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현실의 결핍을 뛰어넘는 상상의 힘

말괄량이 삐삐와 빨강머리 앤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입력2010-04-06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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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짓말은 나빠!
    • 하지만 난 가끔씩
    • 그 사실을 까먹지 뭐니!
    • 난 커서 해적이 될 거야!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 중에서
    현실의 결핍을 뛰어넘는 상상의 힘

    ‘뒤죽박죽 별장’에서 원숭이 닐슨씨와 단둘이 사는 말괄량이 삐삐.

    어른들의 감시가 없는 곳, 시험도 학교도 숙제도 없는 곳에서 마음껏 뛰놀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중 남자 아이의 우상이 피터팬이었다면 여자아이의 우상은 말괄량이 삐삐가 아니었을까. 삐삐롱스타킹이 원숭이 닐슨씨와 단둘이 살고 있는 ‘뒤죽박죽 별장’은 피터팬의 네버랜드보다 훨씬 현실적인(?) 천국이었던 것 같다. 굳이 환상 속 네버랜드까지 떠나지 않더라도 ‘텅 빈 집’만 있다면 그곳이 곧 어린이의 천국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뒤죽박죽 별장에는 모든 것이 ‘제멋대로’ 널려 있기에 오히려 완벽한, 어린이들의 이상향이 될 수 있었다. 뒤죽박죽 별장의 자유분방함과 선원 출신 아버지를 둔 삐삐의 무한한 ‘이야기 제조 능력’은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멋진 판타지였다.

    무한 리필되는 소녀의 상상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작품이 ‘빨강머리 앤’이다. ‘빨강머리 앤’의 정서적 파장은 ‘삐삐롱스타킹’보다 훨씬 오래 지속됐다. 말괄량이 삐삐가 아홉 살을 전후로 한 ‘어린이’의 공상을 책임진다면 빨강머리 앤은 어린 소녀부터 사춘기의 정점까지 아우르는 틴에이저들의 공상의 왕국을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은 아무리 ‘재탕’을 거듭해도 그때마다 TV 앞에 앉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연기를 맡았던 성우 고(故) 정경애씨의 영롱한 음성은 아직도 귓가에 아련하게 울린다.

    삐삐와 앤의 공통점은 친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천애고아라는 점. 하지만 이 소녀들에게는 근원적인 결핍을 뛰어넘게 만드는 영혼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못 말리는 상상력’이다.

    이 두 어린이는 이야기 창조를 통해 현실에 결핍된 것을 망각한다. 걸핏하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제멋대로 지어내는 삐삐의 상상력의 원천에는 선원이었던 아빠와 함께 원양어선을 탔던 아저씨들이 전수해준 각종 모험담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직접 세계일주라도 다녀온 것처럼 세계 각국의 이름을 대가며 ‘상상 속 경험’을 이야기하는 삐삐는 옆집 친구 아니타와 토미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아이들만 만들 수 있는 천국의 풍경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 공간에 자신이 지어낸 이 세상 하나뿐인 이름을 붙여줘야 마음이 놓이는 앤은 또 어떤가. 벽에 장식이 없으면 벽이 슬퍼할 거라 생각하는 아이, 자신이 이름 붙여준 모든 사물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결코 잊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 앤 셜리.

    앤이 뛰어난 ‘감정 이입’ 능력을 가졌다면 삐삐는 뛰어난 ‘발견의 재능’을 가졌다. 삐삐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익숙한 사물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고 좋아라한다. 여전히 전세계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앤과 삐삐 스토리는 아이들만이 만들 수 있는 우리 안의 천국을 그린 이야기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수업을 하면 법을 어기는 거야. 간혹 어떤 아이들이 벽장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엄마한테 들켰다간 혼쭐나지. 학교에서는 수학을 절대로 안 가르쳐. 7 더하기 5가 뭔지 아는 아이는 하루 종일 교실 구석에 서서 벌을 받아. 바보같이 자기가 아는 것을 선생님한테 가르쳐주는 아이 말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햇살과 나무꾼 옮김,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 시공주니어, 2009, 80쪽.

    농장 일을 도와줄 ‘쓸 만한’ 남자 아이를 입양하려다가 스펜서 부인의 실수로 얼떨결에 ‘쓸모없는’ 여자 아이를 입양하게 된 마릴라와 매튜. 마릴라는 공상이 지나치고 현실감각이 없으며 절제를 모르는 빨강머리 앤을 어떻게든 ‘개조’해 차분하고 침착한 아이로 만들려 한다. 그의 교육 계획은 좀 더 윤리적이고 종교적이고 합리적인 소녀를 만드는 것이다. 보수당을 지지하고 독실한 기독교도이며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금욕주의자 마릴라의 눈에는 절제라고는 모르는 앤이 거의 대책 없는 ‘이교도’로 비친다.

    현실의 결핍을 뛰어넘는 상상의 힘

    ‘못 말리는 말괄량이’ 앤은 마릴라의 사랑과 관심 속에 멋진 어른으로 자라난다. 드라마 ‘빨강머리 앤’의 한 장면.

    “오라버니, 저 애는 정말 누군가에게 입양되어 교육을 받아야 해요. 저 아인 거의 이교도나 마찬가진 걸요. 오늘 밤 전까지 단 한 번도 기도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어요? 내일 목사관에 가서 새벽 성경 공부 책을 빌려 와야겠어요. 꼭 그래야겠어요. 제가 적당한 옷을 만드는 대로 주일학교에도 보내야지요. 할일이 정말 많겠어요. 그래, 맞아요. 우리 몫으로 주어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세상을 살 수는 없죠. 저는 지금까지 너무 편하게 살아 왔어요. 마침내 제게도 때가 왔으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

    -루시 몽고메리, 김경미 옮김, ‘빨강머리 앤’, 시공주니어, 2002, 77쪽.

    마릴라는 엄격한 교육으로 앤의 무제한 공상의 세계를 통제해보려 하지만 오히려 앤의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상상력의 반딧불을 쫓아다니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칠 줄 모르는 앤의 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처음부터 매튜는 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저 앤의 수다를 듣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앤의 직접적인 ‘양육’을 맡은 마릴라는 앤에게 좀 더 절도 있는 교육 철학을 적용하려 한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속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마릴라는 시간이 갈수록 앤의 공상 속 이야기가 하루라도 들리지 않으면 말할 수 없이 허전해지는, 앤이 창조해낸,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초록색 지붕 집’을 발견하게 된다.

    교육하는 아이 vs 교육당하는 어른

    무엇보다 마릴라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감수성을 앤으로부터 배운다. 아름다움에 대한 투명한 예찬은 무미건조하게 살아온 마릴라가 오랫동안 억압해왔던 감수성이기도 하다. 앤이 날마다 실천하는 수다의 마법은 조용하고 평온한, 일관성 그 자체였던 마릴라의 일상을 매일 다른 빛깔의 상상력으로 물들인다. 달력의 날짜만 다를 뿐 하루하루가 똑같은 날처럼 느껴지던 마릴라와 매튜에게 앤은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선사한다.

    “나 참, 저 애가 온 지 겨우 3주밖에 안됐는데, 꼭 항상 여기 있었던 것만 같아요. 이 집에 저 애가 없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마릴라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앤의 생각을 쫓아다니느라 매번 녹초가 되면서도 앤의 수다에 중독돼 앤이 없는 적막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앤은 주변 사람들의 혼을 모두 쏙 빼놓아 매번 ‘계획되지 않은’ 치열한 감정 노동을 하게 만든다. 마릴라뿐 아니라 다이애나를 비롯한 앤의 친구들, 앤의 원수이자 미래의 연인 길버트 블라이스, 린드 부인과 목사 부부와 조세핀 할머니까지, 모두 앤의 ‘상상공화국’의 즐거운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삐삐는 앤보다 훨씬 도전적인 방식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앤이 ‘수다’와 ‘몽상’으로 어른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면 삐삐는 각종 ‘액션’과 ‘돌발 질문’으로 어른들을 골탕 먹인다. 삐삐는 자신을 기어코 ‘어린이 집’으로 보내려고 하는 경찰들을 혼자 힘으로 내쫓아버리고 한밤중에 도둑이 들어왔을 때도 태연자약하게 도둑들을 따돌릴 뿐 아니라 도둑들이 얼떨결에 삐삐 앞에서 춤까지 추게 만든다. 재미 삼아 한 번 가본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질문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아 질문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 아니카. 너한테 문제를 낼게. 구스타프가 같은 반 친구들이랑 소풍을 갔어. 구스타프는 소풍 갈 때 1크로나가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7요레가 남아 있었어. 구스타프는 얼마를 썼을까?”

    삐삐가 또 끼어들었다.

    “그래 맞아, 나도 알고 싶어. 구스타프는 왜 그렇게 돈을 펑펑 쓰고 다니지? 구스타프는 탄산 음료를 사 먹었을까? 또 집에서 나오기 전에 귀는 잘 씻었을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햇살과 나무꾼 옮김,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 시공주니어, 2009, 73쪽.

    현실의 결핍을 뛰어넘는 상상의 힘

    용감하고 기운 센 삐삐는 어른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아이다.

    다 큰 어른의 몸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고 거대한 말 한 마리도 가뿐하게 들어 올리는 천하장사 삐삐의 진가는 아이들만 있는 집에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감없이 발휘된다. 아홉 살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두려움을 이겨내고 삐삐는 거대한 불길 안에 갇힌 동네 아이들을 무사히 구해낸다. 삐삐를 버려진 아이, 괴상한 아이로 생각하던 동네 사람들은 그제야 삐삐의 진가를 알아보고 ‘혼자 살아도 충분히 잘 자라는’ 삐삐의 삶을 인정한다.

    한편 앤이 마릴라에게 선사한 것은 무엇보다도 독신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최초로 찾아온 감정, 바로 ‘창조된’ 모성애였다. 어느 순간 마릴라를 더는 무서워하지 않게 된 앤은 마릴라의 나무껍질 같은 손에 자신의 작은 손을 살며시 집어넣으며 이렇게 말한다.

    “집이 있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너무 좋아요. 저는 벌써 초록 지붕 집을 사랑하게 됐어요. 전에는 어떤 곳도 사랑한 적이 없었어요. 그 어디도 결코 집 같지가 않았거든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전 너무 행복해요.”

    그 순간 마릴라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뜻밖의 전율을 느낀다.

    마릴라는 조그맣고 가냘픈 감촉이 손바닥에 와 닿자 뭔가 따뜻하고 즐거운 감동이 솟아올랐다.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모성애의 감동이었으리라. 전혀 익숙지 않은 다정함이 마릴라를 당황스럽게 했다. 마릴라는 서둘러 도덕을 가르침으로써 그 짜릿한 감동을 몰아내고 정상적인 침착함을 회복했다.

    -루시 몽고메리, 김경미 옮김, ‘빨강머리 앤’, 시공주니어, 2002, 108쪽.

    마릴라는 ‘엄마’가 아닌 ‘아주머니’의 호칭을 고집했고 그만큼의 ‘객관적 거리’를 두고 앤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새 ‘아주머니의 꼬마 앤’을 넘어 사랑스러운 딸이 되어버린 앤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생물학적인 모성이 아니라도 느낄 수 있는 창조된 모성의 아름다움. 노력하고 번민하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모성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특히 앤이 다이애나의 집 지붕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후 배리씨의 품에 안겨 오는 순간, 마릴라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가슴 깊이 인정하게 된다. 좀처럼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마릴라는 앤이 다친 모습을 보고는 미친 듯이 비탈길을 뛰어 가며 ‘이성’을 잃는다.

    마릴라는 한눈에 모든 것을 알았다. 갑자기 찌르는 듯한 두려움에 가슴이 아파오면서 앤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마릴라는 앤을 좋아했던 것이다. 아니 몹시 사랑했다. 지금 마릴라는 정신없이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며 앤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알았다.

    - 앞의 책, 250쪽

    감수성 넘치는 아이들의 공동체

    수많은 동화가 어른의 교육과 설득으로 탈바꿈된 착한 어린이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앤과 삐삐는 어른을 변화시키는 아이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 두 아이는 한일자로 굳게 다문 어른들의 입술에 참을 수 없는 미소를 번지게 한다. 어린이는 모름지기 예의 바르고 질서정연하고 절도 있게 커야 한다는 어른들의 통념에 도전하면서 오래된 에티켓에 균열을 내고 케케묵은 인습에 도전장을 내민다. 어른들은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소녀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 하지만 몇 주도 되지 않아 그녀들의 상상 공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에 압도돼버리고 만다.

    그 꼬마 앤은 볼 때마다 더 좋아지는걸. 난 다른 여자 아이들한테는 싫증을 느끼곤 했지. 모두들 짜증스러울 정도로 언제나 똑같으니까. 그런데 앤은 무지개같이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니고 있고, 보여주는 색깔마다 다 예쁘단 말야.

    -앞의 책, 380쪽.

    마릴라는 모범 소녀 앤 만들기 프로젝트를 결국 포기하는데 그것은 있는 그대로 수다쟁이 앤을 더없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교육을 통해 변화할 앤을 이전보다 더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앤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면서 마릴라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어른들의 이러한 ‘즐거운 복종’은 한 가정뿐 아니라 마을 단위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탈바꿈시킨다. 규율과 통제만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실수와 결점마저 끌어안는 우정과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남의 집 자식’을 개조하고 훈육하려 하는 대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때, 아이들의 결점이 훌륭한 장점으로 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의 가르침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멋진 어른으로 자라난다.

    퀸스를 졸업할 때에 저의 미래는 제 앞에 곧게 뻗어 있었어요. 그 길을 따라가면 많은 이정표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죠. 이제는 그 길에 모퉁이가 생겼어요. 그 모퉁이 길에 무엇이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가장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을 거예요. 모퉁이 길은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그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떨지 궁금해요.

    -앞의 책, 404쪽.

    앤과 삐삐는 오늘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고래도 춤추게 하는’ 무조건적인 칭찬이나 ‘대치동 엄마들’로 대표되는 과학적인 모성, 혹은 미국 유학 정도는 거뜬히 보낼 수 있는 풍부한 경제력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캐릭터다. 앤의 소녀 시절은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던 때였다. 인터넷은 물론 라디오나 텔레비전도 없었고 오직 ‘책’과 ‘수다’와 ‘자연’만이 엔터테인먼트의 전부였다. 그때 그 시절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엔터테인먼트의 혜택을 받는 오늘날의 아이들은 과연 앤이나 삐삐보다 행복할까.

    지금 우리 아이들은 너무 많은 자극에 둘러싸여 정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자극이 무엇인지 깨닫기가 어려워진 게 아닐까. ‘빨강머리 앤’과 ‘삐삐롱스타킹’은 현대의 아이들에게 텔레비전과 게임기 없이도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널려 있음을 알려주는, 아이들만의 창조적인 ‘자연 사용 매뉴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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