.

    정두언-김원용-김유환 라인

    박근혜 죽이기 TF팀 실제 있었다

    국가정보원 전경

    먼저 2007년 대선 전 국정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조사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 전 국정원 직원은 그런 사실이 있다고 했고 김유환 실장은 조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조사 주체와 관련해 전 국정원 직원은 박근혜 조사전담 TF팀의 여러 직원이라고 했고, 김 실장은 TF팀이라고 했다. 전 국정원 직원에 따르면 TF팀 직원들이 ‘차마 말하기가 창피한 정도의 안기부 보고서’(친이명박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와 같은 박근혜 죽이기 자료를 수집해 한화콘도 등에서 핵심내용을 간추린 오리지널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전 국정원 직원에 따르면 김유환 실장은 국정원 B실장일 때 박근혜 조사내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국정원장-차장 다음의 고위직인 B실장은 ‘정치 등 경제 이외 모든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자리이며 국정원의 내부 지휘계통상 김유환 B실장은 박근혜 파일의 보고라인에 있었다는 것이다. A실장, B실장은 언론 등 국정원 외부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직책이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자신이 A실장, B실장에 재임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2007년 이전 B실장 재임 시절 TF팀이 ‘박근혜 조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고 밝혔다. 이어 B실장이 TF팀의 지휘라인이긴 하지만 박근혜 조사 건의 경우 공식보고를 받은 바는 없으며 B실장을 건너뛰고 직보됐을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과 김유환 실장의 관계와 관련해 전 국정원 직원은 정두언 의원이 연결고리라고 했는데 김 실장은 정두언 의원과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가 힘을 써주어 대선 후 자신이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총리 정무실장이 된 점을 인정했다. 김 실장은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김원용 교수와 친분이 있었다. 정 의원과 김 교수도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실장은 대선기간에는 정 의원-김 교수와 접촉하지 않았고 박근혜 파일을 유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상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2007년 대선 이전 국정원에서 박근혜 뒷조사가 실제로 이뤄졌다는 점이 확인된다. 김유환 실장은 지휘계통상 박근혜 파일의 보고라인에 있었으며 그는 박근혜 파일의 존재가 일부 세상에 공개되기 이전에 핵심내용을 보고받았거나(전 국정원 직원 증언) 구두로 박근혜 조사 사실을 들었던 것(김유환 실장 답변)으로 나타났다. 또한 친이계 정두언 의원-김원용 교수-국정원 출신 김유환 실장의 공조라인이 있었으며 대선 후 김 실장이 고위 공직에 발탁되는 데에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전 국정원 직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최기문 사건’과 한화의 영입

    ▼ 김유환 전 국정원 경기지부장은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있다 한화의 고문으로 갔는데….

    “2007년 대선 후 한화는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권의 실세 두 사람을 영입했다. 김유환 전 국정원 경기지부장이 한화로 간 건 그런 차원이었다. 김 전 지부장은 한화석유화학 고문이 됐고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최측근인 박영준(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씨가 이끈 최대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유선기씨는 한화경제연구소 고문이 됐다. 한화는 최기문 사건을 겪은 후 정무적 대응능력과 사정기관 경험을 갖춘 고위급 실세를 영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 ‘한화가 최기문 사건을 겪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7년 3월 차남을 폭행한 사람들을 보복 폭행해 5월 구속됐다. 당시 한화건설 고문이던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이 사건을 맡은 경찰서장 등에게 사건의 축소·은폐를 청탁해 수사를 중단한 혐의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한화 내부의 일각에서는 최 전 청장이 열심히 하긴 했으나 뒤처리를 잘못해 일을 더 키웠다는 시각이 있었다. 이것이 ‘최기문 사건’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한화 측은 유선기 전 총장 영입으로는 별 재미를 못 봤는데 김유환 전 지부장은 회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 김유환 전 지부장이 총리실 정무실장이 된 건 어떻게 봐야 하나.

    “노무현 정권의 이해찬 총리 시절 총리실은 막강했다. 이해찬 총리는 ‘3·1절 부산 골프 파동’이라는 암초를 만나 중도하차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강력한 대권주자가 됐을 것이다. 정운찬 현 총리는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총리실 르네상스’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정국을 정확하게 보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정무 기능의 보강이 필수적이었다. 김 전 지부장이 이 일을 해낼 ‘리베로’로 적임이라고 본 것이다. 김 전 지부장은 정치 감각이 있고 종합전략 수립에도 상당한 수완이 있다.”

    전 국정원 직원은 “정두언 의원이 김 전 지부장을 정무실장으로 추천한 것으로 안다. 정 의원은 김 전 지부장과 2007년 밀접한 관계였고 그래서 그를 인수위 전문위원에 발탁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정운찬 총리와 정두언 의원은 같은 경기고-서울대 인맥이어서 정 의원이 정 총리 측에 김 전 지부장을 추천하기 수월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유환 실장 임명이 4개월간 늦춰진 것에 대해 전 국정원 직원은 “친이계 내부에 알력이 있었다. 친이계에 정두언 의원과 김유환 전 지부장의 우군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명박TF팀은 없었다”

    ▼ 2007년 및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김유환 실장이 2007년 중순 국정원 경기지부장으로 발령 난 건 어떤 이유인가.

    “김 실장은 같은 부산 출신이지만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 실장이 김 원장의 처신에 반발하는 일이 잦았다. 그로 인해 1급 요직인 A실장, B실장을 하다 경기지부장으로 좌천된 거다. 이렇게 원장과 갈등을 빚어 국정원 내 입지가 흔들리면서 차기 정권으로 유력했던 MB캠프 측과 가까워지게 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 A실장, B실장이 뭔가. 그런 직책이 있나.

    “원장, 차장 다음의 고위직으로 A실장은 경제 정보를 총괄하고 B실장은 경제 이외 모든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내부에서 한나라당 유력 주자이던 박근혜 전 대표를 뒷조사한 사실이 있나.

    “그 작업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그 결과로 핵심내용을 정리한 오리지널 보고서가 나왔다. 그 보고서와 관련된 문건들과 자료들이 있다.”

    ▼ 그 일을 위한 TF팀이 있었나.

    “연관된 사람이 여러 명이니 그렇게 봐도 된다. 직원이 개인적인 관심에서 그런 조사에 매진하면 다른 일상 업무를 못한다. 그러면 실적이 없으므로 인사고과 점수가 엉망이 된다. 인사고과를 매기는 상급자 등 지휘부의 지시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 자료의 수집·정리나 보고서 작성 작업은 어디서….

    “호텔 객실이나 한화콘도 객실에 모여 한 것으로 안다.”

    ▼ 2007년 대선 때 공개된 문건이 전부인가.

    “오리지널 보고서는 분량이 얼마 되지 않고 그 보고서와 관련된 문건들과 자료들은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10㎝ 정도 벌리며) 이 정도 됐다.”

    ▼ 그 박근혜 파일이 지금도 국정원에 있다고 보나.

    “모른다.”

    ▼ 검찰 수사와 국정원 사찰에서 밝혀진 게 거의 없는데….

    “관련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검찰이나 국정원이 일부러 적당히 한 것은 아니고 수사를 진척시켜 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그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날짜별로 꼼꼼히 기록해뒀다. 적당한 때가 오면 전모를 공개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 김유환 실장은 정보를 총괄하던 국정원 A실장, B실장 재임 시절 박근혜 파일을 알았나.

    “그는 그 문제를 보고받는 지휘계통인 B실장에 있었다. 보고받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 조사 결과 박근혜TF팀과 관련해 김 실장은 무혐의로 밝혀졌다는데….

    “조사 대상도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 2007년 대선 경선과 본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는 ‘국정원에 이명박 죽이기 TF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여러 직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집중 조사한 TF팀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TF팀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는 국정원 직원 고모씨가 6개월여 동안 혼자서 MB 재산을 뒤졌다. 그가 상부의 허락 없이 자의적으로 그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직원 1, 2명이 조사한 게 사실이라면 그 정도를 두고 TF팀이라고 하는 건….”

    “국정원의 청소 아줌마도 알 것”

    김유환 실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 ‘정치공작’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그는 국정원 TF팀과 박근혜 조사 문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 경기지부장 이전에 B실장을 지냈나.

    “A실장, B실장을 다 했다.”

    ▼ 전직 국정원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A실장, B실장 재임 시절 박근혜 조사내용을 보고받았다는데….

    “B실장 시절 ‘TF팀에서 박근혜 조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정식보고는 아니었다.”

    ▼ 2007년 이전인가.

    “그런 것으로 기억된다.”

    ▼ TF팀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TF팀인가.

    “특정한 명칭이 앞에 붙는 TF팀이 아니라 부서명 자체가 TF팀이다.”

    ▼ 최태민 보고서 이야기도 들었나.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재차 질문하자 “특정한 내용이 아닌 ‘박근혜 조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 전직 국정원 직원의 말로는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B실장은 경제 이외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직책이 아닌가.

    “B실장이 TF팀의 지휘라인이므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고를 받지 않았다. TF팀은 특정한 내용의 경우 실장을 거치지 않고 직보하기도 한다.”

    김 실장은 “박근혜 조사가 있었다면 내가 B실장이 되기 이전에 이뤄진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는 국정원과 이명박 후보 캠프의 유착 대상자를 ‘국정원 고위간부 K씨’라고 했는데 나의 전임 B실장도 K씨다. 박근혜 후보 캠프 측이 착각했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기자가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는 ‘국정원 고위간부 K모씨(고려대 영남 출신)’이라고 표기했는데 고려대 영남 출신 조건을 만족시키는 K씨는 누구인가”라고 되묻자 김 실장은 K씨는 자신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 TF팀이든, 박근혜TF팀이든, 본질적으로는 국정원 내 여러 직원이 조직적으로 박근혜 파일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여러 명이 만들었다면 보안이 지켜질 수 없다. 국정원에서 청소하는 아줌마도 알게 될 것이다.”

    ▼ 맞는 말이다. 여러 명이 만들었다면 보안이 지켜질 수 없다. 그래서 기자인 내게 흘러들어온 게 아닐까. (김 실장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어 질문을 했다.) 이명박TF팀 의혹은 어떤가.

    “이명박TF팀은 없었다. 그건 이상업(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차장)이 잘못한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의혹’ 보도가 난 뒤 이상업은 서울시 담당 국정원 직원들을 엄청나게 야단쳤다. 언론보도보다 먼저 알아내지 못했다고. ‘다른 데 보내버리겠다’고 하기도 했다. 또 ‘TF를 만들든지 해야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이 말이 외부에 퍼져 ‘국정원에 이명박TF팀이 있다’는 소문이 나온 것으로 안다.”

    “조직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 경기지부장으로 발령이 난 건 김만복 원장과의 불화 때문이었나.

    “내가 김 원장에게 쓴 소리를 많이 했다.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김 원장도 그랬을 것이다. 김 원장은 처음에는 나를 경남지부장으로 보내버리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만류해 그나마 경기도로 발령 낸 것이다.”

    ▼ 대선 후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이 된 것은 정두언 의원이 힘써줘서인가.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가 내게 ‘인수위에서 일해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처음에는 ‘1급은 인수위에 들어가기에는 몸집이 크다’고 마다했는데 김 교수는 ‘차관보급도 일한다’며 재차 권했다. 김 교수가 정두언 의원에게 얘기하여 인수위에 들어가게 됐다.”

    ▼ 국무총리실 정무실장 발탁과정에서도 정 의원이 움직였나.

    “정 의원과 김 교수가 이번에도 노력을 했다.”

    ▼ 김원용 교수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

    “김영삼 정부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대선과정에선 연락을 하지 않다 대선 직후 김 교수가 연락을 해왔다. 정 의원도 대선 직후 알게 됐다.”

    ▼ 권력자가 누군가를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같은 핵심 요직에 넣어주려면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이거나 신뢰가 형성되어 있거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한다. 2007년 대선 투표일과 인수위 구성 사이에는 며칠의 여유밖에는 없었는데 어떻게 대선 직후 알게 되자마자 전문위원을 시켜줄 수 있나.

    “인수위에는 국정원 직원도 파견되어야 하는데 정 의원이 국정원에 아는 인맥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많은 국정원 직원이 다쳤다. ‘조직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직원들 사이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정치권과의 유착 등)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

    “앞으로 국정원과 접촉 않겠다”

    김원용 교수는 정두언 의원,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등 친이계 소장파와 가까운 사이로 최근 공기업인 KT·G의 사외이사가 됐다. 여권 일각에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이을 후임 위원장으로 거론할 정도로 그의 비중을 높게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파일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는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내 무혐의는 입증됐다.”

    ▼ 야당과 친박근혜 진영은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그쪽으로선 손해날 게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본다.”

    ▼ 경선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런 의혹에 대해 침묵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경선 땐 현직에 있다보니 대응하지 않았다. 이번에 의혹을 보도한 신문사 관계자를 만났다. 법적 대응을 하려다 신문사 쪽에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당신 입장을 써주겠다’고 해 관뒀다.”

    김 실장은 “한화에는 아는 후배가 있어 가게 됐다. 한화는 전직 관료에게 자리를 준다”고 했다. 그는 “정무실장 업무는 국정원과 무관하며 앞으로 국정원과는 접촉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 실장을 만난 지 며칠 뒤 국정원은 “박근혜TF팀 감찰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의에 “실체가 없어 종료했다”고 답했다. “김유환 실장을 조사했는가”라는 질의에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정원은 “김 실장으로부터 ‘신동아 기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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